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개인적 계시 와 간증

간증이란...

모로나이 2007. 9. 14. 22:49

우리는 복음이 참됨에 대한 간증을 얻을 때 그것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소망에 가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한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 복음이 참되다는 간증을 얻고 영의 증거를 얻었다고 하면 더 이상 알 것이 없는 것일까?? 물론 영의 증거를 통한 간증은 기본적인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다. 한 번 성신의 증언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가라는 것이다. 구도자들은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복음을 들을 때 바로 복음의 참됨에 대하여 알 수도 있다. 교회 모임에 참석하거나 몇 가지 기본 원리를 들었을 때도 이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이 참됨을 아는 것복음을 아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우리가 성신을 통해 즉시 복음의 참됨을 알고 고백할 수는 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때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복음에 대한 충만한 이해, 즉 복음을 아는 것은 인내와 신앙, 그리고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선지자 니파이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이는 보라 이같이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이라. 내가 사람의 자녀들에게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주되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하리라. 내 교훈에 귀 기울이고 내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지혜를 배울 것임이요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내가 더 줄 것이며, 우리는 넉넉히 가졌노라 할 자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조차 빼앗기에 될 것임이니라. (니파이 후서 28:30)

 

이 구절은 성경이 완성된 경전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권고이긴 하지만 복음이 참됨을 알고 있는 후기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는 복음이 참됨을 알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주일학교, 경전 연구, 그리고 선교사업을 통해 배운 것들이 엄청난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해는 완전하지가 않다. 십일조나 지혜의 말씀에 대해 역사적 배경이나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해박할 수는 있어도 그 속에 담겨진 원리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진실성을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원리의 깊음을 알려주시며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더 많은 지식을 주실 것이다. 그러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 있기에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만 하며 경전 공부나 기도가 그와 같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

 

반대로 넉넉히 가졌노라 할 자들은 가진 것조차도 빼앗기게 된다. 흔히 간증을 잃어버린다는 말은 그 진리 자체가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지식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값진 지식을 빼앗아간다는 말이다.

 

“…그들이 학식을 얻으매 자신이 현명하다 생각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아는 듯 여겨 하나님의 권고를 옆으로 제쳐 놓음이라 (니파이후서 9:28)

 

어떤 사람들은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교회의 감추어진 진실이라고 생각해 버리고서 주님의 권고는 부정한 채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며 교회를 반대하는 일들을 행한다. 게다가 이런 간증의 본질을 알지 못한 몇몇 사람들은 한 때 자신이 가졌던 간증이란 선물을 지금에서는 부인하며 애초부터 그런 것은 없었고 단순한 맹신이였고 속임 당한 것이라면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간증을 빼앗겼다는 것은 모른채로

 

후기성도는 교육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 받으며 특히 훌륭한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배우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배우는 것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후기성도들을 왜 계속 고인물 운운하면서 반복적으로 구호나 외치는 앵무새로 비유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작 비슷한 논리만 재탕 삼탕하는 앵무새가 누군데.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권고에 귀 기울일진대, 학식을 얻음이 좋으니라. (니후 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