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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죄사함을 위한 침례를 성령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주장한 것은 제 말이 아니라 사도 2:38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해 반증을 하기 전에 사도행전에 나온 구절을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일치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이 침례 받기 전에 성령 받은 사람들로 풀이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1장 4,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즉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의 침례를 받은 자들은 이미 이전에 물로 침례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와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는 구절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주장하여 오순절에 모인 이들이 물의 침례와 무관한 것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이미 침례 요한이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마 3:11;막 1:8;눅 3:16)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태 3:11)
잘 보시면 물의 침례를 받은 자들과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을 자들이 “너희”로 지칭되었습니다. 즉 물의 침례를 받을 자와 성령의 침례를 받을 자들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침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물의 침례를 주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에 모여 성령의 침례를 받은 이들은 이미 물의 침례를 받은 상태였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야 약속된 성령의 침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이야기는 이미 토론 중에 언급하였습니다. 즉 침례도 받지 않은 고넬료에게 성령이 내린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증언한 경우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 10:45을 보면 “성령의 선물이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 약속의 성령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알리기 위해 성령을 내리신 특별한 경우를 보고 침례를 무가치한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사도 10:47,48을 보면 고넬료에게 성령이 내린 것을 보자마자 “누가 침례 받는 것을 금하겠느냐?”며 바로 침례를 주었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이런 기록에 대해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침례를 받은 기록이 사도 8:27에 나와 있는데 어찌 고넬료를 복음을 들은 첫 번째 이방인이라 하느냐?”면서 딴지를 거시는 분이 있었습니다만...27절에 보면 그 내시가 ‘예루살렘에 경배 드리러 왔다’는 표현을 보면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그는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기간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유대인이나 혹은 유대교 개종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님께서는 침례야 욕조만 있으면 1분 안에 할 수 있는데 성령은 사람끼리 해재끼는 의식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자칫 성경에서 그토록 죄사함과 관련하여 진행된 침례라는 중요한 의식을 단지 “사람끼리 해재끼는” 단순히 의미 없는 것으로 폄하하시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지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 8:14-17)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았지만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적이 없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령이 내리기를 기도했다는 장면도 나옵니다. 하지만 기도했다고 바로 성령이 임했습니까? 아닙니다.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를 했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님의 논리대로 한다면 안수라는 행위도 한 두 사람이 그냥 사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람끼리 해재끼는” 행위라 차원이 저급하다는 말로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또 다음 구절도 볼까요?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사도 19:5,6)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를 했을 때 성령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안수라는 행위가 정말 맘만 먹으면 1분 안에 해치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침례 받은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또 알 수 있습니다.
침례나 성령을 받기 위한 안수가 육신의 눈으로 보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의식을 베풀 적에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겠습니까? (고전 1:21)
님이 침례의식 없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시는데....그리고 그 이후 침례도 안받고 그 필요성도 모르시겠다고 하시는데..글쎄 그건 님의 믿음이니 제가 뭐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어본 성경에 의하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저는 침례를 받고 안수로서 성령을 받은 경우라...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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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어 글을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 보겠습니다.
"요한은 물로 베풀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받으리라." 이 말씀만 가지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요한의 물세례를 전부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인용된 말씀의 문장 구조는 "요한은 ~, 나는" 의 비교 구문이지 조건이나 전제 구분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단순한 비교구문일 뿐 조건, 전제 구분이 아니라는 님의 지적에 대해서, 문장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설령 비교구문이라고 한들, 당시 성령 침례를 받은 자들이 물의 침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일부는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는 식으로 풀이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성령의 침례는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줄 압니다. 그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이들이 과연 물의 침례를 받지 않았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침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인데(사도 5:32), 모든 자들을 제자 삼아 침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마태 28:19)을 받아 나간 이들이 정작 본인이 침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제자로 삼아 주님의 말씀을 가르친 이들에게 침례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따라서 저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의 침례를 받고자 기다리고 있었던 제자들은 전부 물의 침례를 받은 자라는 것이 더 설득력 있고 성경 전체의 흐름과도 일치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태3:11만 보고
"요한이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라"는 것도 억측입니다.
이 구절도 비교구문이지 조건,전제 구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 3:11절의 "너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려면 앞의 구절을 봐야지요.
3장 7절의 "요한이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에서 너희가 가르키는 2인칭 복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
저는 님이 성경을 읽어보고 알게되신건지 아니면 어디서 배운대로 말씀하신 건지 의문을 품습니다.
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 문단과 문맥을 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디오피아 이야기는 제가 물어본 것과는 상관없는 대답입니다.
님께서는 마태 3장에 나온 “너희”가 바리새인들이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님의 지적대로 “너희”가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왜 3장 11절에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고 예수께서 성령으로 너희에게 침례를 줄 것이라고 약속을 했단 말입니까? 제가 전후 문맥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닙니다. 침례를 받으려고 다가온 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의 합당함 열매를 맺어라”(3:8)고 외치면서 침례를 받기 전 그들이 행해야 할 것들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침례 요한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은 그들에게 침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1절에 갑자기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라고 말합니다. 그럼 요한은 바리새인들에게 침례를 준 겁니까? 아니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침례를 미룬 겁니까?
저는 11절에 나온 “너희”라는 사람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6절에 나온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은 자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11절에 나오는 구절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 집니다. 침례 요한은 침례를 받으려고 나왔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맺를 맺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면서도 한편으로 이미 물의 침례를 받은 자들에게 성령의 침례를 약속한 것입니다. 물의 침례를 받은 자들에게는 성령의 약속을, 침례를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물과 성령의 침례를 받으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물의 침례를 받지 않고도 영을 받은 이들의 경우나 십자가의 강도의 경우는 이미 전에 토론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례, 예를 들면 혈루증 걸린 여인의 구원이나 (마태 9:22)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구원”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구출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죄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침례라는 의식을 무의미하게 하거나 그 이후 주의 길을 따르지 않아도 구원의 보장되는 그러한 류의 구원이 아니라고 봅니다. 구원이란 당시에 일시적으로 믿음을 고백했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 24:13) 의의 사도였던 바울 역시 자신이 복음 안에서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구원을 상실할까 두려워 했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이 구원에 대한 문제는 추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금 논하지요.
그리고 이 구절은 몇 번이나 인용하는지 모릅니다. 이 구절을 설명해 주시는 분이 없어서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 2:38)
여기 단계가 나옵니다. 처음 회개가 나오죠. 그런데 이 회개는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성령의 역할 중에 하나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 16:8) 또한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는 말씀도 있습니다. 즉 제가 침례 받기 전에 성령을 통해 복음에 대한 확증을 갖게 되었다고 한 것은 성령을 통해 예수를 주로 고백했으며 회개토록 인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게 회개한 다음에 주어진 것이 침례였고 그 이후에 성령의 선물인 것입니다. 전 사도 베드로가 말한 단계를 밟았고 그것이 진리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 혹은 성령의 침례라고 알려진 것에 대한 증표를 물으셨는데...님은 그러한 증표가 있어서 침례를 받지 않고도 성령을 받은 것이라 단호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일단 침례 이후에 안수로서 성령의 침례를 받았고 그 성령의 침례로 인해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 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님은 안상홍 증인회에 침례에 대해 지적하셨는데..님은 안가보셨겠지만 저는 안증회에서 침례도 받고 유월절 떡과 포도주도 먹고 몇 년간 참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곳의 침례는 일단 침수로 인한 것도 아니며 예수가 아닌 안상홍의 이름(물론 침례시 여호와와 예수의 이름이 언급되긴 합니다.)으로 침례를 베풀죠. 아무리 침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자를 제시하고 있기에 제가 거부한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명백하게 나온 침례 자체가 안증회의 독점주장이기에 버려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짓된 교회라도 진리의 일부는 포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물 자체가 사람을 씻겨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제가 왜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침례라는 의식이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서 진행된다 한들 예수의 속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예수의 속죄가 너무나 소중하고, 우리로서는 100% 이해할 수 없지만 저는 십자가 보혈을 통한 구원을 믿고 있으며 그렇기에 침례라는 의식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이 왜 성경에서 그토록 강조한 침례라는 의식에 대한 부정으로 나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1서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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