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개인적 계시 와 간증

(몰몬교) 마음 속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모로나이 2010. 3. 10. 08:59




모로나이서를 보면 몰몬경을 읽고 기도했을 때 성신께서 우리의 마음에 응답을 해주실 것임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진리인지 알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 혹은 영적인 말씀을 들을 때 성신은 항상 우리의 마음 속에 진리의 참됨에 대해 속삭이신다는 가르침도 우리는 여러 차례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성구를 보면 마음으로 느끼는 것들이 때로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에레미야 17:9)


인간은 타락된 성품을 물려 받았는데 그 중에 가장 거짓되고 부패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거짓된 생각을 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아 진리라는 확고한 사실을 인식하는 도구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고, 성경 혹은 과학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한 지성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윗 성구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마음(감정적 측면)은 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어 속임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경에서 “마음”이란 단어는 종종 정신이나 영혼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구약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단어는 10가지 이상이 되는데, 주로 사용된 단어는 '레브'(leb), '레바브'(lebab)이다. 신약에서는 '누스'(nous, 롬 1:28; 7:23; 고전 1:10)나 '프뉴마'(pneuma, 마 26:41) 등이 마음이라고 번역되었는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카르디아'이다(kardia, 마 5:8, 28).

'레브'(leb)라는 단어는 가슴 부위 혹은 심장 등 신체 부분을 가리킬 때 쓰였다(시 37:15). 이곳엔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 들어있다. 괴로움(삼상 1:8; 렘 4:18; 시 13:2), 즐거움(출 4:14; 삿 16:25; 잠 14:10), 근심(신 20:3; 사 7:2), 절망(전 2:20; 애 1:20), 기력(시 40:12), 친밀함(창 34:3) 등이다. 정신적인 작용 면에서는 인식(출 9:21; 전 1:13), 통찰(신 8:5; 욥 17:4), 비판적인 능력(수 14:7), 재판하는 능력(왕상 3:9; 대하 19:9) 등이다.....

이성이 자리 잡고 있는 곳: 마음에는 지식을 받아들여 저장하기도 하고, 냉철하게 판별하여 사고하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기능도 있다. 잠언에서는 자주 마음의 이성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잠 2:2, 10; 3:3; 6:21; 7:3; 15:14, 28; 16:23, 23:15).” (비전 성경 사전, 마음, 두란노 출판사)


우리는 흔히 마음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이성이나 논리(머리)를 들지만, 실제 논리나 이성도 인간의 정신 활동의 일부임을 감안한다면 정신이나 영혼과 동의어로 쓰이는 ‘마음’이란 단어에 굳이 감정적 요소만을 담고 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음’에 해당되는 단어에는 이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냉철하게 판별하는 사고와도 관련이 되어 있지요.


따라서 몰몬경을 읽고 기도했을 때 우리 마음 속에 그것의 참됨을 알려준다는 말은, 비단 따뜻한 마음이라고만 정의내릴 것이 아니라 지적인 동의와 논리적인 추론까지도 함께 아우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한 마음의 역할과 관련하여 어떤 사례를 들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에레미야 20:9)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주님의 마음은 그의 마음 속에 불과 같아 말씀을 전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결심을 하거나 포기하는 것 역시 인간의 정신적, 추론적 활동과 연관이 됩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사도 16:14-15)

(이 구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속에 보내주심으로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후서 1:19)

(예언의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그 말씀이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떠오른다는 것은 깨달음의 과정이나 논리적 확신과도 연결지을 수 있지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2:37,38)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당합니다. 그들은 개종했으며, 이 과정 속에 그들은 무엇을 해야할 지 묻고자 하는 열의를 갖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침례 받고 성신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 17-19)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실 때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인용했던 성구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마음은 속기 쉽고 부패하였지만 실제 주님께서 그분의 뜻을 알리기 위해 인간의 마음(정신, 이성, 감정)을 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몰몬경을 읽고 기도하면 성신께서 그 마음에 그 책의 진실성을 알려주신다는 말을 단순히 감정적인 느낌으로만 치부하여, 마치 후기성도가 이성이나 정신적 추론을 전혀 배재한 채 마음 속에 단순한 따스한 느낌만을 신뢰한다는 식으로 오해를 하고 있지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경전에서 언급하는 마음의 느낌을 동일시하여 “영화를 보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하여 그 영화가 실제 있었던 일이 되는 것이냐?”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비아냥 거리는 자들에 대해 몰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그들이 불평한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행하심을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니전 2:12)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분의 뜻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며, 경험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마음속에 임하신다...하니 인간의 감정만

연관하여 이해를 하며,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 따위로 비교를 하고 있지요.


그럼 반대로 니파이는 어떻게 행했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자 심히 원하였던지라. 이러므로 내가 주께 부르짖었더니, 보라, 그가 나를 찾아오사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으므로 나는 나의 부친이 하신 말씀을 모두 믿었느니라. 그리하여 나는 나의 형들처럼 부친을 거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니전 2:16)


1. 하나님의 비밀을 심히 알고자 하였습니다.

2.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게 됩니다.

3.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고자 하는 열의와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분별하게 되며, 그것을 확신하게 되고, 행동하게끔 인도하는, 그래서 간증 모임에서 흔히 듣는 “이것이 참됨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닌 진정한 자기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