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침례 받고 교회에 들어오기 전의 일입니다. 당시 감독님과 함께 편지를 통해 교회에 대해 토론하면서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배도였는데 그것도 주님의 교회가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대배도”의 이론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이전 여호와의 증인에 다닐 적에 ‘배교’라고 해서 배도와 비슷한 개념을 배운 적이 있지만 그것은 교회 전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과 편지 교환을 하며 다음 구절을 제시하고는 “대배도”라는 이론은 거짓된 것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 16:18)
이 구절에 의하면 분명 예수님은 단단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 몰몬은 배도로 인해 교회가 사라질 수가 있다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을 두고서 각 교단마나 해석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반석”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만약 그것이 “반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반석”은 또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가톨릭의 관점
가톨릭 교회는 이 “반석”을 문자 그대로 베드로를 의미한다고 보며 베드로부터 지금의 교황에 이르기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교황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교리적 근거로 삼습니다. 물론 교황권을 인정하지 않는 다른 교회에서는 이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관점
개신교회는 일반적으로 이 “반석”을 기독교회라고 해석하며 죽음이나 사탄의 그 어떤 힘으로라도 예수께서 약속하신 교회 전체를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 관점
후기성도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반석”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는 교회가 세워져야 할 반석이며 그 구절 앞에 나온 내용을 근거로 볼 때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3-17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베드로가 알게 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로서 주어졌으며 (마태 16:17)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분의 교회가 세워져야 할 반석이 바로 이 계시임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에 의해서 다시금 확인이 됩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것, 즉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에서 바위가 의미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계시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1976년판 274페이지)
이 구절이 정말 배교가 없는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왜 베드로를 포함한 몇몇 사도들은 “배도”를 예언했던 것일까요? 예수께서 금하신 것을 사도들의 예언하고 가르쳤다는 것이 이치적으로 맞는 것일까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선 전체적 의미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특정 구절에만 연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음부의 권세”로 번역한 구절을 영어로 보면 “the gates of hell” 즉 “지옥의 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의 문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인데 ‘문’의 기능은 밖과 안을 구별하는 도구일 뿐 강압적으로 무엇을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옥 혹은 음부(hell)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로 “하데스”인데 “죽은 자들의 영이 거하는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옥의 문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은 “즉은 자들이 거하는 곳, 즉 영의 세계”도 교회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교회(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죽어 영의 세계에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맥적으로 봤을 때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땅과 하늘에서 묶을 수 있는 인봉의 권세를 부여했음을 볼 수 있죠. 후기성도들에게 있어 마태복음16장 19절에서 “묶다”는 의미가 “인봉”과 동의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구절은 의식을 행할 수 있는 신권 권세를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닌데 초대 교부였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기원후 160-215)의 경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하데스, 즉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에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믿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보여졌으니...주님을 따라 사도들도 하데스에서 복음을 전하였다...”.(Clement of Alexandria, The Stromata, or Miscellanies VI. in ANF, 2:490.)
또한 “이기다”의 의미를 다른 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데 문의 개념을 단순히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면서 외부로 방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지상에서의 배도로 인해 참된 교회가 영의 세계에만 있게 되다가 곧 지상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의미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 영의 세계에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회원들이 장막을 거쳐 이 지상에 내려와 복음을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해석 역시 성경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마태 16:18을 다시금 풀어 보겠습니다.
“너 베드로는 보다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돌이라. 그 큰 바위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웠으며 영의 세계의 문이 내 교회 앞에서 닫힐 수가 없으며 죽은 성도들을 막을 수도 없다.”
이러한 해석은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 봤을 때 (벧전 3:18-22, 벧후 4:1-6) 이치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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