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과학과 신앙

복음을 변호하는 이들..

모로나이 2012. 1. 21. 00:25

 

 

 

이 경륜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댄 존스가 웨일즈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후기성도들에 있어 변증론 혹은 호교론(apologetic)이란 단어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고 실제 거의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는 변명하거나 사과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신학적인 의미에서는 그 개념들과 달리 적극적 의미에서 신앙의 옹호를 의미합니다.

 

(경전에서는 이 단어가 명확한 개념으로 등장하지는 않은 것 같으나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이교도들의 공격이나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단설로부터 교회를 옹호하고 교리를 다듬는데 노력한 이들을 호교론자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용어의 정의와는 별도로 여러 가지 이설과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옹호하고 복음을 수호한 사례들은 경전에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의 반대에 대해 지혜롭고도 명확하게 변증하셨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며 다음과 같은 약속도 포함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누가 21: 15)

 

실제로 이러한 약속으로 인해 예수의 복음을 널리 전파했던 이들은 적대자들의 거짓된 모함이나 주장에 대해 단순한 회피나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베드로전서 3:15)라는 권고의 말씀과 더불어 주님께서 주신 약속에(마가 13:11) 따라 담대하게 변증하고 복음을 수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데반의 경우는 그의 지혜와 성령으로 복음을 수호할 때 저희(유대인들)가 능히 당치 못하”(사도 6:10)였다고 알려줍니다. 그 외에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해 제자들을 죽이려고 힘썼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9:29)

 

몰몬경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이 발견됩니다. 유식하여 백성들의 언어를 완전히 알아 그 언변의 능력으로 많은 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시렘에 대하여 선지자 야곱이 복음을 옹호한 일이나 (야곱서 7장 참조) 거짓된 교리를 전한 니허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했던 기드온 (앨마서 1:7) 세상적인 철학과 논리로 많은 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코리호어에 대하여 논증과 경전을 통해 옹호했던 앨마의 이야기(앨마서 30)는 복음을 수호한 이들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도 세상의 철학과 논증, 그리고 거짓된 추론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복음의 원리를 수호하고 올바른 원리를 펼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일회장단을 비롯한 12사도 정원회 회원들은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선포하고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순수한 형태로 옹호하는 권능과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권세는 없으나 개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복음을 연구하는 가운데 복음을 수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교회의 회원들은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긴 합니다.

 

흔히 변증론자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들 자발적, 개별적 복음 옹호자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계기와 의도, 목적이 있습니다.

 

1. 교회의 역사와 교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

2. 회복된 복음에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 주는 고대 언어나 기타 다른 종교 연구에 관심을 가진 자들

3. 후기성도의 교리와 가르침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찬 이들이 지어내는 반몰몬 서적들에 좌절을 경험한 이들 혹은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가진 이들.

4. 교회의 교리나 역사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명확하게 하고 싶어 하는 이들

5. 진지한 관심이나 질문, 혹은 오해를 하는 이들과 복음을 나누기 위하여 요구되는 지식이나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

6. 복음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대답할 위치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

 

이 외에도 각기 다른 의도와 목적, 계기가 있긴 하겠지만 공통적으로 절감하는 것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진리라 확신하는 회복된 복음이 세상의 여러 철학과 사상에 의해 공격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어떤 분께서 댓글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신앙을 키워 주거나 비회원들에게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교회의 정규적인 모임과 회원들의 적극적 참여, 선교사들의 열정적인 노력에 대하여 하늘에서 주어지는 성신의 인도가 있어야 하겠지요.

 

다만 이러한 일들은 의심과 불신을 심어 주기 위해 의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음을 밝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만이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구원시키는 능력이 있음(고전 1:18)을 선언할 뿐입니다.

 

또한 변증론자들은 단순한 신앙으로만 똘똘 뭉친 이들이 아니라 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혹은 역사적 사실)과 신앙이란 상호 보완적임을 알게 된 자들입니다. 물론 과학(혹은 역사에 대한 해석과 이해)이란 끝임 없이 발전하고 변해 오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지식에 감사하고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졌을 때 변증론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정보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뒷받침해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필요할 경우 자신의 생각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학의 발전이나 지식의 증가는 하나님께서 후기에 그분의 일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9.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계시하신 모든 것과, 현재 계시하시는 모든 것을 믿으며, 앞으로도 그분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많은 위대하고도 중대한 것들을 계시하실 것을 믿는다 (신앙개조)

 

우리는 이(발명품-과학의 발전이나 지식의 증가)를 주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을 확대시킵니다. 이 발명품을 의로움 가운데 진리를 전파하고 사람들 사이에 주님 사업을 진척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참으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많은 발명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듯이, 우리는 이를 파괴하는데 사용할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처럼 인류를 밝히고 축복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 회장의 가르침, 조지 앨버트 스미스, 159 페이지)

 

몇몇 이들이 인터넷을 비롯한 과학의 발달로 인해 교회의 정체(?)가 폭로되어 많은 이들이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난다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은 오히려 그러한 기술의 혜택으로 더 많은 정보와 통찰력, 그리고 복음의 핵심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의 지식과 이해의 한계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음을 이해합니다. 복음이 주는 가르침 중에 하나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지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현재는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나 앞으로 그 모든 비밀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복음을 옹호하는 이들의 지식에 한계가 있고, 때로는 알지 못함을 인정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모든 의문에 대하여 완벽하게 풀어주지 못할 수도 있으나 앞으로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내가 완전히 알게 될 날을 올 것임을 신앙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복음의 전체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몇가지 가르침들을 세상의 잣대를 근거로 분석, 판단하여, “이것은 분명히 거짓과 기만이다!”라고 쉽사리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 허락된 지식에 기뻐하며 앞으로 주어질 지식과 그 축복을 가슴 설레하며 기대하는 이들은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진리들에 대하여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복음을 수호하는 자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소위 증거라고 부르는 것들로 교회와 그 교리를 공격했을 때 충성스러운 수호자들은 효과적인 도구로 그것을 막아낼 것입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주님의 방법', (Salt Lake City: Deseret Book, 1991), 92)

 

 

논쟁은 확신을 심어주진 못하지만 확신의 부족은 믿음을 파괴한다…..이성적인 논쟁은 믿음을 세우진 않지만 그것은 믿음이 자라날 풍토를 제공해 준다. “ (닐 에이 맥스웰 장로 인용, "Discipleship and Scholarship," Brigham Young University Studies 32:3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