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복음전도사로 자처하시는 김성엽님께서 “몰몬이 모로나이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몰몬교 골수 분자의 나의 글에 대한 재반박"을 다시금 반박한 내용입니다.
원문
(박스 안의 내용은 김성엽님의 글이며 그외 글은 저의 반박입니다.)
나의 경고문: 모로나이씨나, 몰몬교인들은 몰몬경을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써 사용한다고 하였다. 왜 그들은 성경만을 가지고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지를 왜 모를까? 성경 기록이 부족하다고 여긴 탓일까? 아니면 모로나이라는 천사가, 조셉 스미스에게 성경에 예수님의 말씀이 전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한 까닭일까? 아마 그들의 몰몬경의 기록대로 후자가 그 이유가 아니겠는가? |
세상에는 성경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고 자처하는 단체가 수백, 수천 개가 넘습니다. 성경 한 권만을 가지고도 충분하다면, 왜 이토록 많은 교파들과 교회들이 나뉘어 저마다 다른 복음을 가르칠 수가 있을까요? 제 3자가 보기에는 전부 자기들의 입맞에 해석하면서도 하나같이 “오직 성경”만을 외치더군요.
전 조셉 스미스가 뭐라고 하던 상관없이, 개인적인 연구와 기도를 통해서 볼 적에도 성경 66권 안에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이 담겨 있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킹제임스 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성경에 대한 변개가 일어났든지, 혹은 부주의한 필사자들에 의한 실수로 기인한 것이든 간에,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것만 따져봐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유일무일한 계시의 원천이라 정의내릴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모로나이씨! 그대들은 회복된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면서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영원한 복음에 관한 구절을 저에게 제시하였소이다. 참! 너무나도 성경에 무지한 자의 발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군요. 요한 계시록의 영원한 복음은, 지구상 미래에 발생하게 될 대환란 기간 중에, 어떤 천사에 의하여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복복음이라오. 이 영원한 복음은 사도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과는 내용이 전혀 다른 복음인데, 이 영원한 복음은, 큰 도성 바빌론의 멸망 이후의 기간에 이루어질 복음이라오. 또한 요한 계시록은 이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온 천사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천사가 다른 경고도 했음이 그 이후로 나열되어 있다오. 이 영원한 복음은 그 천사가 하나님의 인장을 맞는 이스라엘 유대인 144000명에게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온 복음이라오.. 혹시 몰몬교 신자들은 자신들이 이 144000명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오? 만일 그렇다면 당신들은 신천지 교도들과 같은 사탄의 무리인 것이오. |
요한 계시록에 대한 님의 해석을 보니 이 역시 무지한 자의 발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한 무지한 자의 발언이란 표현은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는 의미이며 계시록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시점을 전부 무시하고 하나의 해석(세대주의적 해석)으로만 일관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일단 말씀드리면 저는 미래에 발생하게 휴거라든지 그 이후의 대환란과 그 속에서 살아 남을 사람들에 대한 식의 세대주의적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토록 성경 성경하시는 분이 왜 1820년대의 영국에서 시작된 세대주의적 해석을 계시록에 대한 유일한 해석방법이라 자처하시는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뭐 이런 계시록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앞으로 진행될 지 모르는 몇몇 토론에서 진행될 것이라 보기에 여기까지만 하지요.
-->나의 경고문: 사도 바울을 비롯한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구약 성경의 파리루스의 일부만을 가지고 사용했을 것이라는 님의 추측은 성경의 내용과 아주 빗나간다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그분의 말씀을 전수 받았던 11사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받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았던 모든 말씀들을 기억하였다오. 그들은 복음을 전할 때, 물론 구약성경을 가지고 다녔지만, 그 구약성경만을 인용하였던 것은 아니라오. 그들은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깨닫게 해 주시는 거룩하신 영의 인도함으로 복음을 증거했다오. |
오해하셨군요. 제가 1세기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파피루스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고 표현한 것은 님이 하도 성경 66권만을 근거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기에 “그럼 1세기 당시 사람들은 오늘처럼 성경도 없이 어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인가?”라는 의미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구약 성경의 단편과 그들이 영의 인도를 통해 깨닫게 된 내용을 근거로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후기성도들도 그러합니다. 비록 성경과 몰몬경처럼 누구나 쉽게 읽고 찾을 수 있는 도구가 주어지긴 했으나 복음을 전하는 핵심은 바로 거룩한 영의 인도함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 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5)
아무리 우리의 말이 유려하고 성경의 여러 구절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성령의 나타나심은 갈라디아서 5장:22,23에 나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동반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성경 구절을 화려하게 인용해도 그 속에 사랑과 오래참음, 온유와 절제가 없이 비방과 감정적인 내용만이 주를 이룬다면 그 자체가 이미 복음이 아니며 인간의 말과 권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봐야 합니다.
-->나의 경고: 님은 성경 기록에 바울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음을 읽어본 적이 없나 보구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심한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도 하였다오. 왜 그랬을 까요? 바울은 그러한 고통을 잘 감당했지만, 감당하는 과정이 그 자신에게는 매우 혹독하고, 처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소. 님은 바울이 당한 그러한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소이까?, 아마 나 또한 그러한 고통이 찾아 온다면 두려움이 찾아 왔을 것이외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마음이 있었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그러한 고통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늘 함께 하셨고, 그러한 고통에서 구해 주셨다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반드시, 로마로 가게 하시는 계획을 가지셨고, 로마 황제 앞에 바울을 세우셨소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가졌던 두려운 마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 마치지 못한다면 어쩌나, 그리고 그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서면 어쩌나, 그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오. |
모순적인 발언을 하시는군요. 저는 바울이 하나님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님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했을 때, 자신의 육체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핍박를 감당했을 떄 그러한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아는가?”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런데 왜 갑자기 하나님을 두려워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님이 갑자기 말을 바꾸어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이루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서면 어쩌할까”라는 식으로 풀이를 하셨는데 그것이라면 저도 반대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님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게되는 핍박이나 고통을 두려워 했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래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 자신감이 있다는 저를 향하여 거만하다고 하셨구요. 제가 님의 글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모로나이씨! 그대는 왜 사도바울이 내적으로 두려워했었지에 대해서 이해하기나 하시오? 나는 충분히 이해하오. 지금의 나는 수많은 종교인들로부터 욕설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터라, 또한 언제든 예수회(제수이트)의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 나 역시도 나에게 맡겨진 1611년 초판 킹제임스성경 한국 말 성경본을, 다 번역하지 못하면 어떻게 주 앞에 설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사도 바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오. 모로나이씨! 그대는 1611년 킹제임스성경 이외에도 다른 번역본들조차 신뢰하지 않은 까닭에, 몰몬경을 손에 쥐고서, 그 몰몬경이 무엇이나 대단한 줄로 알고, 그 몰몬경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 몰몬경에 기록된 조셉 스미스로부터 전수된 이상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오. 교만한 조셉 스미스가 자신의 행각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대 역시 두려움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오. |
님이 욕을 먹고 있는 것은, 님이 전한다는 그 복음의 명료함 때문이 아니라 님이 복음을 전하는 그 방식의 부당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일상 생활에서는 어떻게 복음을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님의 블로그에 올려진 글만을 근거로 해서 본다 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요소가 농후합니다. 자극적인 문구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고 무턱대고 지옥을 선언하는 글에 대해 누가 마음의 문을 열까요? 설령 님이 믿고 있는 것이 참된 진리라 해도 오히려 님의 방식으로 인해 상당수 겸손하여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의 외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시는가요? 그래놓고서는 감히 바울과 님을 비교하시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저는 성경과 몰몬경에 기록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다는 말은 곧 그 복음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 때문에 자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아 회개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있을 때 그 피에 대한 보상이 나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에스겔서의 그 무서운 말씀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나의 말 한마디,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준비된 사람들에게 그릇된 영향을 주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할 수 있겠죠. 하나님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슬퍼하실까....그것이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 나의 경고: 님은. 바울이 전한 복음, 바울은 자신이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계시한 은혜의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자신일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소. 또한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말이오. 님들이 말하는 그 회복된 복음이라는 것, 성경의 영원한 복음, 그것은 바울에게 맡겨진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오. 참! 님은 몰몬이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아버지라고 하셨나? 천사들(영들)을 창조하신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몰몬이라고? 모로나이가 몰몬의 아들이라면, 그 몰몬은 사탄의 다른 이름인 것이오. 사탄은 자신의 이름을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사용하는 존재요. 조셉 스미스를 비롯된 몰몬교 내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것들이 현대 경륜의 시대를 맡도록 권세 받은 사도들이라고? 그래서 그대들의 종교 안에 12사도들을 세웠나? 저런, 바보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그대들이 그렇게 주장하니깐, 나 같은 사람들이 좋은 말 할리 없지 않은가? |
역시 님은 몰몬경을 읽어보지도 않으셨으면서 줄기차기 비판을 하고 계십니다. 모로나이는 미가엘이나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의 이름이 아니라 몰몬이라는 사람의 아들로 몰몬이 남긴 기록을 최후로 땅에 묻은 자의 이름입니다. 나중에 천사라고 호칭된 것은 무슨 날개 달리고 하늘에서 합창을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행하도록 부름받은 메신저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지요. 몰몬경 마지막에 있는 모로나이서를 제대로 읽어보시고 그런 엉뚱한 비판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나 선지자들의 부름은 1세기 당시 반짝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명확히 자리잡은 직분입니다. 에베소 4:11절부터 쭉 읽어보시면 교회 내에 존재하는 직분이 여러 개가 등장하며 그 직분의 목적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직분 중에 하나가 바로 사도와 선지자라는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많은 교회에서 목사나 교사와 같은 직분은 남아 있어도 사도와 선지자라는 직분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직분이 없으니 에베소서 4장에 나온 것처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여러 군데로 분리된 것이 아니던가요??
님이 좋은 말을 하시던, 나쁜 말을 하시던 저와 상관없고, 오직 하늘에 있는 책에 낱낱이 기록될 것이나 뭔가를 비판하실 적에는 부디 제대로 읽어 보시고 하셨으면 합니다.
참, 그리스도께서는 당연히 나뉘시는 분이 아니시오. 그러나 그대의 몰몬교의 예수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다른 예수이기에, 그 예수는 내가 믿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오. 그리스도는 나뉘시는 분은 아니지만, 여러 그리스도가 있음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오. 바울과 아폴로와 케파스와 바나바는 같은 시대에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또한 같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한 사도들이라오.그러나 조셉 스미스는 그들과 질적으로 한참 떨어진, 사탄의 사도일 뿐이오. |
제가 믿는 예수님은 님이 이해하는 예수님과 다를지는 몰라도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임에는 분명합니다. 님은 1611년판 흠정역 성경에서만 이해되고 등장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계실지 모르나 저는 그러한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될 수 없는, 부활하시고 살아 계시고, 지금도 그분의 교회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 나의 경고: 자! 후기 성도라는 영어를 제대로 표현해 주겠소. 후라는 것은 무엇 무엇의 이후라는 한글 말이오. 그러면 영어의 표현은, after-time saint, 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오. 그런데 latter 라는 말은 마지막이라는 뜻이오. 다음(daum) 사전에는 이렇게 뜻이 정의되었소이다. |
다음 사전 잘 살펴보셨죠. 한정 형용사로 “시간적으로 후반”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 “최근의”라는 뜻도 있더군요. 한정 형용사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뒤에 나오는 명사를 수식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latter는 day라는 명사를 수식합니다. 뭐 후반부에 보니 고어로 마지막이라는 뜻이 나오긴 하지만 latter day라는 말은 고대의 언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지요.
그런데 이게 뭐가 그토록 중요한가요? 교회의 핵심과 그곳에서 가르치는 복음의 원리가 중요하지 교회의 팻말이, 그것도 한국어로의 번역 문제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제 가 한가지 알려 드리겠소이다. 재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라는 곳이 있는데, 그 들 또한 자신들의 최후의 성도라고 자랑하고 있소. 아 마 그대들과 맞짱 뜨면 그 싸움이 볼만 하겠소. |
님이 알려드리지 않아도 그곳은 잘 압니다. 그리고 님이 속된 말로 표현한 “맞짱”도 떠본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왜 등장했지요?? 안식일교회도 스스로를 최후의 성도라고 했으니 후기성도라는 말이 잘못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논리는 어디서 써먹을 수 있답니까??
--> 나의 경고: 님은 그대들의 몰몬교를 종교라고 표현하였소이다. 물론 그 종교라는 표현은 조셉 스미스가 한 말이죠. 조셉 스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또다른 내용을 부속시켜서, 그것을 회복된 복음인양 떠들고 있는 것이오. 나는 님이 부속되었다고 말하는 그것 역시 저주할 뿐이오. 조셉 스미스는 몰몬경이나 신권 따위를 언급하지 않았다지만, 자신의 종교에 관한 다른 모든 것이 단지 그것에 부속되어 있을 뿐이라는 말 안에 몰몬경이나 신권 따위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겠소이까? 조셉 스미스는 스스로 신권을 받았다고 자처하였소.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 역시 그를 신권을 받은 자라고 가르치고 주장하고 다녔소이다. 조셉 스미스가 미국의 개신교단의 분열에 환멸을 느꼈었다는 것을 아시고 있소? 아마 그대들이 포교활동할 때, 그대들의 회당에서 보여 주는 조셉 스미스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그러한 내용이 포함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언제 까지 조셉 스미스라는 가짜 예언자를 두둔하고 옹호할 생각이오? 나는 그를 끝까지 저주할 것이오. |
종교라는 말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표현한 것이지 후기성도교회를 단지 인간적 조직인 종교라는 말에 국한시킨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개신교회의 분열에 대해 님은 애통해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이라 자처하는 교회가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를 비방하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님은 그에 대해 애통해 하거나 슬퍼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까?? 조셉 스미스 같은 특정 개인에 대한 저주나 일쌈지 말고, 먼저 같은 성경을 보나 자기들만이 참되다고 떠드는 현 시대에 대해 먼저 애통했으면 좋겠군요.
전 조셉 스미스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글쎄요, 부당하게 취급 당하다면야 그에 대해 바르게 설명해 줄 수는 있을테지만 그것을 굳이 거짓 선지자에 대한 옹호라고 표현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저도 조셉 스미스처럼 현대 개신교회의 분열과 다툼, 그리고 세상적인 방식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한 현실로 인해 오히려 상당수의 사람들은 예수를 오해하고, 그분을 비난합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님은 그저 비판하기에 눈이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러한 분노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는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경고: 누가 복음, 킹제임스성경은 누가에 따른 복음이라고 나와 있지요.. 성경 제목 자체에 누가를 전하는 복음이라고 되있지는 않소. 그런데 몰몬경이라는 것은 몰몬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소. 몰몬이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그런데 님은 몰몬을 사람이라고도 표현하였소. 어떻게 사람이 천사의 아버지가 될 수 있소? 몰몬교에서 그렇게 가르쳤나 보군요.. 또한 님은 몰몬경을 몰몬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전해 내려오던 기록을 모아 편집하였다고 하였소. 편집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말은 아니라오. 편집이라는 말은 저자의 생각이 많이 가미되어, 다시 기록되는 것을 말하오. 그렇다고 한다면, 편집의 과정 속에 몰몬경이 삭제, 누락, 첨가 따위가 있었다는 말이 되오. 그러니 지금의 몰몬경도 초판의 몰몬경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오. |
모로나이 천사라 하여 그의 아버지 몰몬이 어찌 천사의 아버지가 될 수 있냐는 물음에 그냥 웃고 맙니다. 앞에서 설명드렸으니 다시금 살펴보시구요...편집이란 비단 몰몬경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모르시는군요. 성경에 애초부터 66권으로 되어 있었나요? 단편적으로 존재해 오던 것들 중에, 이설적인 것은 제외하고 몇가지 만을 추슬러 후대에 정경화한 것도 편집이 아닙니까?? 필사자들이 성경 사본을 기록해오면서 자신의 생각의 일부를 표현했다는 것은 문헌 연구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성경 자체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모조리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필자가 말씀의 핵심을 자신의 표현으로 요약해 놓은 것 아니던가요? 그래서 현재에 남아 있는 사본들을 조사해 보면 그토록 많은 이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구요. 몰몬경의 초판과 현대판을 비교해서 찾을 수 있는 차이점들은 성경의 사본에서 발견되는 차이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미비합니다. 부디 그런 점들을 유념해 주시고 비판해 주시면 안될까요??
-->나의 경고: 모로나이씨, 킹제임스성경은 말씀보존학회의 전유물이 아니죠. 한국 땅에 말씀보존학회가 존재하기 전에, 킹제임스성경은 유일한 권위역본으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읽혀 졌소이다. 지금도 읽혀지고 있소이다. 나는 말씀보존학회를 통해 주어지는 킹제임스성경 관련 기사만을 본 것이 아니라오. 해외 싸이트도 검색하였으며, 본인 나름대로 샅샅히 조사하였소이다. 님은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의 글들을 통해서 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하다도 볼 절대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라고 하였소이다. 님은 그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오? 그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이 성경의 내용을 믿기나 하는지 아시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를 격하시킬 까 연구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 것이오? |
저도 나름대로 해외 사이트와 여러 학자들의 글들을 자세히 읽어 보았습니다. 뭐가 크게 착각하고 계시는데요.. 킹제임스 성경을 비판하는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이 모두 예수의 신성을 격하시킬까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님이 원하는 자료만을 찾지 마시고요 공정한 의미에서 다른 학자들(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학자들을 의미합니다.)이 흠정역 성경에서 어떤 문제점을 찾았는지 공정하게 살펴보고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경고: 요한 일서 5장 7절, 님은 이 구절이 원본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런데 아래의 글을 보면, 님은 또다시 성경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이다. 님 역시 그 원본을 본 적이 없거늘, 어떻게 요한 일서 5장 7절의 말씀이 원본에는 전혀 없은 내용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오? 이 말에 님은 학을 띠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오. 언제 내가 그렇게 주장한다고 했나요? 학자들이 인정한 부분이라고 했지.. |
제가 사용한 원본이라는 단어는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성서 필자들이 기록한 실제 그 문서를 의미하는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문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전부 필사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을 원본과 가장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을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정확한 형태의 원본 모습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요한일서 5장 7절의 내용이 원본에 없다고 말한 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 중에서 찾아볼 수가 없으며 성경이 기록된 후 천년이 훨씬 지난 사본에서나마 단편적으로 발견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학자들은 요한일서 5장의 그 부분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이 존재하는 사본이 총 네개만 있다? 또한 그것이 모두 16세기 17세기의 것이라? 하하.. 참으로 무식하고 무지하군.. 1Jo 5:7 For thre ben, that yyuen witnessing in heuene, the Fadir, the Sone, and the Hooli Goost; and these thre ben oon. 1Jo 5:8 `And thre ben, that yyuen witnessing in erthe, the spirit, water, and blood; and these thre ben oon. 위의 영어 성경은 14세기 말 1395년도 존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 성경이라오. 님은 요한 일서 5장 7절의 말씀이 16세기나 17세시의 것 뿐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리고 그 이전의 사본들에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면 위클리프는 도대체 어떤 사본을 가지고 요한 일서 5장 7절을 번역하였을 까요? 그는 훨씬 이전의 사본들을 가지고 번역하였소이다. 위클리프는 14세기에 살았던 사람인데, 그가 16세기나 17세기에 발견된 사본을 볼 수 있었을 까요? 미래로 가서 그 사본들을 보고와, 성경을 번역했나요? 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나? |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제 상식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두란노에서 편찬한 “리 스트로벨의 예수 그리스도”에서 델러스 신학교 교수인 대니얼 B 월리스의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글을 보면 삼위일체를 지지한다는 사본이 16세,17세기의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금 반복되어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를 겨냥한 비평 가운데 가장 심한 것 중 하나는 그의 본문이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이 셋은 하나라, 또 땅에서 증거하는 셋이 있다”(요일5:7-8)에 관한 삼위일체적인 서술인 요한일서 마지막 장의 부분이 없다는 크시메네스의 컴플루텐시아 다국어 대조서의 편집자들 가운데 한사람인 스투니카의 도전같아 보인다. 에라스무스는 대답하기를 그럭 저럭 하는 동안에 처음 그의 본문을 준비할 때 그가 의존한 것들 외에 몇몇 다른 것들을 조사했지만, 이러한 말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헬라어 사본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에라스무스는 약속하기를 만일 단 하나의 헬라어 사본이라도 이 구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장차 나올 판에 요한의 콤마를 삽입할 것이라고 했다. 드디어 그러한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그것이 지금 보여주는대로 그 헬라어 사본은 아마도 1520년에 프로이(Froy 혹은 Roy)라고 하는 프란시스코 수도사에 의해 옥스퍼드에서 쓰여졌고, 그는 문제가 된 이 말을 라틴역에서 가져왔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약속을 지키어 이 구절을 제3판(1522년)에 삽입했으나, 그는 이 사본이 그를 논박하기 위하여 급히 준비되었다고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긴 설명을 달았다(주해설-지금 Trinity 대학도서관에 있는 사본, Greg 61은 요한일서 5장은 거의 일치한다) 에라스무스의 시대에 이래 시도된 수천개의 신약의 헬라어 사본 가운데 단 3개의 다른 것들이 이 가짜 구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것들은 (1) Greg 88, 17세기 글씨로 가장자리에 코머가 쓰여져있는 12세기 사본이며, (2) Tisch 110, 컴플텐시안 다국어 대역 헬라어 본문의 16세기 사본필사본이며, (3) Greg 629, 14세기 혹은 리겐바흐가 주장한대로 16세기 후반의 것등이다.”(사본학 126페이지, 브루스 M. 메쯔거 저, 기독교문서 선교회-네이버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카페에서 인용)
그리고 위클리프의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시는데 사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성경은 약 170개의 사본이 존재하는데 당시에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에 모두 필사본 형태로 존재합니다. 게다가 현존하는 그의 사본들은 퍼베이 개정판으로 위클리프가 사망한지 20여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그의 성경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라틴 벌게이트를 그냥 영어로 번역한 것이라 많은 비판을 받아 왔지요? 그런데 어찌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하는 가톨릭이 요한 1서 5장의 내용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모든 정황들을 살펴보면 현재 남아 있는 위클리프의 성경에서 발견되는 몇몇 부분은 후대에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나의 경고: 위 구 구절을 가지고, 그대들이 전한다고 하는 회복된 복음이라고 여긴다면, 대단한 착각의 늪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말하겠소이다. 사도행전 3:21절,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지금 만물이 회복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벽하게 회복하신 다음에,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과는 시대의 경륜이 다른 것이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4장 18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이 구절을 이용해서, 몰몬교 추종자들은 모로나이 상이 자신들의 회당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이유로 주장한다는 것이오. 성경이 모로나이 상에 대해여 말하는 것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소.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하시지도 않았는데, 회복된 복음이니 운운한다면,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추태이며 망상에 불과하오. |
제가 복음의 회복과 관련하여 두 구절을 인용한 것은 그 구절 자체가 복음의 회복을 의미하는 절대적인 내용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단 회복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배도’가 무엇인지부터 이해를 해야만 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3을 보면 예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배교하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배교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포되었던 초기 복음이 세상의 철학과 타락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 이러한 예언의 결과로 초기 사도들이 죽은 뒤에 급속도록 배교가 일어났음은 조금만 중세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교로 인해 변질되었던 복음이 온전한 형태로 회복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전 단계로 필수적일 수밖에 없겠죠.
이러한 이해가 뒷받침되었을 경우 예수께서 다시금 오시기 전에 만물을 회복하는 과정 중에 복음의 회복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며, 마지막 날 천사가 전하게 되는 복음이 바로 이 회복된 복음이라는 것이 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 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그때가 되어서야 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납니다. 이 복음이 예수 재림 이전에 전세계적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이전에 완전한 형태로 회복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복음의 회복이란 단어가 성경에 그대로 등장하진 않지만, 복음의 배교와 그에 따르는 회복의 과정, 그리고 그것은 예수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연적인 결과가 성경에 명확히 등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저 몇 몇 구절만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나의 경고: 조셉 스미스가 지옥불에 있던 천국에 있던 그것은 나의 관할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알 수 있는 성절의 것도 아니라고? 천만에 성경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소. 조셉 스미스가 지옥불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증거는, 그가 다른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오. 그는 이미 사도 바울에 의하여 저주를 받게 될 사람들에 포함되었는데, 사도 바울이 죽은 후, 미래에 태어났을 뿐이오. |
지금까지 님은 다른 복음 다른 복음 하시지만, 정작 무엇이 성경에서 금하는 다른 복음인지는 계속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성경 외에 다른 책인 몰몬경이 있으니 다른 복음이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몰몬경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이 책 어디에 다른 복음이 나와 있는지 살펴보라고 말입니다. 님은 지금껏 “복음=성경”이라는 도식을 절대시하는 바람에 “성경의 변개는 복음의 변질”이란 미명하에 흠정역 성경 외에는 전부 잘못된 것이라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성경 외에 다른 영감받은 기록에 대해서는 무조건 “다른 복음”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성경이 복음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담은 도구입니까? 님의 주장처럼 ‘성경=복음’이 정당화된다면 우리와 같은 성경을 가지지 못한 1세기 이전의 모든 선진들은 전부 복음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됩니다. 님의 극단적 주장을 옹호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복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다른 복음이라 하면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외에 다른 구원자가 등장할 때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며, 예수의 속죄보다 그것을 기록한 특정 성경만을 강조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복음이라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의미라면 말로는 복음복음 하지만 특정 성경만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강조하는 극단적 흠정역 주의 역시 다른 복음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훼손되지 않았다오. 그가 전한 복음은 지금도 완전하게 전수되고 있소이다. 전혀 회복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훼손시킨 자들은, 이미 지옥에 갔으며, 그러한 자들의 후손들이, 오늘 날에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러한 자들 역시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오. |
그렇죠.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자체는 훼손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이후 교회에서 가르치는 복음이 훼손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중세 역사를 조그만 보시라는 겁니다.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골로새 2:8)으로 돌아가 얼마나 많은 부분이 변질되었습니까? 님도 인정하고 있지 않나요?? 사람들이 성경을 변개 시키는 바람에 복음이 많이 왜곡되었다고 하지 않던가요?? 후기성도는 그렇게 훼손된 복음이 다시금 온전한 형태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며, 님은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것 아닙니까? 후기성도는 그러한 회복이 천사, 즉 하늘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며, 님은 그저 인간의 노력으로 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럼 님은 흠정역 성경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을 갖는 모든 분들 역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까? 정말 끔찍한 교리로군요...
나는 님을 설득하고자 지금 무수히 애를 쓰고 있소. 님이 계속해서 허구의 몰몬교를 계속고집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 허구의 몰몬교를 비판하고 무시할 것이오. 대신 님이라는 죄인 한 사람 자체는 불쌍히 여기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경고할 것이오. 님이 만일 몰몬교에 입교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할 것이오. |
저를 정말 설득시키고 싶으시다면 먼저 고린도 전서 2장을 꼼꼼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먼저 기억하고, 그 능력을 힘입고자 열심히 기도하며 영의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그저 툭하면 지옥 지옥 협박하지 말고, 끔찍한 선동적 어구를 사용하지 말고 그 속에 사랑을 담아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먼저 비판하고자 하실 적에는 먼저 몰몬경부터 제대로 읽어 보시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단 책이라 읽을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기에 앞서서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있으며, 후기성도가 무엇을 복음이라 믿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고 비판을 하시라는 거지요.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슨 비판을 하겠다는 것인지요...
-->나의 경고: 님은 저를 우상숭배자라고 비판하시는 군요..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비판하는 자료들은 제가 무수히 본 적이 있던 터라, 그것이 저의 믿음을 상쇄하거나 파괴할 자료들은 못된 다는 것을 미리 밝히고자 하오. 상당수의 학자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절대시 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들의 말이, 저의 믿음은 아니라오. 나는 학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오. 그 이유는 그들은 계속해서 킹제임스성경의 유일함을 비판하고 정죄할 것이기 때문이오. 님은 몰몬경에 대하여 숭배하고 있다오. 몰몬경이 성경이 부족한 면을 채워준다고 굳게 믿는 그 믿음 또한 몰몬경에 대한 우상숭배라오.또한 몰몬경을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 몰몬이 편집한 기록에 불과하오.(님의 말에 의하면 말입니다) |
님은 킹제임스 성경을 숭배하는지 모르나 저는 몰몬경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몰몬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있다고 봐야지요. 기존 성경은 부족하고 빠진 부분이 많으니 흠정역 성경만을 봐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그러면서 몰몬경 운운하시다니 기가 막힐 뿐이지요. 그리고 몰몬경이 몰몬이 편집한 기록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성경 66권도 후대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고대 문서의 편집본이라고 봐야 하겠습니까?
저는 몰몬경을 읽고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님은 흠정역 성경, 그것도 1611년판만을 봐야 구원을 얻는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대상을 정하는 것이야 말로 다른 복음,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 나의 경고: 그대는 성경을 펴 놓고 저와 대화를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오? 그대는 성경을 그대들 종교에 따라 해석을 하기 때문이오. 온라인 상에서나 나와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십시다.일단은 그것이 좋을 듯 하오.아마 만나게 되면, 서로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오. 님도 그렇고, 나 역시도 그렇고 말이오. 그대가 나의 블로그에 보인 그대의 분노함, 몰몬교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박에 관한 글에 대한 그대의 분노를 저는 그대의 글을 통하여 확인하였소이다 |
아니요. 성경을 펴 놓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뭐 제가 제 종교에 따라 해석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님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대표적으로 계시록의 세대주의적 해석이나, 삼위일체, 특정 성경에 대한 강조 등...) 본인 역시 특정 교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그 외에 것들은 전부 잘못된 해석이라 하실 것이 뻔한데 굳이 저에게만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정 교파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은 먼저 님이 보이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하네요. 제가 비판하는 대상은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대로 한다지만 그대로 행하지 않는 위선이나,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의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그 편견에 대한 것일 뿐이며, 특정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셉의 막대기니 지파니 운운하는 것들은 해석의 차이일 뿐이며, 그것은 복음의 핵심도 아닐뿐더러 별로 논의할 만한 내용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님은 거의 모든 글에서 항상 그 부분을 마치 큰 오류라도 되는양 반복해서 인용하시더군요. 그 부분에 대하여 따로 논의를 해도 되지만 다른 중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 이후에 진행되도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부한 내용의 장문보다는 특정 주제를 기본으로 한 토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휴가 기간이라 시간이 많아 이런 글을 쓴다지만 그 이후에는 이런 글에 시간을 낼만큼의 여유는 없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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