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스미스와 에머 스미스
조셉 스미스의 일부다처와 관련해서 자꾸만 제기되는 오해 중에 하나는 마치 그가 이미 결혼한 여인을 아내로 취해서 남편 몰래 성적 관계를 맺는 가정 파괴범이라는 의식입니다. 만에 하나, 사실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일 것입니다. 다윗을 일러 용서받지 못할 자로 단정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일이었음을 잘 알려진 일 아닙니까? 하나님의 선택받은 왕으로서 다윗은 많은 계시를 받아 우리에게 시편이라는 영감어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불순종에 대해 무거운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윗(의 죄는)...다만 우리아와 그의 아내의 경우뿐이니, 그러므로 그는 자기 승영에서 떨어져 자기 몫을 받았고 이 세상 밖에서는 그들을 상속 받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다른 자에게 주었음이니라. 주가 이르노라.”(교성 132:39).
이와 동일한 논리로, 정말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명하신 것과는 반하는, 이미 가정을 이루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곳에 들어와 아내를 성적으로 범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 그는 정녕 승영에 이르지 못하여 영생의 축복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가 받았던 수많은 계시들과 경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변함이 없을 것이구요. 다윗이나 솔로몬의 범법을 이유로 그들이 계시로 받았던 수많은 진리들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폄하되지 않은 것처럼 조셉이 타락한 선지자라 한들, 그가 받았던 계시들과 몰몬경을 비롯한 경전들은 그 가치가 폄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하지만..정말 조셉이 유부녀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었을까요? 그저 족보상에 존재한다고 하여 조셉과 그의 다른 처들이 은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봐야할까요? 제발...Family Search에 나와 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확대 해석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조셉 스미스를 희대의 사기꾼이자 호색한의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조셉의 다처로 알려진 이들의 남편들은, 그들이 회원이건 비회원이건 막론하고 조셉의 가까운 친구였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우정을 유지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셉의 다처로 알려진 지나 헌팅턴의 경우 조셉과 인봉 의식을 할 때 그녀의 남편이었던 헨리 제이콥은 그 자리에 증인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물론 조셉의 다처로 알려진 아내들은 조셉과 한 집에서 살지 않으며 원래 남편과 함께 결혼생활을 유지했습니다. 게다가 어떤 아내들도 눈물로 한탄하면서 그녀의 “기대하지 않은” 남편이나 나부 사회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정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조셉이 이미 가정을 지닌 아내들에게 몰래 접근하여 성적인 결합을 목적으로 결혼을 요구했다면 이러한 일들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이런 조셉의 일부다처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그것이 실제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적인 일이라 주변의 반응도 뜨거울테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조셉의 다처결혼이란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그러한 실제 결혼 상태는 아니였다는 점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조셉의 다처로 알려진 부인들의 남편이 충실한 교회 회원이라면 그런 인봉의식을 그들의 가족이 조셉의 가족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비회원 남편이라면 그저 그들의 존경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수한 의미의 종교적 의식으로 봤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조셉과의 다처 결혼을 승낙한 아내들, 특히 비회원을 남편으로 둔 여인들은 조셉과의 인봉을 통해서 남편을 구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조셉을 남편을 대신하여 진행한 일종의 “대리의식”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일례로 21살 먹은 이사야 모세스 쿰스는 1855년 유타로 이주했는데 슬프게도 그의 아내가 그와 동행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비회원 아내를 두고 서부로 이주해야했던 그 슬픈 결정을 회고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나의 영광과 승영을 보장해줄 단계들을 따르면서 점차적으로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 나의 아내를 나와 깨지지 않은 상태로 인봉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내가 눈이 멀었지만 그 날이 오면 그녀는 보게 될 것입니다.” (Kate B. Carter, ed., Isaiah M[oses] Coombs from His Diary and Journal)
그의 아내는 결국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와 함께 유타로 가기를 거부했지만 그의 충실함이 결국 그의 믿지 않은 아내를 승영 시킬만큼 인봉의 권세가 클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물론 쿰스의 이런 믿음은 가난과 지역적인 차이로 교회의 핵심부와 비교적 떨어진 상태에서 살아야 했던 성도들이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는 엿볼 수 있게 해주는데 이처럼 초기 다른 회원들 역시 자신들이 인봉의식을 맺고 그에 충실하면 다른 충실하지 못한 회원이나 비회원 배우자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 인봉이나 대리 의식의 원리가 계시로 주어지긴 했으나 그 온전한 의미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며 살았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가 충실하지 않기에 조셉 스미스와 대리로 인봉을 하면 결국 그 믿지 않은 배우자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많은 이들이 조셉과의 인봉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점이 단순한 성적인 의미에서의 다처결혼보다는 더욱 설득력 있고, 주변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더욱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역시 단편적인 자료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셉의 다처 결혼이 정말 다른 아내와의 밀회였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공의로운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남긴 계시와 경전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보지 않음은 이미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 특히 가장 민감할 남편들이 조셉의 가까운 친구였고, 실제 어떤 남편은 조셉과 아내의 인봉을 참관한 사람이었고, 조셉과 다처 결혼 이후에도 그들은 남편과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며 한 집에 살았다는 점....이 모든 정황을 살펴보면, 조셉의 다처는 “가족 관계의 확장”이나 “믿지 않은 배우자를 위한 대리 의식”의 한 부분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물론 현재는 이러한 의식이 없고 그저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의식만이 진행될 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부부가 인봉되면 영원할 수 있다는 원리, 그리고 누군가 다른 이들을 위해 대신 의식을 받아줄 수 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명확하게 밝혀졌지만 초반부에는 구체적인 시행 부분에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죠.
'교회의 역사와 교리 > 일부다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셉 스미스의 아이들(?) (0) | 2012.10.03 |
---|---|
조셉의 일부다처에 대한 또다른 시각(2) (0) | 2012.09.28 |
일부다처에 대한 초기 지도자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0) | 2011.06.18 |
교성 132편은 일부다처 교리가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증거인가? (0) | 2009.10.28 |
조셉스미스의 다처결혼.. (0) | 2009.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