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아브라함서

이집트 장례 문서에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이???

모로나이 2007. 12. 20. 23:12

 

 아브라함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재 남아있는 파피루스의 일부가 실제로 이집트의 장례식 문서이며 아브라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을 한다. 왜 이집트 문서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번역했다는 것인지....조셉 스미스가 엉터리 같은 내용을 꾸며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이러한 다양한 논란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셉 스미스가 아브라함서를 번역했을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파피루스의 전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추측이 나올 수 있다. 파파루스의 일부는 시카고 대화재 때 손실되었기 때문에 분실되거나 타없어진 다른 조각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다. 예일대학교 출신 이집트학자인 존 지 박사는 조셉 스미스에게 최소 다섯개의 파피루스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그 다섯개 중 오직 두 개에 속해 있던 11개의 조각만이 현재 남아 있는데 현재 팩시밀리 1로 알려진 그림과 함께 발견된 호(Hor)의 두루마리(이집트 호흡의 서)도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팩시밀리 3은 현재 존재하지 않음)

 

니블리 박사는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조셉 스미스가 파피루스를 소유하고 있었을 때 그것은 아름다운 형태로 되어 남아 있었으며 그 중의 하나를 펼치면 맨션 하우스 두 방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인용된 글을 읽고 싶으면 클릭)

 

물론 현재에는 위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지 박사가 추정해 봤을 때 호의 두루마리는 3m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에 8배가 넘는 분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현재 남아 있는 파피루스 조각들은 아브라함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이는 조셉 스미스가 아브라함서를 번역했을 당시 사용된 파피루스 원본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서를 비판하는 이들은 적어도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원래 문서의 13%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문서들이 사자의 서나 호흡의 서와 동일한 것으로 아브라함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조셉 스미스가 아브라함서를 번역한 것이 거짓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자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때때로 두루마리는 서로 붙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조셉 스미스가 사용한 문서가 장례식 용이었다면 그 외에 다른 기록은 있을 수 없다고 추정할 지 모른다. 그러나 몇몇 사자의 서 파피루스는 다른 문서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카이로에서 조각으로 발견된 18대 왕조 사자의 서를 보면 뒷 면에는 죽은 자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앞 면에는 다른 기록이 기록되어 있다. 반디어 파피루스도 뒷면에 사자의 서가 있지만 앞면에는 제단에서 희생된(아브라함서의 내용과 비슷함) 메리어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하크니스 파피루스와 BM10507(일반인 장례식 문서)에는 서로 다른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서가 호흡의 서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왜 그토록 중요한 문서가 이교도인 이집트 장례 문서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일까? 

 

아브라함서는 아브라함부터 2세기 유대인들(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전해 내려왔을 것이다. 뭐 이건 구약 성경이 대대손손 유대인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것과 비슷하니 의문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몇몇 유대인 편집자들이 그들의 문서를 이집트 문서에 포함시키는 관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고? 바로 이집트 장례문서에 담겨져 있는 상징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주장은 최소 3가지 알려진 유대인 문서를 통해 뒷받침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집트의 고대 문서인 "아메네모페의 교훈(the Instructions of Amenemope)이 실제로 성경 잠언 일부의 원본이라고 주장한다. (관련자료를 읽고 싶으면 클릭) 또 최근에 발견된 "아브라함의 성약"에는 아브라함서와 유사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문서에는 사자의 서에서 사용된 이집트 파피루스와 비슷한 것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의 성약에서 묘사하고 있는 심판 장면이 그러하다. 그 심판 장면에서 이집트의 신인 오시리스가 아벨이 되고 이집트 신들이 천사가 되는 변형이 시도되고 있다. 그 저자는 이집트 모양을 보았지만 실제 그 모양 속에서 셈족의 인물들을 읽었던 것이다.

 

세번째 예는 누가 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테이블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데 나사로가 죽었을 때 천사가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부자가 죽었을 때 그는 지옥에 가게 되어 멀리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본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죽은 나사로를 그의 형제들에게 보내서 회개하여 동일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제 히브리어로 쓰여진 유명한 유대인 우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이집트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집트 전설에 의하면 이름이 다르게 나오지만 기본 이야기틀과 교훈은 동일하다. 그러나 이집트판에서는 오시리스가 아브라함의 역할로 나온다. 이는 고대 유대인들이 이방신이 오시리시를 중요한 아벨이나 아브라함과 같은 유대인물과 일치시켜 표현하는데 어떤 문제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관련 자료 읽고 싶으면 클릭)

 

이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서에 나오는 팩시밀리 1번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에서는 조셉 스미스가 사자 모양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인물을 아브라함이라 칭하고 있는데 이집트학자들은 그 형상이 실제 오시리스이기 때문에 조셉 스미스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고대 유대인 방법처럼 조셉 스미스도 펙시밀리 1에 나오는 인물을 아브라함으로 적용하여 해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실제로 아브라함이 그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후대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관습에 따라 몇몇 이집트 그림을 차용하여 아브라함의 삶과 천문학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관심의 초점은 기원전 2세기 경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제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맞춰져야만 한다. 

 

팩시밀리 1을 예로 살펴보자.

 

그 그림을 보면 바닥 아래 한 마리의 악어가 있음을 보게 된다. 악어 아래에는 수많은 수직선이 보인다. 조셉 스미스는 이 선을 "하늘의 기둥"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집트 학자들은 그 해석이 정확하지 않으며 실제는 궁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조셉은 악어 주변의 명확한 선들을 라우키양, 또는 우리 머리 위에 펼쳐진 광활한 공간 혹은 창공, 높은 하늘로 해석하는 반면 이집트 학자들은 단순히 악어가 수영하고 있는 물을 의미할 뿐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집트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조셉은 정말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셉의 해석과 기원전 2세기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방식을 서로 비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조셉이 말한 라우키양은 히브리어로 "광활한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히브리인의 우주관에 의하면 하늘은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 두꺼운 둥근 지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팩시밀리 1에 나오는 그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악어가 수영하고 있는 물 아래 기둥들이 보이지 않는가?? 마치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우주를 축소해서 보여지고 있는 것 같지 않는가 말이다.

 

이처럼 히브리식의 이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쉽게 특정한 교리를 전달하기 위해 호흡의 서에 담긴 이미지를 아브라함서에서 새로이 받아들여 해석했을 가능성에 대해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