사람이 죽으면 무의식이 되는가??
다음 구절들은 영혼 불멸 사상을 사탄의 것으로 단정짓는 분들이 자주 사용하는 내용입니다.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도서 9:5,6,10)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4)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시편 115:17)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죽으면 지식도 지혜도
없다...그리고 호흡이 끝어지면 생각이 소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다...이것이 그분들의 주요 생각입니다.
하지만..정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아무런 의식이
없고, 부활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무존재로 남아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적에 흙에서 몸을 만드시고, 그 안에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이들은 몸과 영을 지닌 존재가 되었고 이를 ‘산 영혼’이라 부르게 됩니다. 몸과 영의 결합을 통해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 몸과 영은 분리가 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물론 죽음 이후의 이 육신에는 의식이 없지만 분리된 영은
생각하고 느끼고 지상에서의 삶을 기억하는 등, 지적 활동을 하면서 그 존재를 지속합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구절을 들어 죽음 이후의
삶이란 비성경적이로 주장합니다. 죽은 자들에게 지식이나 생각, 감정이 없고 무의식의 상태로 잠들어 있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구절과 내세에 관한 교리에는 절대로 모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의식이 없는 존재”는
영이 떠난 우리의 육신을 지칭하는 것이지 분리된 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에는 당연히 의식이나
생각, 감정이 없지요. 그 간단한 구절을 들어 성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영혼 불멸 사상을 뭉뚱그려서 비판하거나, 의인법이니
비유니, 인간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지저분하게 난도질 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기 32:8)
여기서 말하는 영은 몸 속에 있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 영이
없으면 육신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 2:26) 그러나 이는 단순히 생명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우리 육신 안에 있는 영이 지적활동 뿐만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
무엇을 안다는 것은 생각과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 수 있겠느냐는 말은 영
자체가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후부터는 한글판 킹제임스 성경을 인용합니다.)
“나 다니엘이 내 몸 가운데 있는 내 영 안에서 슬퍼하였고 내 머리의 환상들이 나를 괴롭게 하였기에” (다니엘
7:15)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도다” (마태 26:41)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16)
“너희는 성경 기록이, 우리 안에 거하는 영이 시기하기까지 욕심을 내느니라, 하고 헛되이
말하는 줄로 생각하느냐?” (야고보서 4:5)
이 구절에서는 우리 육신 안에 거하는 영이 슬퍼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는 등 감정을 가자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육신- 영이 거하는 장소
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하나님은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셨고 그
안에 영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7, 3:19, 욥기 32:8) 결과적으로 이 육신은 사람의 영이 거하는 장막,
혹은 집과 같은 구조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가 기억하게 하여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벧후 1:13-14)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4)
실제 사람이란 영과 육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로서 성경에 의하면 육신을 “겉 사람”으로, 그리고 그 속에
거하는 영을 “속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고후 4:16)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로마서 7:22)
우리의 육신은 늙어가고, 세상의 법을 따르려고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영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이 지적 존재가 아니고서 어찌 이러한 즐거움이 가능해 질 수 있단 말입니까??
따라서 지금까지 언급했던 구절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영은 몸을 집으로 사용하며 생각하고 알고, 심지어 시기할 수도 있는 지적, 감정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아무리 의인법이나 상징이니 시적 허용이니 하거나, 네페시, 루하흐 등등 원어를 등장시킨다 한들
성경에서 분명한 음성으로 전하는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분명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할 사람이 등장할 겁니다.
“시편 146:4을 봐라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4)’
이 구절에 사람이 죽으면 생각이 소멸한다고 하지 않더냐?”
생각해 보시죠. 사람이 죽으면 영과 육신은 분리가 됩니다.
당연히 한 사람의 생각은 죽은 육신을 남겨두고 영과 함께 떠나가게 되니 당연히 죽은 육신만을 보면 생각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또한
이 구절에서 나오는 “그”란 육신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흙으로 돌아가서 생각이 소멸”한다고 했는데 이는 전도서 12:7에
의하면 육신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영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니 말입니다. 위에 언급한 여러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은 지적,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당연히 사람이 죽고 영이 하나님께 올라가면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에는 생각이나 뜻, 소망이 전혀 없겠지요.
그럼 다음 구절은 어떻습니까??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혔기 때문이로다. 또한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이제 사라졌나니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일
중에서 그들이 차지할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
(전도서 9:5,6,10)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은 아무 것도 모르며 감정이 없습니다. 감정을 지닌 영이 떠났기 때문에
몸 자체로는 아무런 의식이 없지요. 게다가 또한 10절에 보면 무덤 속에는 지식, 지혜, 계획이 없다 하였습니다. 당연히 무덤 속에 놓인 것은 영이 떠난 우리의 육신이겠지요??
이 외에도 영혼 불멸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성구들도
전부 영이 떠난 육신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죽은 자의 육신은 땅에 묻히며 (창 23:15), 흙으로 돌아가고 (시편
104:29), 무덤에 눕혀지며 (시편 49:14) 침묵하며 (시편 31:17), 소망이 없고 (이사야 38:18),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1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