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누가 6:16)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를 폄하하기 위하여 몇몇 이들은 윗 구절을 근거 요한 이후에는 선지자가 필요 없기에 살아있는 선지자에 대한 교리는 비성서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언급된 ‘요한’은 침례요한이다. (마태 11:12,13) 정말 살아있는 선지자들이 요한으로 인하여 끝났다고 하면 그가 죽은 이후로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사도 11:27, 21:10,11을 보면 그 이후에도 선지자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하면 누가복음 6:16절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나? 그 중에 먼저 “율법과 선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말한다.
1. 율법은 책이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
2. 선지자는 책이다.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행 7:42)
3. 회당에서는 율법과 선지자를 읽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13:15)
4. 선지자와 율법에 기록된 것들이 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행 24:14)
‘율법과 선지자’는 유대인의 3가지 경전 중 두 가지에 해당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며 유대인들은 “타나크”(히브리 성경)라고 부른다. 히브리 성경은 율법, 선지자, 그리고 그리스도 시대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 번째 것을 “시편”이라고 부른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4,45)
우리는 ‘율법과 선지자’가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다른 신약 성경의 구절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 것을 읽어보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 5:17)
이를 다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을 폐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외 다른 예를 보고 싶으면 마태 22:36-40, 눅 16:19-31, 사도 28:23 참조)
그렇다고 하면 후기성도들은 “율법과 선지자”와 “사도와 선지자”를 구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가 않은 것이다. 첫 번째 것은 구약 성경을 의미하며 두 번째 것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전 12:28, 엡 4:11 참조)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더 제기될 수 있다. 율법과 선지자는 왜 요한 때까지 해당하는 것인가?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마태 11:12,13)
이 구절에 의하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까지 해당한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이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예수께서 등장하셨을 때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 (마태 5:17, 눅 24:27, 44,45)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도 26:22,23)
그러므로 누가복음 16:16의 구절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 성경’의 성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요한 사망 이후 교회에 주어질 직분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계시를 받을 하나님의 종인 사도와 선지자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 때까지이지 그리스도 교회의 “사도와 선지자”까지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이후의 선지자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 1:1,2)
몇몇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으나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이후에는 참된 선지자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한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고 했는데 그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실제 우리에게 선지자를 보내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태 23:34, 눅 11:49)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하는데, 실제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요한 13:20) 마지막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심판을 받을 것인데 진실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보내신 자들을 받아들이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요한 12:48,49)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예수를 통해 말씀하신다면 그 예수가 하신 말씀대로 그분이 보내신 선지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닐까???
그런데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거나 그리스도 이후 참된 선지자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야 할 근거가 어디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구절들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우리에게 선지자가 더 필요 없거나, 그리스도 이후에는 참된 선지자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류의 해석은 말 그대로 개인의 해석이며 성경을 근거로 이런 해석 자체가 거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흔히 제기되는 이 두가지 주장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자.
해석 1. 우리는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수년 뒤에 그의 서신 중 하나에서 이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과 비교하면서 교회의 각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핵심으로 설명된다. 특히 바울이 신약 시대 교회와 관련하여 선지자들에 대해 어떻게 규정했는지 다음 성구를 통해 살펴보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18-22, 27-3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의 한 성도가 선지자에게 일러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지체의 각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 내의 모든 직분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지고 서로를 도와주면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지 않겠는가 말이다. (엡 4:16) 자꾸만 눈이 손보고 너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니 이 얼마나 잘못된 방식인가.
또한 이러한 주장을 확실히 하기 위해 바울은 교회 내 선지자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1-14)
잘 보이시는가? 성도를 완전하기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철학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사도와 선지자라는 직분이 필요하다.
교회 내의 이런 직분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과연 우리는 이 모든 목적을 이루었는가? 정말 온전한 사람을 이루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렀는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하면 다른 직분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사도와 선지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이러한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교회 내에 참된 선지자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행 13:1, 15:32, 고전 12:28)
신약 시대의 이 선지자들은 단순히 가르치고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시를 받았으며 예언을 하기도 하였다. (엡 3:1-6, 행 11:27-30, 21:10,11) 사실 사도와 선지자들은 교회의 기초를 이루었으며 그리스도는 그 기초의 모퉁이 돌이었다. (엡 2:19-21) 그리고 사도아 선지자들이 예수에 대한 간증을 지낸 이후로 이 “예언의 영”은 교회 리더십에 있어서 핵심이 되었다. (계시록 19:10) 그렇다고 하면 그리스도 이후에 추가적인 계시나 예언할 수 있는 은사를 받았던 사도들 역시 선지자라고 봐야 한다.
주님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후일에 참된 선지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날에 구약 시대식의 선지자들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그분의 선지자를 두고 계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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