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현대의 선지자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

모로나이 2007. 5. 29. 23:34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

 

교회를 반대하는 이들은 종종 후기성도들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맹신의 일종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뒤 전후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지도자들이 권고를

하면 의문을 품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오늘날 자유주의적 사상이 팽배한 가운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저도 무조건 순종만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죠. 이건 내 생각과 맞지 않은데아무리 봐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우리가 조금만 애를 쓴다고 하면 다양한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자칭 진실을 추구한다고 하는 반몰몬인들은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들면서 왜 이렇게

 했을까왜 이렇게 하지 않았는가…”하면서 끝임 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을 은폐한 증거인양 결론까지 버젓이 내리고 있는데솔직히 일일이 답변할 가치가

 없는 부분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를 보면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 이야기를 읽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는 문둥병자였는데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질병을 고쳐줄

 있을 것이란 기별을 듣게 되고는 선지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영접한 것은

 선지자가 아니라 그의 하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서 요단강에 일곱 번을 씻어라.

그러면 다시 깨끗해질 것이다.라는 명령만을 전달합니다. (열왕기하 5:10)

 

나아만은 선지자를 만나 기적적인 방법으로 치유함 받기 원했지만 그가 받은 소식은

요단강에서 일곱 씻으라는 것이었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엇이 요단강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7번을 씻으라는 것이지?? 이런 저런 의문을 가진 나아만은

 분노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5:12)

 

우리는 경전을 읽어볼 선지자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은 선지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와 맞지 않으면 실망을 하거나 의문을 제기합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는가? 번이면 것을 일곱 번이나 씻으라는 것인가

그것도 더러운 요단강에서.

 

그러나 우리는 경전에서 결과를 읽어 있습니다. 나아만이 자신의 생각을 접고

지자의 말에 순종했을 때에 그의 병에서 치유함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열왕기상 1장을 보면 어떠합니까? 심한 가뭄에 처해있는 과부가 나옵니다. 과부는 그녀의 아들과 먹을 줌의 밀과 기름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먹고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녀가 마지막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 엘리야가 등장해서 물과 빵을 달라고 합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을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후에 너와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열왕기상 17:13)

가난한 과부에게 하는 그의 말은 지나쳐 보입니다. 그녀에게는 작은 빵밖에 없었지만 선지자는 먼저 그것을 자신에게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지요. 약속된 축복은 위대한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같으면 이러한 선지자의 말에 순종할 있겠습니까? 순종과 그에 대한 축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본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없습니다. 현실적인 고려가 전혀 없이 순종만 하는 맹신자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순종과 그에 따르는 축복을 알고 맛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순종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기꺼이 순종합니다. 신호등을 보고 빨간 불일 길을 건너지 않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억압인가요? 그저 현실적인 고려 없는 맹종일까요?? 신호등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임을 알기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신호등을 단순히 길을 건너가는 자유를 방해하는 것으로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일이나 그분이 행하신 일에 대한 모든 이유를 없습니다. 그것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따져들 수는 있겠지요. 선지자가 불쌍한 과부를 도와주기는커녕 빵을 달라고 했을까 나아만에게 일곱번이나 씻으라고 했을까….우리는 이유를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순종이 결국에는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맛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맹종이라고요?? 그런 축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