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침례와 같은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서 신권과 같은 개념들은 불필요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라면 자동적으로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권능이 생긴다는 주장을 하지요. 이것을 만인 제사장설이라고 부르는데 성경에 언급된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에 따르는 모든 권세가 자동적으로 주어진다고 믿기에 안수를 통한 성임이나 신권의 권세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종교 개혁자들은 자연스럽게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권세의 개념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한 개념을 거부해야만 그들 종교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연결되는 권세의 개념이 아니라 성경만을 근거로 하여 모든 권세가 주어진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들은 가톨릭이나 몇몇 단체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독교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그것이 성경적 개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성경만 믿으면 자동적으로 그 하나님의 권세가 주어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러한 개념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한 대다수 개신교인들이 그들의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게 되는 근거로 윗 구절을 인용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모든 이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자동적으로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실제 사도 베드로는 이 구절을 사용했을 때에는 구약 시대에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5,6)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뜻을 밝히시면서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말씀하셨으나 실제로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레위 족속만을 선택하셨고 구약 전체에 걸쳐서 왕과 제사장의 역할은 분리가 되어있었습니다.
루터의 경우 베드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실 우리는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장에서 언급한 대로 모든 이들은 세례를 통해서 성별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베드로는 제사장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세례(침례)를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시록 1:5,6)
루터는 이 구절도 인용하면서 “예수의 피를 통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이 구절도 출애굽기 19:5,6에서 하신 것을 인용한 것으로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고 있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 28:19)
많은 개신교인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풀어야 할 위대한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16절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11명의 제자들(유다는 자살해서 제외되었음)에게만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도 동일한 명령이 주어져 있으나 그 역시 예수께서 오직 11명의 사도들에게만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가 16:14-16)
만인 제사장설이라는 믿음에 기초를 둔 개신교회 성직자들은 종종 하나님 혹은 성경 말씀이 자신을 주님의 사업을 위해 불렀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사명을 깨닫고,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증거로구나 생각하여 스스로를 성직자로 자처하여 사역을 하는 이들도 종종 있지요. 그리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정해진 코스를 다 받고 성직자가 되면서 자신은 하나님에게서 부름을 받은 종이라고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1-23)
주님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을 할 수 있고 그분의 이름으로 악마를 쫒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르는 자로 인정하여 그분에게서 떠나가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권능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행한다고 공언하는 것은 그릇된 일입니다. 다시 읽어 보십시오. 아무리 주님의 이름을 빌려 선한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주님에 의해서 버림 받게 되리라는 가슴 아픈 일을 말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특별한 권능은 초대 교회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사도행전 8:14-20)
시몬은 성령을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권능”을 사려고 했습니다. 이 권능을 후기성도들은 “신권”이라고 부릅니다. 시몬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상태이지만 그가 성신의 은사를 위해 안수할 수 있는 권능을 자동적으로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 15:16)
다시 말해서 주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권세는 누가 침례를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받은 이후에 주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싶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부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님에 의해서 선택을 받게 되는 것이죠. 또한 누가복음 6:13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렇기에 당시 그리스도의 12 제자만이 사도로서 선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 더욱 세부적인 점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 3:13-15)
이 구절을 통해서 사도들은 다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가지지 못한 “권능”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주님께서는 그 동일한 권능을 다른 70인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누가 10장 참조)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침례와 성신의 은사를 부여하기 위한 권능의 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사도 19:1-6)
이 12명의 사람들(7절 참조)은 요한의 침례라 부르는 것을 받았다는 이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침례는 실제 침례 요한에 의해 받은 것이 아니라 요한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에 의해 집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침례 요한은 그가 침례를 베풀 때에 성신의 권세에 대해서 가르쳤을 터인데 이들은 성신(성령)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마태 3:11, 요한 1:29-34 참조)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침례의 효력 자체에 의심을 품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다시금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조셉 스미스가 1842년에 기록한 신앙개조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신앙개조 3-6)
3.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4. 우리는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와 의식은 첫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둘째 회개, 셋째 죄 사함을 위한 침수로써의 침례, 넷째 성신의 은사를 위한 안수례임을 믿는다.
5. 우리는 사람이 복음을 전파하고 그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예언에 의하여 또 권세 있는 자에 의한 안수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야 함을 믿는다.
6. 우리는 초대 교회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조직 즉 사도, 선지자, 감독, 교사, 축복사 등을 믿는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고전 12:27-29)
분명하게 모든 이들이 교회 안에서 동일한 권세를 가지고 봉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 4:11-13)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완전하지도 신앙에서 연합되지도 않은 것으로 보면 이러한 교회 내에 다양한 직분들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성역을 베푸실 적에 사도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 16:19)
며칠 후에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모세와 엘리야를 보게 되는 변형의 산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 17:1-8) 이 사건에 대해 조셉 스미스는 “구세주, 모세, 그리고 엘리야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특별한 열쇠(권세)를 주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외 다른 사도들은 점차적으로 이 권세를 받았죠.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권세나 침례와 같은 의식을 집행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의식을 집행할 열쇠(권능)은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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