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것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라 기록하고 있지요. 하지만...그 영원에 관한 것 중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가 측량할 수가 없게 하셨다고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면서도, 사람으로서는 그분의 뜻을 감히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주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인간들은 신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어 왔으며, 다양한 형태의 종교와 신을 만들어 예배해 왔습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태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인간으로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하거나, 또는 아버지에 대한 권위가 만들어낸 정신이상이라고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영원의 본질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감히 측량할 수 없기에 다양한 종교를 만들어 섬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사도 17:27)
그렇습니다. 인간으로서 측량할 수 없으나 항상 갈구해 왔던 그 하나님(신)이란 존재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으시며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더듬는다’는 행위는 보통 눈으로 보지 못할 경우 손으로 여기저기를 만져보면서 하나하나 그 본질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형태가 명확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심하고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만져 보면서 신이란 존재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구절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는다고도 하였지요.
하나님(신)에 대한 저의 추구와 갈망은 바로 이런 더듬는 행위와 같았습니다. 더듬어 알 필요 없이 명확하게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니였습니다.
“보라, 너는 이해하지 못하였나니,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줄 줄로 여겼도다. 그러나 보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그러고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내게 물어야 하나니,” (교성 9:7,8)
이 구절에 의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그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 간구만 하면 아무런 응답도 없으며 깨닫는 바도 없을 겁니다. 기도하기 전에 그것이 참된지 아닌지를 부지런히 “연구”해야만 하는 겁니다. 이 연구라는 과정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과 함께 정확한 자료, 정보를 근거로 해야만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만족해 한다 한들 충분하지 않지요. 그제야 자신이 연구하고 결정내린 것들이 옳은 일이지에 대해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작업이 필요한 겁니다.
몰몬경의 참됨을 알 수 있는 열쇠가 담겼다는 모로나이서 10:4절을 선교사들이 자주 인용합니다. 이것이 참된지 아닌지 기도해 보면 성신의 권세로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기도의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바로 3절에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기록을 읽게 되거든, 너희는 아담이 창조된 때로부터 너희가 이 기록을 받게 될 때까지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셨던가를 기억하고, 그것을 너희 마음에 깊이 생각하라.” (모로나이서 10:3)
바로 경전을 읽을 때 주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신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깊이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연구”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철저한 연구와 기도, 묵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주는 진리를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후기성도는 이성이나 연구의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기도하고 받는 따뜻한 느낌을 근거로 한다는 식의 비난은 거짓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 교파와 종교를 접하고 연구해 오면서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하지 못하다 후기성도에서 참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제게 있어 대단한 축복입니다. 침례를 받은 이후에도 줄곧 이 길이 하나님의 길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글도 읽으며 그들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도, 줄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저를 이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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