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개인적 생각들

골수 몰몬은 대체적으로 교만한 사람??

모로나이 2008. 6. 15. 22:45

나는 골수 몰몬일까?? ‘골수’의 정의를 단순하게 특정 신앙, 신조에 대해 진지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골수다. 그러나 골수의 개념을 자신의 것만 옳다고 주장하고 그렇지 않는 것들은 철저하게 배척하는 것으로 본다면 나는 골수가 아니다. 특정 신앙에 대해 진지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다른 것들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 것은 서로 모순된 일일까?? 아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분법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분이었다면 이러한 태도에 대해 수긍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1997년 9월 후기성도로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는 내 삶과 사고 방식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 대다수의 친구를 이 교회에서 만났고 계명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삶의 양식으로서 체질화 되어 버렸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틀도 이 교회에서 가르침 받은 것에 의해 생겨났다고 보면 난 정말 철저한 골수 몰몬으로 불릴지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교회는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가 연구하고 기도하고 선택한 것이지 단순히 감정에 의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도 있었으며 지금도 그러한 기회는 유효하다.

 

어느 분의 말과는 달리, 지금까지 교회에서 생활해 오면서 교회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옳고, 세상적인 것들은 가증하고 육욕적이며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적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세상에 속하지 말라,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는 성경 말씀과 일치하게 세상에 만연하게 흐르는 일부 거짓된 가르침과 풍습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거짓으로 부정한 적은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남아서 세상의 빛이 되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요 17:15, 마태 5:14) 그렇기 때문에 일부 극단적인 단체들처럼 세상적인 것들이라면 무조건 사탄의 것으로 부정하여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세계 복지, 평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있고 그것이 구원의 계획의 일부임으로 배움으로서 (니후 2:11) 우리를 적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따르지는 않지만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 더욱 성장할 기회로 삼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부지런히 우리 교회를 비판하는 서적들과 교회의 정체를 “폭로”한다는 자료들도 경전 못지않게(^^;;) 연구할 수 있었으며 오히려 내 신앙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교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렸지만 “질문하지 말라. 그런 것 다시는 읽지 말라”는 말로 나의 정직한 의문을 묵살하려는 사람도 없었으며 “배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로 협박하는 이들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하시는 분은 있긴 했지만 그로 인해 정죄당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몇몇 분들은 마치 우리 교회가 정보를 차단하고 알고자 하는 의도를 묵살하려는, 마치 북한 독재체제의 모습을 한 것인 양 묘사하고는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절대 그러한 일은 없었다.

 

교회를 떠난 어떤 분은 말하기를 “골수 몰몬은 한결같이 교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몇가지 증거(?)를 제시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다.

 

1) 교만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이미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보다 잘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들으려 하겠는가. 이건 골수 몰몬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잠언 16:18에 의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후기성도들도 불완전한 인간들인지라 교만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걸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골수 몰몬, 즉 진지하게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한결같이 교만하다는, 그 일방적인 정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교회는 감독이나 스테이크 회장, 심지어 칠십인과 같은 지도자로 봉사하다가 해임되면 초등회에서 부름받아 기쁜 마음으로 임한다. “아니 지도자 하던 내가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를 가르쳐?”라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자질의 부족이지 진지한 신앙을 가진 자들의 특징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말 자기에게 주어진 부름에 만족하고 기쁘게 임한다. 또한 지도자라 해도 청남 청녀들에게서 배울 수 있으며 심지어 초등회 어린이들에게서도 많은 것들을 배운다는 간증을 여러 번 들었다. 나는 지금껏 10년 동안 교회 생활을 했지만 침례 받은 지 1년도 채 안된 20세 청년 청남회장의 1보좌로서 봉사하며 그 형제를 도와주며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한 감사한다. 또한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정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에서 배울 장점들을 자주 교회 회원들과 나누면서 그들에게 배우라고 권고한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하여 골수 몰몬은 남의 의견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교만한 사람들이라 하는가? 본인이 과거 그러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지금, 모든 회원들이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2) 교만한 사람은 진실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들은말은 진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떤 진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상충되거나 충돌할 때는 언제든 자신의 것을 우위에 둔다.그리고 진실을 애써 부정하고 왜곡하고 얕잡아보는 편협한 짓거리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갖고 있는 사고방식 위주로 사물을 보기 마련이다. 이것은 누가 골수고 교만하고 하는 따위로 정의내릴 것들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사물을 본다. 현재 교회를 떠난 분의 글을 읽어 보면 역시 그분의 사고 방식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있음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이걸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물론 자기가 믿고 있는 것에 상충되는 것이 있을 경우 첫 반응 자체가 부정이긴 하지만, 더욱 진실을 알아가면서 마음 아파하며 자신의 믿음을 수정해 나간다. 거짓된 것을 고집하지 않고 올바른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랬다. 우리 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정말 객관적 입장에서 보고 싶었다. 생각없이 무분별한 사람들이 거짓으로 조작해 낸 것만 있지는 않을 것임은 분명했고 정말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분명 일어난 것들도 있다. 나도 처음 그러한 것들을 접했을 때 대단한 충격이었고 이 교회가 거짓이 아닐까라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면밀하게 연구해 보면 상당수가 사실의 일부만 선택하여 조작한 것이거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염두해 두며 사고의 전환을 했을 경우 충분히 이해될 만한 것들이었다. 내가 정말 알고 있고 확신하는 것들을 부정하고 버릴 만큼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마다 해석과 그에 따르는 반응이 다르겠지만 그것마저도 나는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3) 교만한 사람은 변명이 많다. 교만한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교회 회원들, 솔직히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지 않았다. 내 주변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잘났고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 거의 없다. 잘난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것도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후 10:17)는 말씀처럼 “나는 정말 이 복음을 통해 행복해 졌습니다.”며 “나는 정말 약하지만 그로 인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갔다”(고후 11:30 참조)는 것이 전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물론 우리 교회 회원 중에서도 세상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교회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세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또한 변명의 정의가 무엇인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해의 변화 자체를 변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과학의 경우도 특정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에 충분히 수정이 가능하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학인데 이걸 역시 변명이라고 봐야 할까?? 예전엔 사람들이 지구가 평형하다고 믿다가 나중에 둥글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걸 변명이라 해야 할까??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단편적 정보를 각 시대 사람들의 시각과 환경에 따라 해석되다가, 그것이 과학의 발견, 발전으로 인해 수정될 수 있는데... 그걸 변명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처음 주장한 것을 어떤 근거가 등장해서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맞다는 것을 끝까지 우기는 것이 교만의 태도 아닐까??

 

 

4) 교만한 사람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교만한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확신을 한꺼풀만 벗겨보면 그 뒤에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진실 앞에 두려움에 떠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골수 몰몬은 교만한 사람이고, 교만한 사람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 결국 골수 몰몬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인데....그렇게 두려움이 많은데 어떻게 나는 반대 주장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타종파에도 다녀보면서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려 했을까???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 타종교 사람들과 만나 대화할 때 어찌도 그렇게 떳떳하고 흔들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선교사들은 20대, 어찌보면 철부지들인데도 여러 종파의 사람들과 반대자들을 만나서도 굳건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개인적으로 선교사업 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물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일 수 있으며 그러한 두려움은 많이 느꼈지만...^^;;) 우리 교회가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면서 도전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들 앞에서도 평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 입을 빌어 말씀하시는 성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후기성도들도 불완전한 사람들이고 잘못을 범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비록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엇이 그러한지 시시비비를 논해서 받아들이지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후기성도도 불완전한 사람들이기에 교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진지하게 신앙생활하는 골수 몰몬들은 대체적으로 교만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 이걸 교만의 증거로 볼 수는 있겠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일종의 용기임을 덧붙인다.)

 

교회를 떠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골수 몰몬은 대체적으로 교만함 사람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분. 혹시 과거 몰몬이던 시절 자신의 모습이 현재 골수 몰몬들의 전체 모습이라 일방적인 단죄를 내리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서 골수몰몬=교만한 사람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