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배도와 회복

배도와 교회의 회복

모로나이 2007. 11. 8. 21:40
예수님이 하신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다시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이 구절은 일종의 예언으로 볼 수 있는데 배도와 회복에 대한 기본적 흐름을 담고 있기에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 13:24-30)

 

잘 알겠지만 이 구절은 좋은씨로 상징된 참된 교회와 가라지로 상징된 거짓 교회가 오랜 세월동안 공존하다가 추수때가 되어 명백하게 구분된다는 말입니다. 밀과 가라지는 열매를 맺기 전에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형태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들이 가라지를 뽑고자 하였을 때 가라지를 뽑다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지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추수철이 다가올 때면 동일한 모양과 색을 유지하던 밀과 가라지는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 때서야 천사들을 통해서 추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 구절에서 알아야 할 점은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고 어느 것이 밀이고 가라지인지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배도가 일어난 상태에서 무엇이 참된 교회인지 거짓된 교회인지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랬기 때문에 교회의 명줄에 대해 논할 때 어떤 단체가 참된 교회였고 어떤 단체가 거짓이었다라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안식일교회의 경우도 배도를 인정하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참된 교회의 명줄이라면서 몇가지 교파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왈덴스인이나 영국의 위클립, 허스, 제롬을 기본으로 루터에서 제임스 화잇까지 연결하고 있지요. 물론 그 단체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칼로 무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사도들과 선지자의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조직체로서 교회는 유지될 수 없었으며 신실한 개인의 믿음과 신앙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선지자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은 결국 예언의 은사도 없었으며 하나의 조직을 이끌고 행할 신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 4:11-14)

 

초기에 예수께서 교회를 조직하시고 사도나 선지자와 같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며 사람의 궤술과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다 죽어 버리고 예언의 선물도 받을 수 없고, 신권을 행사할 사람들도 없어지자 교회는 하나둘씩 분리가 되어 버렸고 수많은 교파로 난립하여 오늘에까지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계시가 사라지자 교회는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이론적인 구축을 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을 도입했습니다. 플라톤의 사상을 기본으로 해서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외부 철학의 도입이 한 종교를 구성하는 이론의 틀을 마련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의문이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어떤 인간의 철학이나 관념이 아닌 신성한 계시에 근본을 둔 것임을 기억한다면 철학의 유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명확해 집니다...삼위일체라는 후대에 만들어진 교리 역시 플라톤 철학을 기본으로 한 것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계시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기존의 계시 기록인 성경이나 전통에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과거의 기록인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상이 등장하여 그 외의 것은 전부 이단의 것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경 지상주의는 인간적인 해석과 부족한 원문으로 인해 수많은 교파들을 양산하여 서로 이단과 정통 논쟁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 하신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보듯이 추수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밀과 가라지는 구분이 됩니다. 아주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추수가 원할하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을 요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과 함께 주어진 교회의 회복이라고 믿습니다. 성경 66권이나 전통에만 유지했던 기존의 교회와는 달리 계시가 주어지고 신권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조직되어 추수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10:2 참조)

 

교회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전초단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