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후기성도와 흑인, 인종차별

후기성도는 인종차별주의자???

모로나이 2007. 7. 3. 00:04

    안티몰몬들이 자주 몰몬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이다.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흑인들에 대하여 비하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이 교회는 거짓된 교회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흑인에게 신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와 별도로 논의될 부분이다.) 그러나 전에도 여러 번에 걸쳐 말했던 것처럼 그러한 몇몇 발언들은 그 개인들의 편견이며 생각일 뿐 교회의 근본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 교회의 교리는 표준 경전에 의해서 시험을 받아야 하며 살아 계신 선지자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12사도 정원회의 승인과 교회 회원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만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이 된다. 이렇게 분명한 원칙이 있고 그것을 여러 번에 걸쳐서 선언하였음에도 몇몇 지도자들의 발언을 근거로 끝까지 물고 늘어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요나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몇몇 제자들도 당시 이방인들을 향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근거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을 전부 인종차별주의자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는가?

    우리 종교의 종석이라 부르는 몰몬경에서는 과연 인종과 관련하여 어떤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또 그(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모두에게 그에게로 나와와 그의 선하심에 참여하도록 권하시며, 또 그는 그에게로 나아오는 자는 검거나 희거나, 메인자나 자유로운 자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도 거절하지 아니하시며, 또 그는 이방을 기억하시나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하나님께는 동일하니라. (니후 26:33)

      “보소서 주는 모든 육체를 하나로 여기시나니 의로운 자는 하나님께 사랑을 입는 것이라. (니전 17:35)

    "이제 나의 형제들아,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땅에 있든지, 모든 백성을 생각하심을 우리가 보나니…” (니전 17:35)

    과거의 어떤 지도자가 인종과 관련하여 어떤 말을 했던지 간에 그것이 표준 경전과 일치하지 않으면 교회의 공식 교리도 아니며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는 것이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다음 가르침을 보자.

     “우리는 인종적인 편견이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인종적인 편견은 악마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그러한 인종차별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가르침 236 페이지)

    미국 사회에서 한창 백인과 흑인과의 인종 차별이 극도로 심각해 질 때 제일회장단의 일원이었던 휴 비 브라운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동등한 권리에 관해서 말하며….어떤 인간들에게서 충만한 교육을 받거나 시민으로서의 권리, 그리고 취업을 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입니다." (IE 66 [Dec. 1963]:1058.)

     십이사도 정원회 엠 럿셀 벨라드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 모두는, 인종이나 피부색, 신조와 상관 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가족에 속해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의 종석인 몰몬경과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분명한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대적인 편견에 따라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몇몇 지도자들의 발언을 가지고 계속 흑인에 대한 편견과 후기성도를 의도적으로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악랄하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인종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어왔다. 1830년대 안티 몰몬들은 후기성도 경전에서 말하는 흑인 노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는 후기성도들을 대항하여 충돌질을 해왔다. (교성 101:79 참조) 노예 해방을 주장한다면서 사회적인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가 점차로 변해도 안티 몰몬들은 이와 같은 논리로 계속 후기성도들을 공격해왔다.

      1978년 이후로 모든 사람들에게 신권과 성전 축복이 주어졌다. 1978년과 상관없이 모든 흑인들은 항상 교회에서 침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과 백인을 철저하게 분리 차별하는 정책을 펼쳐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흑인과 백인은 따로 학교를 다녀야 했고 교회도 따로 참석해야 했으며 심지어 버스 내에서도 좌석이 달랐다.) 반면에 후기성도들은 항상 백인과 흑인이 같이 예배를 드리고 연합을 했다. 흑인에게 신권이 주어지지 않은 문제는 단순히 인종적인 편견이나 증오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아시는 문제이고 그에 대한 문제에 대해 많은 지도자들이 나름대로의 이유를 피력했지만 결국은 개인의 의견일 뿐 계시로서 분명하게 전해져 내려온 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권 금지를 인종 차별의 변명 꺼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후기성도들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그 예를 후기성도의 또 다른 경전인 아브라함서를 통해 보자.

     “의로운 사람이었던 바로는 자기 왕국을 세우고 그의 온 생애 동안 자기 백성을 지혜롭고 공평하게 다스렸고 ….그의 노상 노아는 그를 축복하였으나 신권에 관하여는 그를 저주하였더라.” (아브라함서 1:26)

      이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신권 금지는 사악함의 결과가 아니였다는 것이다. (바로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신권에 관해서는 제약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축복을 받아왔다. 흑인에게 신권이 거부된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사악했기 때문에 신권 금지가 비롯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분명 특정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른 부면에 있어서는 많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의롭게 생활한다는 조건 하에서…)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우리가 신뢰할 수가 있다.

      교회에서 계속 이야기해온 것처럼, 그리고 내가 지금껏 배워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하시고 잘못을 범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 시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를 인도할 사도로 부름 받았지만 유대인이 아닌 민족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10-11) 그도 시대의 영향을 받아 편견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기독교인이 인종 차별 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후기 성도들 중에서도 인종과 관련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진 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적으로 그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 게다가 교회의 몇몇 역사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인종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취해 왔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1842년에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영혼이 있는지에 대하여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 때 조셉 스미스는 흑인에게 없는 것은 기회의 부족일 뿐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또한 1863년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와 관련하여 도덕적으로 옳다고 했을 때 브리검 영 회장은 흑인들에 대한 차별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백인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Journal of Discourse, Vol. 10,p 110) ß이 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