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일부다처

일부다처의 역할.

모로나이 2008. 9. 1. 21:09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으면서도 가장 민감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고 하면 아마도 일부다처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씩 미국 일부다처주의자들로 인해 ‘몰몬교’라는 이름이 이슈가 되어 시들어졌다 싶은 문제들을 다시금 들고 나오는 이들도 있긴 하다만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이 문제는 쉽게 다가갈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부다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교회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일부다처를 실시한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그 이후 교회 회장들이 모습은, 어찌보면 육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리라는 이름으로 힘을 남용한, 파렴치한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이 다시금 일부다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순종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그에 대해 반대 운동을 벌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처음 이 교회에 들어왔을 적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면서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면서 강력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성신의 증거를 받았다. 누군가는 그러한 느낌을 감동적인 영화나 책을 보고 난 뒤에 따스한 여운이나 감동정도로 치부할지 모르나 분명 내게 있어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예수가 모든 인류의 구세주라는 명확하고도 분명한 증거였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알지 못하고 이해 못한 것들이 있다 하여 알고 있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었다. 현재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하면 언젠가는 알려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신앙이 아닐까 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잔인무도해 보이는 모습들, 심지어 선지자라는 사람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장애요소로 작용할지 모르나 성경 전체에서 흐르는 원리들과 개념들은 분명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며 실제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증거를 얻었다. 그렇다면 일부다처에 대한 문제도 표면상으로만 바라보고 현대적 방식으로 풀이,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원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외적 문제는 그리 큰 역할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경전 상에서 등장하는 일부다처의 승인은 몰몬경 야곱서에 간단하게 등장할 뿐이다.

 

“이는 내가 나를 위하여 자손을 일으키려 할진대, 만군의 주의 말이니라, 내가 내 백성에게 명할 것임이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들은 이러한 것에 귀 기울일지니라.” (야곱서 2:20)

 

이 구절에서는 일부다처를 허락한 한가지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곧 “주님의 백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의로운 성약의 자녀를 낳기 위해 일부다처가 허락된 이유는 구약 성경에서도 등장하고 있기에 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부분 일부다처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당시 유타주에 남자가 별로 없어서 아기를 낳기 위해 일부다처가 실시되었다...”는 식으로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그저 일부다처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설명에 불과한 것 같다. 정확한 자료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분이 올려주신 통계에 의하면 19세기 중후반에 유타 주의 남녀 비율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년도_________________남성_________________여성

1850________________6,020__________________5,310

1860_______________20,178_________________19,947

1870_______________43,451_________________42,503

1880_______________73,477_________________68,946

1890______________108,943_________________96,982

1900______________138,923________________133,542

1910______________192,118________________174,465

1920______________227,232________________214,669

1930______________255,284________________244,683

1940______________274,587________________268,333

1950______________341,007________________335,902

 

이 자료가 확실하다면 남성 비율을 균형 있게 만들기 위해 일부다처를 실시했다는 이론은 그야말로 “인간의 이론”일 것이다.


사실 일부다처제가 실시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 하여도” (모세 5:6) 온전히 순종했던 아담의 태도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았으나 그 구체적인 목적과 의도에 대해서는 초기 교회 지도자들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주변 반대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설명을 덧붙이고 미화하는 작업을 펼치긴 했지만 결국 드러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의견일 뿐이었다. 그래서 초기 지도자들의 일부다처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면 경전으로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이며 그러는 가운데 상당부분이 지나친 곡해와 오해의 여지가 많은 것들이 발견된다. (흑인 신권 문제도 그렇고 일부다처 문제도 그렇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정당화하여 설명하기 위해 애쓴 노력들이 결국은 많은 부분 오해의 여지를 남기며 비판가들의 조롱꺼리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그러한 주장들은 교회의 가르침이나 원리와 무관하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러한 발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주님의 계명에 논리적, 이성적 풀이를 하려는 시도는 거의 언제나 실패해 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계명이 주어진 이유에 대해 조금씩 알 수는 있을지라도 계시로 명확해지지 않은 것을 인간적 논리로 설명하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런 점들을 염두해 두고 다음 글들을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다음 이어질 몇 가지 것들은 일부다처가 성취해 놓은 것들을 후대에 학자들이 발견한 것들을 모아둔 것으로 어느 것이 주님의 의도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리진 않는다. 다만 이러한 역할들을 수행하기 위해 일부다처제가 허락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열어두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초창기 교회의 유익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주님의 계명에는 알지 못하나 성도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들만 담겨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1. 복수결혼은 주님의 백성들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졌다. 대다수가 반대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계명에 기꺼이 순종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 인해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인도했다.


2. 야곱서에 나온 것처럼 의로운 자녀들을 일으키기 위해 복수결혼이 허락되었다. 당시 서부 사회는 거칠고 불의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님의 자녀들은 의롭고 복음에 헌신하는 가정에서 양육될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남녀 성비율 문제가 아닌 의로운 자녀의 양육과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복수결혼은 세상과 관련하여 후기성도를 특별한 백성으로 구분하는데 기여하였다. 특별히 사회적 고립은 교회가 처음 생긴 이래로 다른 종파과 분리하여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확고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회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한 종교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가 속해 있는 사회 내에서 일정한 긴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례로 복수결혼을 거부한 RLDS의 경우 숫자가 미비하며 교리적 정체성이 없고 결국에는 기존 개신교회의 일파로 흡수되었다.


4. 복수결혼은 “모든 것의 회복”의 한 부분이며 아브라함, 야곱과 같은 선지자들과 긴말한 연관성을 맺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19세기 후기성도들은 이러한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성약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깊게 인식하였다.


5. 많은 가족들이 서로 유대관계를 맺게 되어 교회를 강화하는데 일조하였다.


6. 복수결혼은 당시 국가 평균과 비교하여 높은 결혼율을 보였다.


7. 복수결혼은 결혼관계에 있어 큰 노력을 할 것을 요구하게 만들어 게으른 자들이나 성품이 뛰어나지 않은 자들의 경우 더 많이 노력하고 개선하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부지런히 일하고 여성을 존중해야 했다. 또한 여성들에게 결혼 상대를 선택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8. 19세기 개척자들의 경우 생활 수준은 낮았으며 여성들이 오늘과 같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많은 과부들이 부양을 받아야 했다. 교회에 가입하여 미대륙으로 이주한 여성들은 남편들도 없고 경제적 지원도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책이 필요했다.


9. 복수 결혼은 당시 여성들이 대학 학위를 따고 국제 여성권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도록 도와주었다.


10. 복수 결혼은 남편들이 선교사업을 나가 있는 동안 서로 돕고 지지할 수 있는 사회적 버팀목이 되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일부다처가 가져다 주는 여러 가지 유익의 일부일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사회적 편견이 극에 이르렀고 많은 이들이 박해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초기 성도들이 복음을 순수하게 보존하며 서로 간에 유대관계를 더욱 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왜 이러한 계명이 19세기에만 주어졌는지는 마침 그 시기가 초기 교회가 회복되고 정착되어 전세계로 선교사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기임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더욱이 윌포드 우드럽 회장에 의해 복수 결혼이 폐지된 시기가 당시 극심해진 박해도 그 원인으로 작용하겠으나 초기 정착 시절에 유익을 주었던 복수결혼의 효과들이 그 역할을 다했던 시기와도 일치한다고 본다.


물론 이와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이 이해한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른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았느가라고도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왜 다른 전능한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하나님 외에는 알 수가 없지 않을까?? 그런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복천년 때에 이르러야 알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