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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선지자는 무능한 사람들??

모로나이 2011. 1. 20. 02:11

최근에 어떤 블로그에서 후기성도의 선지자와 관련하여, 현대의 선지자라 자처하는 이들은 조셉 스미스처럼 계시도 받지 못하고, 고대 문서를 번역도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고 하는 자들이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계시하나 받지 못하고 그냥 일반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들만 하는지이해할 수가 없으며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라는 평가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 즉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계시는 이미 조셉 스미스가 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그 계시를 올바르게 적용하고 해석해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현대 선지자들의 사명이라는 글에 대해 그것은 가톨릭의 주장과도 유사한 것이며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답변을 달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사실 개인적으로 그러한 비판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선지자라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매일 하나님에게서 계시를 받고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연차대회나 한국을 방문해서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실망을 이만저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니 더욱 솔직히 말하면 사도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말씀을 한다고 했을 때는 또 뻔한 이야기나 하겠지..”“저런 말씀하려고 비싼 돈, 바쁜 시간 들여서 한국까지 왔던가? 그리고 저런 말씀 들으려고 성도들이 이렇게 시간 내서 집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일반 성찬식 때 주연사에게 듣는 말씀과 무슨 차이가 있던가?” 등등 비교적 비관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았고 실제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어느 사도가 와서 노변의 밤을 한다고 하면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괜히 시간 내서 가봤자 사람들은 많이 있고 말씀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데...그리고 뭐 말씀의 내용도 그동안 들었던 것과 비교해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뭐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나 나름대로의 정의가 하나님의 뜻을 규정짓거나 교회가 거짓되다는 증거로서 작용하지 못합니다. ‘선지자라면 이러이러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나름대로의 정의는 그냥 개인의 정의이며 지나친 기대이지, 그들의 주된 사명의 핵심을 흐리거나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을 예언하거나 고대 문헌을 번역하는 일을 선지자들의 여러 사명 중에 일부이며, 그것도 특수한 상황과 주님의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선지자의 유일한 특성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후기성도 성경 사전에 의하면 선지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선지자들의 역할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분의 뜻을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주님의 이러한 메시지는 대게가 "여호와가 말하노라!"를 시작으로 전달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가르치며 과거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그분의 사역의 본질적 의미를 보여준다....선지자의 역할 중 또다른 하나는 죄에 대해 경고하며 공적인, 사적인 잘못을 질책함으로서 죄의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선지자는 또한 의의 선포자로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대한 참된 신앙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으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만 했다. 특정한 시기에 선지자들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였으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예언은 바로 메시야의 왕국이 도래하였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선지자," 성경 사전 754페이지)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한데 죄에 대하여 백성들을 경고하고 의의 선포자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널리 전해야 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리아호나를 보거나 연차대회를 보면, 우리가 기대하듯 놀랍거나 신비한 경험들을 전하진 않아도 현 성도들이 회개해야 할 일들에 대한 경고나 이미 밝혀진 진리에 대한 해석 등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 4:11-14)

 

 

이 구절을 보시면 교회 내에 선지자와 사도가 필요한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눈씻고 찾아보십시오. 선지자들의 주된 사명이 기적을 행하고 예언을 하며 병자를 고치는 것이라 했던가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일” “예수님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는 일”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하지 않게 하는 일이 그러한 직분의 주된 사명이며, 그러한 직분이 존재하는 이유라 하지 않던가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 28-31)

 

 

 

이 구절에서도 주님께서는 사도나 선지자를 비롯한 여러 직분 및 은사들을 주시는데 그 모든 은사들을 한 사람이 전부 가질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은사라고 하는 것은 각 개인마다 달리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게 만듭니다. 조셉 스미스에게 고대 문헌을 번역하는 은사가 주어졌다 하여 그 이후 모든 선지자들에게 그러한 은사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입니다.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진 임무의 각 특성들을 전부 그 이후 현대 선지자들에게 적용하여 비판하는 것은 침례 요한에게 모세는 홍수를 갈랐으니 당신은 침례를 주지 말고 이 요단강이나 갈라 보라.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회개할 것이 아닌가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으며, 많은 사람들과 복음을 변론했던 사도 바울에게 그런 식으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엘리야처럼 제물을 놓고 기도한 다음 이 제물이 불로 살라지게 해보라. 그러면 여기있는 사람들이 다 믿을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 선지자들에게는 시대에 따른 사명이 있으며, 설령 기적이나 시현이라 한들, 선지자들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때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선지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진 이들은 계속해서 선지자는 이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것을 못하는가? 바보 아닌가?” 라고 쉽사리 단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를 통해 주님께서는 모세 율법이라는 엄청난 양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성막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서 그리고 음식이나 복장을 비롯한 세세한 규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양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자로서 여호수아가 성임 받았는데 그는 더 이상 모세 율법에 해당하는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사명은 그 율법을 해석하고 모세가 실패한 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셉 스미스가 받은 수많은 계시들을 그 후대인 브리검 영이 동일하게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명은 성도들에게 계시를 풀이하고 성도들을 유타주로 이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들의 사명은 처한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사회자에게서 선지자로서 계시를 받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어진 광대한 계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받은 계시에 더 많이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The San Francisco ChronicleDon Lattin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계시보다는 현재 주어진 계시에 대해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주어진 것들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더 많은 계시가 주어진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이를 핑계라 했던가요? 선지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끝까지 고집하고 싶고, 예언이나 시현처럼 기적적인 현상을 선지자들의 유일한 특성이라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선지자에 다른 역할들에 대해 용납하기가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선지자들의 사명은 다양합니다. 조셉의 경우를 모든 선지자들에게 적용해서 비판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님께서는 교회의 지도자들(특히 탈매지 박사)이 가톨릭에 계시가 끊어졌다고 비판을 했다고 하시는데...어느 문헌에서 그런 문구를 발견하셨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기이한 업적 3,4쪽을 보면 탈매지 박사가 종교 철학 회의를 방문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계시와 관련하여 가톨릭을 비판하나 구절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탈매지 박사가 쓴 신앙개조184,185쪽에서 가톨릭을 비판한 내용은 나오지만 이는 계시가 끊겼다는 문제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명에와 부를 따르는 교회 직분” “교회 의식의 변경” “순교자가 숭배의 대상이 됨으로 발생되는 신성 모독에 대해서만 다룰 뿐입니다. 제가 잘 못 찾아서 그런 것일 수 있으니 정확한 출처를 알려주신다면 참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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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선지자에 대한 비판한 블로그의 내용을 캡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