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 근본주의자로 알려진 FLDS의 제프 워렌과 관련, 자꾸만 19세기 후기성도들이 행했던 일부다처와 연관하여 동일선상에 두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볼 때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본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일부다처를 행한다. 그 하나만 본다면 과거 후기성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그 내부로 들어갈 경우에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죠.
몰몬교, 즉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경우는 19세기 말에 윌포드 우드럽 회장을 통한 계시를 통해 일부다처를 폐지했습니다. 현재 텍사스 지역에서 일부다처를 행하고 있는 FLDS의 모습을 1세기 전 후기성도와 비교해 본다면 유사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FLDS 내의 어린 아이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성적 행위들을 과거 후기성도와 연관하여 해석하려는 이유는 결혼의 나이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과거 후기성도 지도자들이 미성년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것이 현대 FLDS의 아동 성착취와 같다는 거죠. 하지만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19세기에는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훨씬 어렸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연구한 역사가 캐서린 데이네스는 19세기 미국에서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이 12세 이상이었는데 15세에 결혼한 여성이 흔했으며 그것은 결코 아동학대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서 유럽 외 지역에서 14세에서 16세의 여성이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현재 언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FLDS 여성의 경우 겁이 많고 복종만 하며 시대적으로 퇴보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거의 전부이지만 19세기 몰몬 여성의 경우 일부다처를 하건 일부일처를 하건 간에 단순히 자녀 양육과 남편을 따르는 일만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성들은 정치적인 면에서 활동적이었으며 살고자 하는 영역을 선택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국제 여성 조직과 관계를 맺었으며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출판, 문학 활동에 있어서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일부는 의과대에 들어가 유능한 의사가 되기도 했죠.
FLDS에서 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19세기 후기성도의 일부다처 결혼은 한 개인의 일방적인 권위에 의해 자행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혼과 관련된 결정은 온전히 상호간의 느낌을 고려함으로 이루어졌으며 결혼 제안에 대한 여성의 선택과 만족은 언제나 존중받아 왔습니다. 물론 사회적 문화적 압력이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진 않았죠. 남성과 여성 전부 그 결혼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특정 지역에 은거하여 살고 있는 FLDS와는 달리 19세기 몰몬 문화는 다양한 분야, 즉 교육, 산업, 정치, 건설, 농업, 그리고 전문적인 일과 같은 분야에 적극적인 편이었습니다. 당시 후기성도들은 삶의 변화와 급박한 변화에 따르려 현대적 모습을 추구하기도 했었죠. 그에 대한 증거로 고등 교육을 목표로 한 학교와 대학을 설립함으로 현대의 생각과 혁신으로 많은 유익을 얻기를 바랬습니다.
이처럼 현대 FLDS와 19세기 후기성도의 모습과는 차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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