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안티 기독교인과 대화

오류에 빠져있는 자들..

모로나이 2007. 9. 22. 10:32

성서의 내용을 판단함에 있어서 성서의 내용 그 자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방식을 순환오류라고 하며 다른 자료들을 판단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그러한 방식 역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란

 

A가 p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p이다.

 

라는 방식인데 A라는 것이 P를 옹호할 권위가 있는 것인지는 역사적인 근거나 문맥적 근거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 내에서 한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한국 자료들을 근거로 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옆에 살고 있는 일본에 사는 학자가 "나는 한국에 대한 전문가이다."라는 미명으로 온갖 저술들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권위까지 얻었다면 그의 학설이 한국의 진정한 역사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 일본 학자의 연구를 근간으로 해야 객관적인 해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권위에의 호소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식입니다. 무슨 거창한 직책을 가진 학자들의 의견들을 절대적 근거로 하기 쉽습니다.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와 무관한 타민족들의 전통이나 역사를 근거로 제시해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서는 어느 개인에 의해 씌여진 것이 아닙니다. 수천년에 걸쳐서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시대와 문화라는 배경 속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형태로 편집된 것은 기원후 400년 경에나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 전에는 파피루스라는 형태로 단편적으로 분산되어 존재해 왔습니다. 물론 시대가 오래된 만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문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의 내용을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서라는 책은 다양한 시대를 두고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그 기록 의도와 문화를 고려한 상태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에 의해 기록된 문서를 근거로 해야지 그 옆에 일본이나 중국인이 기록한 역사를 근거로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참조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참조의 자료를 절대시하지 않는다 하여 객관성을 상실하거나 순환 논리에 빠졌다는 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왜 믿느냐...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순환논리라 할 수 있지요. 성경을 믿는 이유는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사도들의 증언이나 그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속사도, 교부들의 증언들, 그리고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할 수가 있겠지요. 또는 성서의 가르침으로 인해 극적 체험을 통해 하게된 경우나 예언의 성취를 근거로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럼 안티들이 범하는 오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에 언급한 "권위에의 호소"를 제외하면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1. 무지에의 호소 (ad ignorantiam fallacy)

 

 p가 참이라는 아무런 증명도 없다. (또는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p는 거짓이다.

 

참이라는 증명이 없고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하여 무조건 거짓으로 평가한다는 것 역시 오류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많은 지식들을 갖고 있다 하여도 아직 모르는 것들이 무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모든 것들이 증명되지 않았고 알지 못한다 하여 거짓된 것으로 단정을 내리는 것은 법정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오류 중에 하나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모든 것들이 100%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여 거짓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이 오류는 어떤 일부의 것을 파악하여 특성을 인식한 뒤에 그 전체 그룹이나 유사한 것들에게도 그러한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이런 오류는 몇가지 단편적인 공통점을 근거로 하여 "이 모든 것들을 어떤 것의 영향을 받았다. 동일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근원이 같다."는 식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탄생이 오시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법궤나 케룹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3. 정황적 논증 (상황에 호소하는 오류)

 

A가 p를 긍정하고 있다.
A는 그의 특수한 환경으로 인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p는 거짓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주장에 대해 그가 처한 특수한 환경으로 인하여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성실하다고 논함으로써 그러한 주장을 불신하려는 데에서 오는 오류입니다.

 

성서를 기록한 자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힘든 상황에 용기를 부여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며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는 예수를 믿고 있던 상황에서 신격화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불신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에 상처를 입은 자들이나 기독교를 혐오하는 자들이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서의 거짓을 호소하려는  "군중(여러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 (ad populum)"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자처하시는 분들 역시 몇가지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맹신인가..라는 글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우리 모두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 맹신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맹신에 빠지는 것일 수 있으며 님들 역시 맹신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