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관에 대해...
님은 구원을 받는 것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방법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적에 전도사라는 직책으로 목회자를 꿈꾸시는 분일 터이니, 그리고 회심한 이후 특별한 공부를 하지도 않았음에 성경을 깨달으신 분이시니 이에 대한 명확한 주장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복잡하게 신학적인 용어는 잘 모릅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복음 안에서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믿습니다. (마태 24:13) 이를 달리 풀이한다면 끝까지 견디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 즉 구원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알미니우스니 펠라기우스의 주장이니 큰믿음 교회의 주장이라고 일갈하실 지는 몰라도 저는 성경에 기록된 것을 믿을 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처럼 아무리 이단 사설이라 해도 그 속에 일부의 진리가 있습니다. 이단이 믿고 있기 때문에 성경 진리 자체도 무시해야 한다고 볼 이유가 없습니다.
구원이 취소될 수 없이, 그저 한 번 믿기만 하면 100% 장담할 수 있는 것이라 하면 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고전 9:27)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고전 9:27)시키고 “날마다 죽는”(고전 15:31) 경험을 해야 했던 것입니까? 계시록을 봐도 “이기는 자”들이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고 약속하지 않습니까? (계시록 3:22) 한 번 구원 받으면 언제나 구원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보증을 받고 행함 없이 생활하는 자들도 구원받으리라 생각합니까?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권고가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들어가는 것이 믿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행위가 구원에 문제시되는 경우는 마치 우리가 믿음 없이도 특정한 행위를 통해 의를 얻으려고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예수께서 명하신 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행함을 통한 구원’이라면서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 2:20-23)
이 구절을 보면 우리가 구원받을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의문의 여지없이” 알려줍니다. 의로 구원받았던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행함과 함께” 했을 때 그 믿음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뭐라고 합니까?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24절)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행하려 하지 않으면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걸 가지고 주님만으로 구원이 100% 불가능한 것을 부정하느니 마니라고 부정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행하는 것을 오히려 주님을 통한 구원으로 봐야지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한 것을 “오직 믿음”이란 말로 싸그리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 조건이 나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1)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에베소 5:5)
여기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의 조건이 나옵니다. 단순한 불신자들이 아니예요. 믿음이 있노라 공언해도 저런 악한 일들을 반복하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즉 성경 곳곳에서는 의로운 행동과 의롭지 못한 행동을 들어 구원의 조건과 결부시킵니다.
물론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행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하여 믿음 없이 드려지는 행함 자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께서 명하신 대로 충실히 행해서 구원받는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것 역시 주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선을 행해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노라 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는데”(야고보 2:19) 그가 믿음이 없어 구원을 못받았다고 봐야 하나요?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이전 토론에서 주께서 원하시는 것 중에 침례를 언급했던 것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데(마가 16:16) 끝까지 침례는 필요없다, 믿었지만 침례를 못받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면서 계속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을 정죄하시지 하고자 했으나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해서까지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은 주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지 않아도, 성령 받고 성경을 이해했다고 하니 제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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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 9:27)
몇몇 분들은 이 구절을 들어 사람이 죽은 다음 바로 심판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들을 기회도 없고 오로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만약 이 구절을 “죽은 다음 바로 심판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게 되면 부활 신앙 자체가 무의미해 집니다. 죽어 바로 심판 받아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데 왜 굳이 부활을 하게 됩니까?게다가 성경에는 심판을 받을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디모데후서 4:1)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로마 14: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이 구절에 의하면 앞으로 살아 있는자와 죽은 자들 모두를 예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 인간이 죽어 바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면 여기서 말하는 아직 이루지 않은 심판대는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요? 게다가 예수께서 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란 말은 부활이 심판 날과 관련되었음을 알려줍니다.(사도행전 10:42) 계시록 20:12,13절을 보면 개개인들이 왕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시록 20:12,13)
잘 보세요.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나서 각 사람의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알려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죽은자들의 부활은 언제 일어나죠?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부활이 일어납니다. 그럼 시대적으로 정리해 보면 심판을 받는 일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모든 이들이 부활한 다음에 일어날 미래의 사건입니다.
이런 문맥에서 히브리 9:27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 9:27)
여기서 말하는 “그 후에는”이란 말은 죽은 즉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기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 어디서 기다리나요? 후기성도들은 죽은 자들이 부활의 그 날까지 기다리는 곳을 영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낙원이나 (영)옥이란 말로 부릅니다.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심판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지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 (계시록 20:12,13)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베드로전서 1:17)
여기서 심판의 기준을 “각 사람의 행위”대로 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생전에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에 부합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을 충실히 지켰는지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심판도 ‘우리의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알려줍니다.
또한 죽은 자들을 위한 침례에 대해 논의를 하면 꼭 이런 분들이 계시더군요. 불신자들이라도 죽고 나서 침례만 주면 구원을 받냐? 우리가 이름을 몰라서 침례를 주지 못하는 분들은 전부 지옥에 가느냐?
이건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초래된 질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수백 수천 번 물 속에 들어가 침례를 받는다고 구원을 받겠습니까? 믿음이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고 회개한 자들이 받아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해 침례를 받고는 있는데 그것을 과연 영의 세계에 계신 분들이 전부 받아들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은 영의 세계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분이라면 우리가 대신 행하는 침례가 효력을 발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누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누가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선교사들이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해 의식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에스겔 2:7)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죽은 자들이 받든지 아니 받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하에서 최선을 다해 (죽은 이들을 위해) 침례를 베푸는 겁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주님의 재림이 있을 때까지 전부 완수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 의식을 행하며 그 이후의 일들은 오로지 주님의 권한에 맡길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과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융통성 없이 재단해서 판단하실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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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주 전도사님께서 쓰신 글들의 양이 많긴 하지만 그 핵심을 찾기가 힘들어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님께서 직접적으로 질문하신 것들이 몇 개가 있어 그것을 토대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님이 몰몬교에 빠지기 전에는 예수의 주되심과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영적인 지식을 깨달음에 있어서 완전히 유아상태였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고 계시는데 이건 신천지인들이 하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빠지기 직전에 아무런 영적인 지식도, 깊이도 없었다. 그러나 빠지고 나서 보니 여기가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말들은 수많은 이단들이 하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통하여 스스로 사람에게 진리를 계시하며 그 진리는 사람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게 사람을 붙잡아 줍니다.
님에게는 몰몬에 빠지기 전에 뭐가 있었는지요?
인정하겠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영적인 지식이나 깨달음에 있어서 유아적이었습니다. 그냥 부모님 따라 다니는 교회에서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때는 지나친 열정으로 부흥회에서 성령(?)을 받고 방언기도를 한 적도 있었고 기도 중에 예수님의 형상을 본 적도 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교적인 열의가 너무나 지나쳐서 광적인 분위기에 취해 의미없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그것을 방언으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말씀을 찾아다니기 위해 여러 교회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좋다는 여러 교회들도 찾아다녔고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와 같이 이단이라 불리는 곳이라 해도 편견을 버리고 찾아가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꼭 이렇게 비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만 다니니 이단에 빠지지..” 사람들이 왜 이단이라고 부르는가 직접 찾아서 공부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그런 식으로 밖에 해석못하는 분들이 있긴 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눈물로 청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님은 주석이니 뭐니 이런 것들도 안보고 깨달으셨다고 하는데 전 그런 책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나름대로 성경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고 자부하던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몰몬경을 읽고 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는 말씀대로 전 몰몬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로 그 책의 참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몰몬교회의 어느 선교사나 지도자가 능숙하게 말을 해서, 성경을 이리저리 펼쳐들고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해서 혹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5)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물론 몰몬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데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 없고 오히려 그 두 책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온전하게 증거하고 있음을 제 온 마음을 다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님도 회심한 이후 특정한 공부도 안하고도 성경을 깨달으셨다고 하는데....저 역시 그렇습니다. 다만 님과 저의 차이라면 저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달았지만 그만큼 지금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건데...님이 깨달으신 것이 제가 깨달은 것과 맞지 않다고 하여 “어떻게 깨달았다는 것이 그 수준이냐?”고 비난하기에 앞서 무엇이 그러한지 성경만을 가지고 논의해 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만 님의 글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저는 어려운 신학적인 용어 같은 건 잘 모르니까 그런 용어보다는 어느 구절 어느 구절에 이렇게 되어 있고, 제가 인용한 구절은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이런 식으로 반증해 주시면 제가 이해하기 편합니다. 가끔식 토론에 임하신다는 분 중에 이해하기 힘든 신학적 용어만 쭉 늘어놓고 그것도 모르냐면서 수준 운운하는 분들을 봐서 말이죠..^^;;
2. 그리고 예수의 주되심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뭘 얼마나 깊이 꺠닫게 되었는지 완전히 궁금합니다.
예수의 주 되심과 하나님의 사심을 온전히 아는사람이
성경의 행함과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며 그리스도 대속사역의 완전함과
믿음과 표징을 구분하지 못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뭘 깨달았는지 글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님도 잘 아실 겁니다. 사도 바울로 추정되는 이가 낙원에 끌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4)고 한 것처럼 제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깊이 깨달은 부분들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것들일 겁니다. 다만 저는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제 온 몸으로 다해 믿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지식들은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고후 10:4,5)는 영적 무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비성경적인 것을 비성경적이라고 합니다. 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사람이 ‘성경의 행함과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며 그리스도 대속사역의 완전함과 믿음과 표징을 구분’을 모른다고 하시는데요..행함과 행위를 구별한 것이 성경 어디에 나와 있는지부터 묻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행함과 행위를 서로 상호적으로 사용하고 영어로는 둘 다 “works”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걸 무슨 근거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디도서 1:16)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벧전 1:17)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 5:18)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이 구절에서는 ‘행위’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심판의 근거로도 언급하는데 님께서 구분한 기준은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구분을 하면 더 이해가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 오로지 자신의 행위와 업적으로 자신을 높이고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여 참됨 믿음을 나타내는 자들”
구원 받는데 있어 행함이나 행위를 언급하면 무조건 전자의 경우처럼 율법주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에서 분명히 정의를 내리고 성경 곳곳에서 언급한 것처럼 후자의 경우는 진정한 믿음이며 진정한 행함입니다.
그리고 제발 님의 지식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그런 것 밖에, 그 수준이니..”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발언은 안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제가 깨달은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깨달았다는 분이..신학생이라는 분이 그것도 몰라서..”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이건 감정 싸움으로 밖에 발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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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바는 이렇습니다. 어떤 일정한 생각(교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개념 말입니다. 즉 성경을 통해 교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 교리를 상정하고 그에 근거해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님께서는 제가 그토록 많이 증거 자료로 인용한 성구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별로 없고 님의 생각을 이해해야 성구가 이해된다는 식으로 풀이를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다셨기에 하는 소리입니다.
“님이 설명하신 구절들에 대한 재해석은 지금 님이 이 개념에 대해 먼저 오해를 정리하시고 다시보셔야 하는 구절들입니다
즉 어떤 개념을 설명하고 계신데 그 개념에 대한 오해(?)를 정리하고 다시 봐야 제가 인용한 성구들에 대해 재해석이 된다는 것이죠.,님이 갖고 계신 지식이 수많은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 종교자들 중 감히 접근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하고 계신 그 “개념”을 이해해야 성구가 이해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다시 풀이한다면 님이 설명하고 믿고 계신 그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접근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맞습니까?
솔직히 저도 그렇군요.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과는 다른 개념을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알고 있는 개념과 유사한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면 예정론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구원 받은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 맞습니까?
님의 글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을 선택할 의지를 주셨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함(fear of God)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고,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갑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분을 선택할 의지를 주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도 없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고요? 말이 안됩니다. 선택할 의지가 주어졌으면 그분을 선택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겁니다. 선택할 수 없는 선택 의지? “인간이 이해 못할 신비”라는 이름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주고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에게 선택 의지가 있었고, 스스로 그들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위험한 요소들을 인류의 첫 자녀들에게 주었을까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감수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선택하라고 해놓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위에서 명한대로 행하는 로봇에 지나지 않죠.
님은 행위구원이 철저히 비성경적인 이유를 “하나님이 기록하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 지워졌다 다시 써졌다를 영원히 반복된다는 우스운 광경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용서와 자비)를 완전히 깨먹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시편 69:27,28)
이 구절에서 시편 필자인 다윗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했을 때 생명책에서 지워줄 것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애초부터 이름이 삭제될 수 없을 것 같으면 다윗이 그런 탄원을 할 수 있을까요? 만에 하나 다윗이 착각하여 그렇게 기도했다고 하면, 그것이 잘못된 기도임을 정죄한 말씀은 왜 찾을 수 없겠습니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자들은 한 번 기록된 모든 이들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끝까지 견딘 자들, 계시록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기는 자”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시록 3:5)
계시록 전체에서 언급된 ‘이기는 자들’이 누군지 보세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자들(3:3,19), 의로운 행위를 한 자들(3:8) 인내의 말을 지킨 자들(3:10), 차든지 덥던지 확고하게 복음 생활한 자들(3:15)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생명책에 기록되어 결코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자들은 주님께서 예정해서 구원받기로 선택한 이들이 아니라 끝까지 올바른 믿음을 갖고 믿음대로 생활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음 구절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과 반대되는 이들을 설명하고 있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시록 21:27)
즉, 속되거나 가증한 일이나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는 말씀인데 이 두가지 경우를 대조해 보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대표적인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즉 그릇된 행위를 반복하고 거짓되고 가능한 일들을 지속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님..아무리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 구원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브리 6:4-6)
그래서 바울도 끝임없이 자신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 과거 구원받았으나 잘못된 선택으로 멸망받은 이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권고한 것 아니겠습니까?
님.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라는 개념은 우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회개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고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 자체가 아무런 중요성도 끼치지 못하고 오직 믿음이거나, 주님의 일방적인 주권 행사로 구원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회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님께서는 빌립보서 4:3에서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자들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만..그 여인들의 이름이 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 구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빌립보 4:3)
보세요. 그 여인들은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힘쓰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힘쓰다’라는 말 자체에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고 행위가 전혀 필요 없다면 왜 그녀들은 그 복음에 힘을 썼을까요?
그리고 에베소서 2:8절을 들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2장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허물과 죄를 사이에서 죽었던 이들이었죠. 이 세상의 풍조와 불손종의 자녀들에게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동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던 이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서 온전히 돌이켰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행위를 주님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돌이킨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으나 이는 오로지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된 생활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죠. 그 구원이 그 이후 어떻게 행동하던 간에 변함없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말은 없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확인한 진정한 믿음은 그 믿음으로 행하는 행함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믿음+행위”가 맞습니다. 이건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하며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도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누가 10:28)고 하지 않으셨나요? 진정한 믿음이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함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시 바꿔 말하면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된 믿습니다. 님도 그 부분을 인정하여 “참된 믿음은 행실을 반드시 가져옵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러면서도 야고보나 바울은 믿음과 행위를 섞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죠. 믿음과 행위는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서 작용합니다. 왜 그것을 분리하려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 2:22)고도 하지 않았나요? 믿음이 행함과 함께 있을 때 온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만 있거나 행함만 있을 때는 온전한 것이 아니죠.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니 눈에 보이는 의식에 빠지는 성향이 지독하여 믿음을 지워버린다느니 전혀 관계가 없는 말로 성경을 부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믿음을 물으셨습니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세주로 믿고 그분을 통해서 구원받을 믿습니다. 저는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이 명하신 것들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분이 명하신 것 중에는 기도도 있을 수 있고 성경 연구가 될 수 있고, 침례 및 봉사와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나약함과 불완전성으로 인해 종종 그릇된 일들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회개하고 그분이 명하신 것들을 행하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저는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음을 압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은혜에 온전히 의지합니다. 그렇기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는 바울의 말을 신뢰합니다. 우리의 행함으로는 오로지 주님께 나갈 수 없고 구원받을 수는 없으나, 그분의 은혜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님은 분명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몰몬경을 읽다 성경과 어긋남이 없고 두 책이 온전히 조화를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몰몬경을 읽을 때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어떻게 분별하셨나요?
저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이며 님처럼 공부도 안하면서 성경을 다 깨달았다고 하진 않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성경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고..했지요. 그동안 자부하고 있던 성경 지식과 그리고 그 이후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몰몬경과 온전히 조화를 이룬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으로 인해 저는 님의 믿음과 행함에 대한 퍼즐이 잘못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님은 자꾸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가 스스로 진리라고 확증한다고 하시는데...그건 님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 아닐까요? 그들도 자기들은 신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성경을 온전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3차 7개절기와 새이름에 대한 신비를 깨달았다는 하나님의 교회나 계시록의 비밀이 온전히 열렸다고 자부하는 신천지와 님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느끼십니까? 최소한 저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성경의 비밀이 온전히 열렸다고 자부한 적이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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