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반박문

“몰몬교 골수분자 "모로나이"와의 논쟁 글에 대한 재반박

모로나이 2010. 8. 1. 00:18


다음 글은 복음전도사로 자처하시는 김성엽님께서 “몰몬교 골수분자 "모로나이"와의 논쟁 글” 제목으로 반박하신 글에 대한 모로나이의 재반박입니다.


원문: http://blog.naver.com/botomm/20110745904



박스안의 글은 김성엽님의 글입니다.


몰몬교에서 선교사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을 한번쯤, 만나 본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젊은 남자들은, 가슴에, 장로라는 명패를 붙이고 다닌다.

그런데 그들은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몰몬경이라는 자신들만의 바이블을 전한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이 만일 영원한 구원의 소식만을 전한다면,

왜 구태어 몰몬경이라는 것을 사용하는가?

성경 가지고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내가 몰몬경을 살펴 본 결과,

모로나이라는 사탄이 보낸 천사가,

조셉 스미스를 사용해서,

조셉 스미스를 선지가가 되게 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물론 몰몬교인들은 모로나이라는 천사를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고 알지만 말이다.

이 사람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이 있다고 하였다.

과연 그러한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자신이 있기에 전하는 것인가?

사도바울이 자신이 있어서 복음을 증거했는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했을 때, 자신의 육체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핍박를 감당했을 떄,

그러한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아는가? 그렇지만 그는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자신의 자신감으로 전하지 않았다.

모로나이라는 자는,

자신의 교만함을 지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님은 단정한 외모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선교사들의 외적 모습은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그분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는 들어보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몰몬경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그 복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성경과는 달리 몰몬경에는 복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분명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자주 인용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복음이 아닌 몰몬경만을 전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은 사도 바울은 비롯한 1세기 당시 제자들이 과연 무엇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고 보십니까? 설마 그들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의 성경을 들고서 구절을 찾아가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들이 선교 사업을 할 당시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전서도 없었으며, 구약 성경의 파피루스의 일부만을 가지고 사용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사도 바울은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인지가 핵심이지 그 복음을 전하는 도구를 전부라고 봐서는 안되겠지요?? 그러하니 몰몬경은 복음이 아니라고 논하기에 앞서 그 속에 담긴 어느 메시지가 복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님은 바울이 두려움을 가지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바울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7,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느꼈던 자신감은, 그 자신의 성격의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두려움대신 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며, 그 복음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했기에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님은 바울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쩔쩔맨 것처럼 그리고 있고, 복음을 전할 때 누리는 자신감을 마치 자만의 한 형태로 호도하고 있으니 과연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있다고 한 것도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제가 믿고 있는 복음이 주는 힘이 위대한 것임을 알기에,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드린 말씀이었으니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이 모로나이라는 사람은, 베드로나 사도 바울 같은 분들이 전한 기식들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베드로나 사도바울이 무엇을 증거했는가?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며, 하늘에서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게 하라고 경고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권세를 사도 바울에게 부여하셨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라고 경고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구원의 근원은 아닐지라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기록한 기록들에서 구원의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두려우신 하나님앞에 흠없이 나타나게 되는 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 사람은 조셉 스미스의 복음 같은 것은 없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그런데 성경에는 사도 바울의 복음이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에게 전하라고 하신, 은혜의 경륜을 사도바울에게 맡기셔서,

이방인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받은 복음이다.

복음 전도자라 한다면, 사도 바울의 복음, 즉 은혜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그런데 몰몬경에는 조셉 스미스의 복음이 있는데,

그 조셉 스미스의 복음은, 모로나이로부터 받은 가짜 복음이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란, 성경에 기록되었고, 사도 바울의 은혜의 복음과는,

완전히 틀린 가짜 복음 이라는 것이다.


핵심에서 한참 벗어나셨군요. 복음, 즉 구원을 주는 복된 소식은 바울의 복음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절대시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사도 바울을 통해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해야지요.


이와 비슷한 내용이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논쟁이 있었나 봅니다. 자기는 바울에게 침례를 받았다, 또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침례를 받았다면서 자기에게 침례를 준 사람을 우선시하면서 여러 파가 구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는 바울의 복음이다, 이는 아볼로의 복음이다 하면서 논쟁을 일으키는 것과 참으로 유사한 행태입니다. 그럴 때 바울이 무엇이라고 질문하였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고전 1:1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로 선택된 도구를 절대시하다 보니 이런 저런 논쟁이 벌어진 현실에서, 바울은 단 한마디, 즉 그리스도께서 나뉘시지 않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면서 17절에 자기는 복음을 전하기로 보냄을 받은 도구일 뿐임을 재차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조셉 스미스는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은 도구일 뿐이기에 조셉 스미스의 복음이니 베드로의 복음이니 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님이 그토록 강조하시는 흠정역 성경에도 마태복음을 The gospel of Mattew"(마태의 복음)라 하지 않고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마태에 의한 복음)이라 하고 있지요, 베드로나 바울이 1세기 당시 경륜의 시대를 맡도록 권세 받은 사도였다면,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현대 선지자들은 현대 경륜의 시대를 맡도록 권세받은 사도라고 보시면 될 일입니다. 조셉 스미스 운운한다고 하여 베드로나 바울을 깍아 내리거나 그들이 전한 복음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후기 성도라고 여긴다.

그렇다고 한다면, 후기 성도라는 몰몬교회가 생기기 전의 성도들은,

도대체 무슨 성도인가? 전기 성도?

또한 왜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에 붙인 말일 성도라는 이름을,

왜 후기 성도라고 개명을 했는가?


후기성도라는 말은 영어로 Latter-day saint즉 후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이 후대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1세기 당시를 살던 초기 성도들을 전제로 한 것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성도를 지칭하기 위해 부르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또한 말일성도나 후기성도나 영어로는 전혀 변함이 없고, 다만 한국 교회 초기에 번역된 말일성도라는 표현이 영어의 표현과 다소 다르기 때문에 수정한 것일 뿐, 그 외 교리나 행정적인 면에서 변화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자! 나는 사도 바울의 삶도 전한다, 또한 그의 삶을 본받는다.

그의 삶을 전하고, 그의 삶을 본받기 전에,

내가 우선으로 전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형틀에서의 죽음과 그분의 육체의 부활이다. 사도 바울을 그것을 전하다가 고초를 받았으며, 옥고를 치렀다.

사도 바울은 가브리엘 천사나 미카엘 천사같은 천사의 이름을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데 조셉 스미스나 브리감 영은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이름을 수 없이 언급하였다.

그들의 종교의 바이블이 왜 몰몬경이라고 불리는지 아는가?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몰몬경을 사용하는 종교는 모로나이교이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후기성도 역시 몰몬경이니 조셉 스미스의 생애를 전하기에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선적으로 전합니다.


조셉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 사람들은 조셉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네 종교의 기본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 때 조셉이 말한 것은 몰몬경이나 신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종교의 기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간증, 즉 그분은 돌아가셨고, 매장되셨으며,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종교에 관한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그것에 부속되어 있을 뿐입니다.” (Teachings of Presidents of the Church: Joseph Smith (2007), 49).


그렇습니다. 님이 그토록 다른 복음이라 떠드시는 몰몬경이나 그 밖에 모든 것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셨고 속죄를 이루신 다음 부활하셔셔 승천하셨다는 것에 부속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우선일 뿐이며 그것이 복음의 정수입니다. 그러나 님은 계속해서 그러한 핵심이나 정수가 아닌 계속 “부속되어 있을 뿐”인 것들에 초점을 맞추며 비난을 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뿐이지요.


그리고 몰몬경이 왜 몰몬경인지 제대로된 이유를 모르시는군요. 몰몬은 모로나이의 아버지입니다. 몰몬경이란 몰몬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전해 내려오던 기록을 모아 편집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태가 쓴 그의 복음을 마태복음이라 한 것처럼, 베드로가 쓴 복음을 베드로전후서라고 부르는 것처럼 편집자나 기록자의 이름을 명칭의 일부로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혹자는 몰몬경이 몰몬을 전하는 경전이 아니냐며 불순한 눈빛으로 보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되묻습니다. 그럼 누가 복음은 누가를 전하는 경전이며, 요한 계시록은 요한을 전하는 경전입니까??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님은 킹제임스를 증거하는 사람입니까???


이 모로나이라는 사람은, 1611년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영역번역본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으려는 사람이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이 가장 원본에 가깝고 정확하다는 것은 수 많은 세월 동안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마치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들의 번역본인 신세계 성경이 가장 원본에 가깝고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올려 놓는다면, 이 모로나이는 성경에 대해 무지에 가깝다고 나는 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모로나이씨! 그대들은 에스겔의 두 막대기 가운데 하나는 몰몬경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믿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그것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가르칠 것이지 않소?

그리고 그대들의 회당의 회원이 되어야, 회복된 복음을 믿는 자들이라고 여길 것이지 않소?

성경에는 "회복된 복음"이라는 말 자체가 없소이다.

바로 님이 말하는 그 "회복된 복음"이라는 것이, 조셉 스미스의 복음이 되는 것이오.

사도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회복된 복음이라고 주장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소이다.

조셉 스미스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소이다.

아마 님도 죽으면 조셉 스미스가 있는 지옥에 가서 조셉 스미스를 향하여 이를 갈게 될 것이오.


님이야말로 성경의 편집과 관련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시는군요. 그저 말씀보전학회를 통해 주어지는 킹제임스 성경 관련 기사만을 줄곧 봐서, 마치 그것이 유일한 정설인줄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논하고 싶지는 않으나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의 글들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사본들을 근거로 했을 때는 킹제임스 성경을 유일하다고 볼 절대적인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좀 왜곡이 심한 책이긴 하지만 에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읽어 보시면 원본에는 전혀 없고 일부 사본에만 들어 있어 의심스러운 모든 부분이 킹제임스 성경에 “변개가 되지 않는 부분”이라며 자신 있게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전부 신뢰할 수는 없어도 상당수가 근거가 있는 주장들입니다.)


대표적인 예만 살펴보죠. 흠정역 성경에서 너무나 자랑스럽게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구절로 제시된 요한일서 5장 7,8절을 보면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 이 셋은 하나이니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원본에는 전혀 없는 내용으로 학자들이 인정한 부분입니다. 현재 그 구절이 들어 있는 총 네 개의 사본이 존재하는데 모두 16세기나 17세기의 것이며 그 이전 사본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흠정역 성경에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 구절을 원본에 있는 것인 양 강조하고 있더군요.


성경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단편적으로 사본만 존재하며, 이문들의 양도 상당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유일하며 절대적인 사본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성경도 100% 정확하고 완벽하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전무한데 님은 너무나 순진하게도 1611년판 성경만이 절대적이고 완벽하며, 감히 타번역본과 비교할 수 없다고 절대권을 부여하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리고 회복된 복음이란 말이 없다고 하셨나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사도 3:21)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요한 14:6)


킹제임스성경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이들이 중세 교회가 배도했고, 성경을 변개했다는 식으로 많이들 말하지요. 저희 교회에서도 이처럼 사도들이 죽은 다음 복음이 변질되었고, 많은 왜곡이 있었다고 믿으며 그것이 후대에 완벽한 형태로 다시금 회복되었다 믿습니다. 회복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손상된 초기의 것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는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만물의 회복의 한 과정일 것이며, 마지막 날 천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회복된 복음”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지 초기 복음과 다른 개념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왜 회복된 복음이란 표현을 안쓰냐고 물으셨지요. 배도로 복음이 왜곡되기 이전 사람이니 당연히 “회복”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었을텐데 이것이 왜 이상한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조셉 스미스가 지옥불에 있던 천국에 있던 그것은 님의 관할이 아니며, 님이 알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인간에게 구원을 주느냐 심판을 주느냐는 오로지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데 왜 불완전한 인간인 사람들이 넌 천국에, 넌 지옥에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권한에 도전하지 말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교제 기피의 대상이 있었소,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교제 기피의 대상을 두셨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 기피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아시오?

바로 파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과 유대인들의 치리 인들이오.

예수님을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세대들" 이라고 그들의 귓가에 우렁차게 외쳤소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발언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셨소? 이를 갈며 언제고 예수를 죽이고야 말거야,

라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읽어 본 적이 없소?

모로나이씨! 그대들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창기나 세리와 교제를 나눈 적이 있소?

술집에 찾아가서, 자신의 몸을 파는 창녀에게 접근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그들과 예수님의 생명의 빵을 나눈적이 있소?

또한 세리(세금 징수원)이 있는 곳, 세관이나, 세무소에 찾아가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본 적이 있소?

만일 모로나이씨, 그대가 그러한 일을 하였다고, 그대의 가슴에 손을 대고, 말한다면,

나는 그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겠소.

그러나, 몰몬교를 반대하는 개신교인들에게만 접근해서,

또한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는 명목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접근해서,

조셉 스미스에 관한 만화를 보여준다면, 나는 그대를 사탄의 종으로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오.

성경은 교제 기피의 대상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소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서로 일치 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소.

그리스도인들은 벨리알을 따르는 자들과 교제 할 수 없다는 것이오.

무엇이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이오?

사탄을 따르는 자들과 교제라고 해야,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요?

성경 기록에 따르면,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바알을 빠랐던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하게 죽이셨다는 것을 모르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질투가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오?


바울이나 예수님이 교제를 기피한 인물이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을 아노라 하면서, 교만하고, 자신들만이 옳고 남들은 전부 정죄해버린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세상적으로는 무시를 당하지만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온전히 받아 주셨습니다. 한 번 묻겠습니까? 님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겸손한 세리같은 사람입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자신의 의와 지식은 자랑하면서 남들은 전부 지옥의 자녀로 정죄하는 일을 일쌈는 님이 바리새인처럼 보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무지하지만,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제 주변의 사람들이 더욱 주님의 자녀처럼 보입니다. (뭐 이는 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니 절대시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하니 정말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그저 감정적인 글들만 쏟아내지 마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다가가 가슴으로 호소하면서 복음을 전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창기들이나 세금 징수원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일은 기억에 없습니다. (님은 그렇게 해보셨나 보네요.)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전 개신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도 않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은 타종파에 대해 적대적이라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그냥 멍하니 있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소개했고, 실제 그렇게 하는 과정 중에 버스 아저씨의 욕설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창기나 세금 징수원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바에야 알 수야 없지 않을까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멈추어 있는 순간에도 옆 사람에게 복음을 소개했으며,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분들에게도 소개했죠. 그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복음을 인식하고 후에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저는 그저 씨를 뿌릴 뿐이며 기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로나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혼을 걱정했었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였는데,

이해한다는 사람이 계속해서 몰몬교를 전한다면, 그 이해는 위선이 아닐 수 없다.

모로나이씨, 그대가 그대에게 진리를 전해 주었던 성경 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조건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지라도, 그대의 마음 속에는, 성경 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비판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부인하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소?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랑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믿는 신앙 자체를 진리로 인식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이슬람교인들을 이해한다고 해서, 무하메드를 선지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왜 위선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 제가 비판하는 사람이란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는다 하면서 그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에 한합니다. 예수님이 비판하신 자들이 바로 그러한 이들이 아니였나요?? 님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1611년 킹제임스성경이 나를 위해 십자 형틀에 못박힌 것은 아니오.

그러나 1611년 킹제임스성경에 기록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 형틀에 나를 위하여 못박히셨소. 그러나 1611년 킹제임스성경은 나를 위하여 고통을 받았소. 그 이유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대 같은 사람들이 킹제임스성경에 대하여 비판할 것이기 때문이오. 로마 카톨릭은 킹제임스성경에 대하여 이를 부르르 갈고 있는 종교 집단이오, 그리고 그들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뜯어 고칠 까하는 궁리를 해 대는 집단이오.

이 정도면 1611년 킹제임스성경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겠소? 1611년 킹제임스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원의 기초가 정확무오하게 기록된 말씀이오.


역시나 님은 1611년판 성경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우상 숭배에 빠져 계시는군요. 왜 현대에 성경의 원본이 없는지 아십니까?? 제 생각에는 만약 원본이 존재한다면 후대에 많은 사람들은 그 사본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또 다른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존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중세 사람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비롯하여 십자가 형틀,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한 장소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기괴한 형태의 우상숭배를 실시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님은 또다른 형태의 우상숭배, 즉 1611년 성경이 님을 위해 고통을 받았으며, 그것만을 구원의 기초가 기록된 말씀이라 하시는군요. 증거가 철저하게 무시될 때 발생하는 비극을 여기서도 보게 됩니다.


로마카톨릭만이 흠정역에 대해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흠정역 성경에 참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아요. 그에 대한 증거가 있으니 그런 것이지요....그러하오니 부디 그런 우상숭배에 빠져 있지 마시고 그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만을 증거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 전도자 아닙니까??


님은 저와 대면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요.

그런데 님은 저에게 서로를 인정할 마음이 되었을 경우에는 만날 수가 있다고 하시는 구려,

내가 그대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나와 교제할 마음이 있소?

님은 교제 기피의 대상을 두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소.

교제 기피의 대상을 지정한다면, 마치 파리새인들과 같다면서 말이오.

나에 대한 교제를 원하는 마음이 쥐꼬리만치라도 있다면,

교제합시다. 그리고 성경을 펴놓고 말입니다.

만일 나에 대하여 교제할 마음이 없다면, 저 역시 그대에 대하여,

아! 모로나이씨는, 교제 기피의 대상을 지정하는 구나! 라고 여길 것이오.

이런 판단의 말을 저로부터 읽게 된 것에 마음이 상했다해도,

나는 이런 판단의 말에 후회하지 않겠소.


제가 성경을 가지고 토론하겠다는 사람을 직접 만나본 경험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것만을 가지고 증거하다가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철저하게 외면해 버리는, 감정적인 결말이 상당수거든요. 글에서 보는 님의 모습도 그처럼 불같은데 직접 만났다가는 감정만 상해버릴 것 같아 우려가 되며, 실제 그런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 봅니다.


저는 성경을 펴놓고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온라인상에서 얼마든지 토론에 응해드릴 수 있습니다. 님이 장소를 선택하시던 제가 장소를 선택하던 님이 결정하신다면 바로 응해드리지요.


모로나이씨!

나는 그대를 심히 불쌍하게 여기고 있소이다.

어찌하여 사탄의 회당에 들어갔으며, 또한 그 회당안에서 사탄으로부터 오는 거짓 교리를

배우는지에 대하여 심히 불쌍하게 여기고 있소이다.내가 그대에게 간곡히 말하겠소.

그곳에서 빠져나오시오.

과거 프로테스탄트들이 로마 카톨릭이라는 종교 집단에서 빠져 나왔듯이 말이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표현이 무엇이던지 간에 일단 관심을 보여주시니 감사할 수밖에요. 하지만 님에 대한 저의 마음도 동일하니 이해하길 바랍니다. 1611년판 흠정역 성경에 대한 또 다른 우상숭배에 빠져 그 외에 것들에 대해 전부 마음의 문을 닫는 그 것만으로 심히 불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