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아담과 이브의 타락

원죄 이론에 대해....

모로나이 2008. 3. 7. 23:16

 

 

“우리는 사람이 아담의 범법으로 인하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음을 믿는다.” (신앙개조 2항)

 

후기성도들은 일반 개신교인들이 믿는 “원죄”의 개념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믿습니다. 물론 원죄의 개념이 있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보고 있죠. 그에 대한 증거를 값진 진주의 모세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조상 아담이 주께 고하여 아뢰되, 어찌하여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물로 침례를 받아야 하나이까? 이에 주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보라, 나는 에덴 동산에서의 네 범법을 용서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원죄를 속죄하였고, 이로써 부모의 죄가 자녀의 머리에 응답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창세로부터 온전함이니라 하는 말이 백성 가운데 널리 퍼졌더라“ (모세서 6:53,54)

 

그렇기 때문에 후기성도들은 아담의 “원죄”가 모든 인류의 저주로 이어졌다는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죄를 유전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있는 존재로 태어나고 행위가 악하며 세례(침례)를 받지 않은 어린아이가 저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교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유혹과 육체적인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과 싸우고 있지만 (마태 26:41, 모사이야 3:19)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범법이 이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윌포드 우드럽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원죄라 불리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대속으로 사함 받았습니다. 또한 각 사람의 죄는 복음을 들었을 경우 그에 따른 순종에 근거한 희생으로 사함을 받습니다.” (Wilford Woodruff, "Fulfillment of Ancient Prophesy," (Sept 1, 1889)

 

사실 전통적인 기독교인의 악의 기원에 대한 개념은 바울 서신(로마서 5:12,18, 고전 15:21,22,47,49)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죄에 대한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살펴볼 수 없으며 심지어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경우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이 이 세상의 죄나 악의 근원으로 설명된 바가 전혀 없으며 모든 인류에게 지어진 원죄에 대한 개념보다는 악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원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부정합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유대인들에게 심각한 것이긴 했지만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죄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죄를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 18:1-9)

 

이 구절에서 한 속담을 언급하는데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하여 아들의 이빨이 시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면 아버지 이가 시지 아들의 이가 시린 것은 아니란 말이죠. 다시 말해 아담의 죄는 아담이 치룰 몫이지 그의 후손들이 치를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또한 후반부에 사람을 진실하게 판단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이가 의로운 이지 원죄로 인해 모든 이들이 죽어야만 한다는 존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원죄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부정하는 후기성도를 기독교인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원죄란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이 원죄에 대한 개념이 하나의 이론으로 체계화 된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돌아가신 이후인 4세기 경 히포의 어거스틴에 의해서였습니다. 터툴리안이 이론의 기초를 두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몰몬경 시대에 원죄설을 기본으로 한 유아침례 이론으로 논쟁이 벌어지던 시기가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기, 어거스틴은 354년에 출생했음, 와 거의 일치하다는 것입니다.)

 

신 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받은 어거스틴은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 인한 죄를 유전받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이러한 그의 이론은 앞으로 발전하게 된 오직 은혜 이론과 예정설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세례를 줘야만 한다는 유아 침례 이론으로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학술적인 근거로도 이 이론이 경전이나 교부들에 의해 가르쳐 진 것이거나 성도들에게 전해진 가르침이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거스틴 당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Michael Azkoul, “Peccatum Originale: The Pelagian Controversy,” Patristic and Byzantine Review 3 (1984): 39.)

다시 말해서 원죄 이론은 어거스틴 이전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그의 관점은 그리스 시대 신 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원죄 이론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란 이유로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극심한 반대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의 가르침은 결국 예정설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어거스틴은 그러한 이론을 정립하게 된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어를 읽을 수도 없었고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는 성경이나 다른 기독교인의 저술을 오로지 라틴어에 의지해서 접해야 했었습니다.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내려와 죄와 죽음을 물려 주었다는 가르침은 어거스틴의 로마서 5장 12절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게 됩니다. 그는 그 구절을 잘못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인의 배경을 지닌 사도 바울의 증언 자체를 오해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Wherefore, as by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by sin; and so death passed upon all men, for that all have sinned: KJV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하면 아담의 죄가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라틴어로 보면 마지막 구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for that all have sinned 혹은 "in that [i.e., because] all sinned)가 아니라 “그(아담) 안에서 모든 이들이 죄를 지었다”"(in whom all sinned.)되어 있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여 잘못된 이론으로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아담의 범법이 모든 이들의 보편적 죽음 뿐만 아니라 ‘보편적 죄’까지 전해 주었다고 해석을 한 것이지요. 당시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하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믿었는데 그런 선택 의지를 로마서 성구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부정하려 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16세기 트렌트 종교 회의를 통해서 교회의 공식 교리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어거스틴과 마찬가지로 루터 역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가르침(디모데전서 2:4)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이 미리 선택받은 자에만 한정한다고 보고 하나님은 소수만을 구원하시고 나머지는 전부 저주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구원받을 자를 은혜로서 미리 정하신다고 하며 인간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원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죄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도무지 선을 행할 수가 없어 멸망이 예정되었다는 것이지요.

 

칼빈 역시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저주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믿었습니다. 칼빈은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저주받은 존재로 태어났으며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 그들의 본성은 하나님께 적대적이고 가증한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으로 인해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침례를 받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무시무시한 교리가 탄생했습니다.

 

후기성도는 이러한 어거스틴에 의해 발전한 교리가 배도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봅니다. 사도들의 죽음은 어거스틴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만 하도록 만들었고 어거스틴은 그의 철학적인 배경으로 잘못된 교리를 탄생시켰죠.

 

많은 사람들이 이 원죄 교리를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라고 하긴 하지만 이 교리를 부정하는 많은 교파들이 있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세례파 혹은 형제들로 알려진 이들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베푸는 종교의 의식인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인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성인 신자에게 이를 다시 베풀었음으로 재세례파의 명칭을 얻었습니다. 또 다른 스의스의 재세례파인이였던 암만의 지도 아래 아미쉬가 탄생했으며 핍박을 피해서 시골생활과 농업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죠. 또한 동방 정교회나 메노나이트도 어거스틴이 말한 원죄의 개념을 부정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교파와 최근에는 일반 개신교회 내에서도 원죄 이론의 허구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前감리교 신학대학교 교수였던 조찬선 목사는 기존의 기독교가 주장하는 원죄론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제2계명에 의하면 아비의 죄는 아들 3, 4대까지만 이른다고 하였다. 아무리 크고 무거운 죄라도 아들 3, 4대까지만 이르고 그 후에는 그 아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제2계명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죄를 원죄라는 명목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수천 대 후손에까지 유전되고 있다는 궤변이 성립

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설이 계명보다 더 우월하고 강력한가? 칼뱅의 주장이 계명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둘째, 원죄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원죄는 십자가의 보혈로 2,000년 전에 벌써 무효화되지 않았는가? 보혈로 씻기지 못하는 죄가 있겠는가?[注1] 2,000년 전에 없어진 죄가 지금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주장은 보혈을 모독하고 무효화시키려는 죄가 아닌가? 천주교에서 원죄는 세례를 받을 때 사함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세례는 보혈보다 더 강력한 것인가? 세례가 원죄를 사함 받는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사할 수는 없다. 오직 보혈만이 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또 원죄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 원죄는 노아 때 홍수로 인하여 없어지고 말았다. 창세기 6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이 크고 악함을 보시고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그리고 노아의 식구 8명의 의인들만 남겨놓고 전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키고 그 후에 노아의 자손들을 통해서 인간 재창조를 단행하셨다. 인간 재창조과정에서 원죄가 적용되는 인간을 또 창조하셨겠는가? 노아 홍수 전에 혹 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홍수 이후에는 원죄가 말소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넷째, 원죄를 처음으로 주장한 자는 터툴리안이다. 그리고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도 가세하였다. 그러므로 그들보다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원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다가 죽었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엘리사도 물론 그랬다. 그들이 원죄를 알지는 못했으나 그들에게도 물론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보혈의 공로를 입지 못하고 죽었으니 모두 멸망의 백성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만일 원죄가 존재한다면조물주는 태초에 인간 창조 때부터 원죄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사랑의 우리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류를 설계하시고 창조하셨을까? 십자가 보혈이있기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인류가 원죄 때문에 멸망하였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것인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창조주께서 그러한 모순의 세계를 창조하셨단 말인가?

[ 조찬선 <기독교 죄악사上> 중에서 ]

 

저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이 교회가 초대 교회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지닌, 회복된 교회라는 간증이 더욱 강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죄를 짓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긴 하였지만 그것이 아담의 범법으로 인한 죄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고 증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담의 범법으로 인해 형벌을 받지 않으며 오로지 우리의 선택 의지에 따른 결정에 따라 형벌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