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한 때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나?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341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놀랄 만한 문구가 발견된다.
“하나님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분이시었습니다. 지금은 승영하시어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참으로 위대한 비밀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늘의 장막을 들추고, 세상 만사의 열쇠를 가지시고 권세로서 세상과 세상의 모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그분이 바로 여러분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1844년 4월, 킹 폴렛 추도사)
교회 4대 회장이었던 로렌조 스노우 장로는 조셉 스미스가 위와 같은 발언을 하기 전인 1840년 6월에
“하나님이 한 때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처럼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처음 이러한 문구를 발견했을 때 처음 받게 되는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이 한 때 필멸의 존재였다면 그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전능한 분이 아니란 것인가?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조금씩 배우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업데이트 되었다는 건가??”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교리를 선포하면서도 조셉 스미스나 그 이후 후계자들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전능성에 제한을 두거나 지위를 떨어뜨리는 발언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몰몬경이나 교리와 성약에서도 하나님이의 권세나 신성에 대해 제한을 둔 적이 없다.
“오 우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얼마나 크냐! 이는 그가 모든 것을 아시며, 그가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음이라.” (니후 9:20, 니후 2:24, 모로나이 7:22)
그분에는 진실로 “모든 권능, 모든 지혜와 모든 명철이 있음이요, 그는 모든 것을 깨달으”신다. (앨마 26:35) 온 세상 모든 사람보다 강하신 그분은 (니전 4:1) 그분 앞에 있는 모든 만물을 이해하신다. (교성 88:41)
조셉 스미스 역시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 일로써 우리는 하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아나니, 그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동일하신, 변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이시니라.” (교성 20:17)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 필멸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그분이 한 때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다거나 그분의 능력이 제한되거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그분의 전능성이나 능력, 신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필멸의 경험이 있었으나 성경에서는 그분을 일러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ldsbae/11852185 참조 )
사실 하나님의 “과거”에 대해 우리가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그 무한한 과거에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과거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고 알 필요도 없으며, 그 어떠한 논리적 추론을 한다 한들 인간의 추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셉 스미스가 말한 “하나님에게도 필멸의 경험이 있었다.”는 그 단언적 표현에 대해 우리가 그 이상을 추측하거나 현재 인간의 모습의 전반적인 모습에 빗대어 하나님을 해석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이 한 때 우리와 같은 분”이었다는 말이 상당히 귀에 거슬리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밝혀주시지도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이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 아버지를 완벽하게 대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분명 인간으로서의 필멸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자.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이사야 9:6)라 불리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있었으며 그러한 일들이 결코 그분의 신성과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던가?? 인간의 생각이 아닌 경전적 사고 방식, 즉 주님의 방식을 염두해 두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상 같은 분이라면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가르침은 사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라면 그분에게 인간의 경험이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에게 인간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인데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개체적인 분이며 목적과 마음, 뜻에 있어서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한 분의 하나님”임을 믿는다.)
한가지 질문을 제기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실 적에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것들을 본 그대로 행했다고 한다면 이상한 일일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하나님)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하나님)를 보여달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
요한복음 5:19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몇몇 사람들은 이 구절들과 로렌조 스노우 회장의 말을 서로 연결하여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들을 아들도 행했다면 결국 하나님에게도 필멸의 경험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추론을 하기도 한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하게 아버지의 모습을 반영하며 그분이 하신 일들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추측해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올바로 전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정확한 해답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로 ‘알지 못한다’는 표현을 무책임한 회피나 사실 외면으로 몰아붙히는 경우가 있긴 하나 사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사실 그대로의 서술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에게 필멸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우리 인간들을 잘 이해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또 다른 절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순히 그분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 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확실히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어렵거나 어리석은 질문들이 많이 제기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 태어났느냐 어떤 행성에서 어떻게 보냈느냐...뭐 이러한 어리석은 질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일일이 추론하여 답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는 그 핵심인 복음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며 시급하다. 즉, 우리가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원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모든 인간들은 신성한 존재들이며 인간에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신성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ldsbae/12411980 참조)
다시금 말하자면 하나님에게 필멸의 경험이 있다는 선언은 그분의 절대성을 폄하하거나 하나님의 과거를 알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에게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는 신성한 잠재력이 있음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부분적으로) 허락된 지식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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