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선교사는 앉을 때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평 범한 선교사들은 소파에 앉아서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들은 아마도 MTC에서 여러 번 봤을 비디오를 기억하며 토론을 이미 수백 번 가
르쳤다 하더라도 동반자가 가르칠 때 흥미롭게 들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지도 잘 압니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진지함과 사랑을 지니고 복음을 가르
쳐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선교사는 앉을 때부터 가르침이 진행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그들의 집에 들어갔으며 그들을 가르쳤고, 우리는 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쳤으며, 그뿐 아니라 또 그들의 언덕 위에서도 가르쳤고, 또 그들의 성전과
또 회당에도 들어가 그들을 가르쳤나니, 이에 우리가 쫓겨나고, 조롱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뺨을 맞았으며, 또 우리가 돌로 맞고, 잡혀서 단단한 줄로 결박되
어, 옥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로 우리가 다시
구출되었느니라.”
(앨마 26:29)
“그들은 길가는 도중에 전도하며, 모든 곳에서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며, 부자와
높은 자와 낮은 자 그리고 가난한 자를 불러 회개하게 할지어다.”(교성 58:47)
비범한 선교사는 걸을 때 가르칩니다.
비범한 선교사는 그들이 깨끗한
집(많은 집주인들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집을
관리하는 것을 보고 절대로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에서 떠날 때부
터
가르치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걸을 때나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교통 규칙을 지킬 때나 모든 일을 가르침과 연관합니다. 선교사들이 느리게
걸을 때나 땅을 보고 걸을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압니
다. 사람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면 선교사들고 그들이 대표하는 교회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할까요? “저 사람들 행복해 보이지 않네?” “저들이 무엇을 팔든지 사
지 않을꺼야.” 뭐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선교사들이 긴급함을 갖고 힘차게 걸
으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
젊은이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또는 “저 두 사람은 왜 저리도 행복해 보이는
거지? 저렇게 힘있게 걸어가게 만드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뭐 이런 식으
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비범한 선교사들은 누군가가
선교사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첫 번째 토론은 그들이 문밖을 나설 때 시작된다는 것
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