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개인적 계시 와 간증

이성과 논리로도 진리를 알 수 있다

모로나이 2008. 2. 19. 23:50

 

“이것이 참된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요?”

 

우리는 종종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이 참됨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몰몬경이 참되다는 증거가 있나요? 진리를 알고자 하는 구도자들의 이러한 진지한 질문은 당연한 것이며 답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언급이 되어 있듯이 성도들이라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벧전 3:15)

 

물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신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모로나이서 10:3-5)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타나신 일이나 고대의 기록이 천사 모로나이에 의해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건도 사실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분별은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가능합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2:13,14)

 

그렇기에 아무리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분들도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신령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이며 그 본질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이 참된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이 참된지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라”고 권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답변이 때로는 성도들의 올바른 자세, 즉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는데 있어 게을리하거나 무책임하게 반응할 것에 대한 변명이 된다는 점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해 보라.”는 말이 진리에 대한 확실한 앎의 방법으로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어가고 있진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시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인 규모의 인터넷 매체, 그리고 놀랄만큼 발전하는 과학들. 시대는 점차로 이성과 논리 중심의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진리가 무력화지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방법과 세상적인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여도 널리 퍼져 있는 “반지성적 태도”가 과연 이 시대에 먹혀 들어가겠느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진리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확실한 이론과 폭 넓고 합리적인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조셉 스미스의 첫 번째 시현이 참되다는 성령의 증거가 있다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 그 사건에 대한 주변의 다양한 기록들이나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조셉의 모습이라든지, 첫 번째 시현이라는 나무가 맺은 열매들을 합리적 과학적으로 고찰한다든지...이러한 작업들은 충분히 진행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분별해야 하나 이성이나 경험과 같은 것들 역시 분명 진리를 알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냥 “기도해 봐.” “믿어봐”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믿을만한 근거를 분명히 제시해야하고 그것들이 단순한 환상이나 신화가 아닌, 그리고 결코 반이성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더욱 신뢰를 얻게 되며 그 믿음대로 살고 우리 삶의 이유가 되었을 때 신앙이 됩니다. 그렇기에 신앙으로 발전하기 위한 믿음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믿음과 관련해서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내 믿음이 내가 처해진 환경이나 수시로 변하는 마음 상태에 따라 기복이 심한 “감성적 믿음”이 아닐까, 혹은 그저 내가 좋기 때문에 아무런 검증도 없이 무턱대고 믿어 버리는 “편협된 믿음”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지쳐 힘들어질 때 내게 다가왔던 이 교회를 순간의 감정에 따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좋고 교회가 좋아서 그 이외 것들은 전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무조건 내 자신의 믿음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많이 해봤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처음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야 했기에 무신론적인 서적이나 반기독교, 반몰몬 서적들을 읽어 가면서 내가 처음 가졌던 믿음과 상호 비교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하나님께 묻곤 했었죠. “이것이 정말 참된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17)

 

그리고는 비교하는 원리대로 한 번 생활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아니면 사람이 말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구요. 그래서 시일을 정해두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몰두도 해봤습니다. 선교사업까지 나가서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온갖 욕설과 박해와 어려움을 당해가면서도, 때로는 나의 행위에 고민도 해보고 회의도 느껴보면서,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너무나도 강하게 느끼면서 “아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것이로구나..”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주님의 답변에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내 신앙의 기초가 된 ‘믿음’이 단순한 감정의 기복에 따른 느낌이 아닌 다양하고도 합리적인 증거에 의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지요.

그렇다고 하면 이제는 복음에 대한 내 소망에 대한 “이유”를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정도는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 재주도 없고 지식도 부족하지만, 또한 세상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너무 힘들어 주님을 잊고 싶을 때도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와 성신의 확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 1:20)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모든 것에 그분의 능력과 신성이 깃들여 있고, 그것을 보고 느꼈기에 더 이상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합리적 사고도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의 영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영성”도 분명 존재하구요...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 입은 우리 인간들은 다만 외면적 모습만이 아닌 그분의 속성도 그대로 그대로 물려 받은 존재이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이성과 영성 이 두가지를 온전히 활용한다면 참된 믿음의 지식을 얻게 되며, 분명하고도 확실한 신앙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몬슨 회장님께서 자주 인용하시는 종교작가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원하시지만 머리는 어른 것을 원한다.”

 

어린애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으로는 정말 순수하게 주님의 신령한 것들을 구하며 머리로는 어른과 같이 장성하고 합리적인 자들이 우리 후기성도들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