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현대의 선지자

현대 선지자들의 필요성

모로나이 2008. 9. 13. 20:28




하나님을 믿는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선지자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기도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고 성경을 통해 직접 말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선지자라는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입니다. 또한 현대의 선지자라고 하면 왠지 스스로를 선지자로 자처하고 신격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기도로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성경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분명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과 지시를 더 갖고 계시며 그것은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주어지며 결국은 신앙의 연합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그분께서 보내신 권능있는 종의 말씀 역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0에서 예수께서 12사도들에게 하신 다음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 13:20)

 

또한 이러한 가르침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요한 15:2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태 10:40-41)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보내신 선지자들이 거부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죽임을 당할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마태 23:34)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지자들이 박해받고 죽임을 당할 것임을 예언하면서 또한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에 대해서도 경고하셨습니다. (마태 7:15)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참된 선지자가 있어서 거짓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을 때에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가 의미를 갖게 되지요. 더 이상 선지자가 없다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아마 선지자라 자처하는 모든 이들을 주의하라고 경고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 7:15-20)

 

여기서 말하는 열매에는 선한 행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 그리스도와 같은 속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열매에 대해서 비전 성경 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산물로서의 열매: 예수님께서는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 6:43)고 말씀하시면서 선하고 악한 행동들은 사람의 기본적인 성품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눅 6:43-45; 마 12:33-37). 도덕적으로 거룩하지 못한 성격과 생활, 건전하지 못한 가르침 등은 바로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열매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그의 가지로서 열매를 맺게 되는데(호 14:8 참고), 이는 말씀과 행실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이며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한다(요 15:1-16; 롬 1:13). 사도 바울은 열매 맺지 않는 어두움의 행실과 빛으로 맺는 열매(엡 5:9-11), 육체의 열매와 성결에 이르는 열매(롬 6:21, 22), 사망을 위하여 맺는 열매와 하나님을 위하여 맺는 열매(롬 7:4-5)를 대조하면서, 은사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특정한 개인에게 나누어주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빌 1:8-11).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막 4:20; 골 1:10)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받게 된다(엡 5:11; 딛 3:14).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를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열거하고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출처: 비전성경사전- 열매>

 

 

잘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단이고 거짓 그리스도인지에 대한 구분은 교리적 차이가 아니라 <!--[endif]--> 그들이 맺는 영적인 은사, 선한 행위 등에 따른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지요.


이처럼 주님께서는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조건들을 명확하게 소개하시면서 참된 선지자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자칭 “정통” 개신교인들은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없다는 것이야 말로 초기의 순수한 복음에서 변질되어 배도가 일어났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와 선지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직분들이 교회의 핵심이며 기본이 된다는 것은 성경에서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19,20)

 

 

이뿐만 아니라 고전 12:28,29와 엡 3:1-6에서는 초대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들이 있고 그들이 교회에게 성스러운 진리를 가르쳤음을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사도 바울은 교회 내에서 사도와 선지자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1-14)

 

주님의 성임받은 종으로부터 오는 계시와 안내가 없다면 아무리 경건한 신자들의 모임이라 하여도 교리적 혼란으로 인해 흔들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배도로 인한 선지자와 사도들의 손실은 결국 교리적 부패와 혼란, 왜곡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교리들은 점차로 3,4세기의 철학적 개념으로 둔갑하여 삼위일체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 사역하시며 결코 그 방법을 변경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서도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방법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현대 선지자를 인정하는 후기성도들의 믿음을 기독교인이 아닌 증거로 보는 일까지 있습니다. 신약 시대 이후의 기독교인들은 선지자가 필요없다는 논리지요. 그러나 우리는 초기 성도들이 “그리스도인(기독교인)”으로 불린 이후에도 선지자로부터 권고를 받았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사도 11:25-30)

 

윗 구절을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선지자들이 가뭄을 예언했고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여 유대에 거주하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안디옥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예언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사도행전 13:1)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근거로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살아계신 선지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단의 증거가 아니라 참된 기독교의 핵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선지자가 있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직접 볼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선지자를 부정하고 비판의 근거로 삼는 경우는 인간의 논리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엡 4:11-14 참조)


조금만 현대 개신교회를 보면 이러한 현상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선지자를 부정하고 오로지 주어진 성경만을 근거로 해석하기 때문에 많은 종파와 단체로 난립하여 서로 이단으로 정죄하기에 바쁘고 도덕적으로도 명확한 기준이 성립되어 있지 않고 있지 않던가요?? 그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주는 안내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이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조셉 스미스를 시작으로 현대의 선지자들이 회복되었으며 몰몬경은 그에 대한 명확하고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