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개인적 계시 와 간증

기존 패러다임과 복음에 대한 간증의 조화

모로나이 2008. 1. 19. 01:06

 

 

요한복음 6장 끝부분에 보면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요한복음 6장 60-66절에 의하면 제자들이 예수의 살과 피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게 되었을 때에 제자 중 여럿이 듣고 “이 말씀을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을까?”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전에 가지고 있던 상식들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교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의문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 상당수가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는 일”(요 6:60)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의 간증을 의심하거나 흔들리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6:17에서 나온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온 두 부류의 사람들을 한 번 비교해 보자. 두 부류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한 부류는 자신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맞지 않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말을 자신의 생각과 고정관념으로 풀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서로 일치하지가 않자 어려워하기 시작했고 상당수가 예수를 더 이상 따르지 않게 된 것이다. 반대로 베드로의 경우 역시 그런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간증”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움으로 자신의 신앙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를 보면 알겠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잡혀 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자 비로소 그의 간증은 흔들리게 되었다. 그의 개인적 생각(패러다임)이 메시야의 죽음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채 의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도들과 함께 있었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었다. 이 때 그의 개인적 생각, 즉 메시야는 죽어서는 안된다는 기존 관념들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의 간증은 다시금 확고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나중에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교회 정책, 교리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벧전 4:12)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신으로부터 오는 복음이 참되다는 증거를 얻은 우리는 종종 외부적인 환경, 즉 현대 과학이 주장하는 것들이나 그리 알려지지 않은 교회의 역사나 교리에 대한 폭로(?)에 노출되어 자신의 간증을 의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갈등하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기도 하며 때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종종 그러한 노출에 접촉하게 되었을 때 “이것은 참 어려운데...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아”라면서 더 이상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습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몇몇 성급한 이들은 이러한 의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합당하게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인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패러다임이 자신이 얻게 된 간증과 일치하지 않을 때 힘들어하고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렇다. 새롭게 알게 된 지식과 복음에 대한 간증이 일치하지 않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둘 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더 완전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환경 때문에 “내가 가진 복음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결론 내리지 않고 “내가 그 전에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이 불완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완전에 이르고 있다” 고 이해를 하게 되면 그 두 가지의 지식을 전부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처음에는 잘못되었었지만 오히려 그의 간증을 더욱 강화시킨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나의 간증도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고, 강화될 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