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께서 댓글을 남기셨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멀리 있다가 다시금 돌아왔는데 교회에는 너무나 잘난 사람들이 많고, 좋은 직장과 대학을 강조하는 듯한 분위기에 자신이 속해 있을 곳이 못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다는 그분의 댓글을 보면서 난 참 착잡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싶다. 나도 뭐 최근까지 교회 모임을 통해 그러한 느낌을 받아 왔으니까... 예를 들어 리아호나 연차대회를 보면 새롭게 부름 받은 총관리 역원의 프로필이 실리는데 자세히 보면 사회적으로 대성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뿐인가? 선교부 회장님이나 스테이크장님만 봐도 그분들의 사회적 직위는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에 충분하다. 혹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그분들은 복음 안에서 충실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축복을 받은 것이다...재정적인 여유가 있어야 교회 봉사에 우선할 수 있지 않겠느냐...뭐 이런 식이다.
뭐 굳이 틀리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전문적인 성직자가 없이 운영되는 교회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재정적인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교회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봉사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 차라리 여유있는 사람들이 대신 많은 봉사를 하면 좋긴 하다.
또한 교회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나와 성공한 회원들의 이야기는 “교회에 충실하여 많은 축복을 받은 자”의 모범으로 대다수의 회원들이 부러운 듯, 혹은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롤 모델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교회를 대외적으로 소개하는 공보자료들을 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회원들”(예를 들어 메리엇 호텔의 회장이나 미대통령 후보로 올라간 롬니, 한국에서는 로버트 할리)이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인 양 광고되는 경우도 있다.
교회 역시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전세계의 교회가 하나로 돌아가야 되니까 그러한 세상적인 방식이 교회 운영 방식에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을, 가슴 아프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회의 주된 사명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소외당하고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지펴야 하는 것임을 유념해 볼 적에 위에서 언급한 세상적인 방법은 “물질적 축복을 받지 못한” 상당수의 회원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들이 모여 있는 교회이고 그것을 운영하는 과정 중에 위에서 언급한 세상적인 방법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치지만, 그것은 교회의주된 역할도 아니며, 하나님이 품고 계신 원래의 뜻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충실한 자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경전을 보면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그분의 종들을 축복하신 경우가 나오긴 한다. 예를 들어 욥이나 요셉, 솔로몬 왕처럼 하나님께서는 상당수의 금은으로 그들을 축복하신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으로, 그나마 의로울 땐 즉시 상을, 의롭지 않을 때 즉시 벌을 내리시던 구약 시대에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대다수의 선지자들, 사도들은 하나같이 세상적으로 무시당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상당수가 배우지 못한 어부들이었으며,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상당수 많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천막 만드는 일을 그들의 직업으로 삼은 자들이었다. (사도 18:3) 예수께서도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단 돈 두 닢을 낸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고 (누가21:2) 약간 독한 소리로 “부자는 천국에 가기 힘들다”(마태 19:23)라고까지 말씀하실 정도였다. 물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가난한 자들을 쓰셨다 하여 게으르고 책임감을 모르는 자들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를 게을리 하는 자들은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했다.(디모데전서 5:8)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이들이 자초할 수는 있으나 주변 환경의 불가피한 상황, 그리고 의로운 우선 순위 선택에 따라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들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경전에서는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축복을 준다고 단정한 구절이 하나도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기서를 잘못 적용하여 십일조를 내면 물질적으로 풍족해 질 것이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경전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축복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 혹은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누림과 같은 영적인 것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자신의 물질적 번영을 하나님께 받은 축복인양 간증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며, 그러한 축복을 받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한 물질적 번영을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함을 표현할 것이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2.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사용해서 그분의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
“곧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나아와 힘 있고 강한 것들을 부수리니,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이웃을 권고하지 않게 하며, 육신의 팔을 의지하지 않게 하려 함이요” (교성 1:19)
“나의 복음의 충만함이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에 의하여 세상 끝까지 그리고 왕들과 통치자들 앞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니라.”(교성 1:23)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6-29)
경전을 잘 읽어보길 바란다. 과연 하나님은 교회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세상적으로 성공한 자들을 쓰신다 하셨던가??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회복시기에도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을 통해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다 하셨다. 고린도전서에 봐도 부름과 관련해서 지혜로운 자나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하셨고 오히려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셨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렇기에 복음이 세상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셨다면 10대의 가난한 조셉 스미스를 사용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다. 세상적으로 뛰어난 자들을 사용해서 복음을 전하게 했다면, 아마 당시처럼 그토록 심한 박해는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세상적으로 보잘것 없으나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한 소년을 통해 그분의 복음을 회복케 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이던가.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고 그분의 지혜이다. 교회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서 세상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을 쓴다??...글세...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즉 세상적인 성공을 힘입어 노변의 밤을 비롯한 성찬식 주연사로 나가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교회가 사라지고, 세상적으로는 보잘것 없지만 진정으로 복음을 사랑하고 아끼며 확신하는 연사들의 순수한 간증으로 노변의 밤이 진행될 그 날을 말이다.
3. 세상적인 자랑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교회 내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의 자녀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 수석으로 졸업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다....ㅡㅡ;;;; 말하기 좋아하는 회원들은 자주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회원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뭐 그러한 결과들을 하나님의 축복과 연관하여 이해한다고 해서 이를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으로 개인의 간증이 강화된다면야 오히려 좋은 일이니까. 그러한 그러한 이야기들은 그냥 홀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것을 가지고 자랑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1서 2:15,16)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잘 보길 바란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고린도후서 4:4에서는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라 지칭한다.) 게다가 그 세상과 벗이 되면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무서운 말씀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찾고, 현세상에서 누리는 것들을 자랑하는 것은, 비단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 운운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자랑을 “허탄한 자랑”으로 전부 악하다고 했다.(야고보 4:16)
하지만 교회 내에서 이러한 악한 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경전에서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성도들을 축복한다고 말한 바가 없다. 게다가 그것을 자랑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해 주신 것처럼 성도들 앞에서 “간증”한다면, 이는 오히려 많은 이들을 실족케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앞서도 말한 바처럼 그러한 세상적인 업적이 감사하다면 그냥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 족하다.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라면 그냥 바울처럼 자신의 약함을 자랑해라. (고후 11:30) 나같이 연약한 자에게 복음을 주심을 자랑하고, 그러한 나를 들어 쓰심에 자랑하면 된다.
또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드는 것은 교회를 홍보함에 있어서 꼭 저명인사 회원들을 대거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뭐 믿지 않고 교회에 대해 오해하는 자들에게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는 있으나 교회의 선교사업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백해 무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명 인사가 교회 회원이라고 뭐 어쩌라는 건가? 그들이 유명해서 교회가 참되다는 건가?? 웃기는 일이다. 다른 교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명인사들이 많다. 그럼 저명인사의 숫자를 가지고 참된 교회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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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설명한 바는, 안타깝고 마음이 쓰린 일이지만 실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경전에 비추어 봤을 때 난 그러한 현상이 주님의 뜻과 멀다고 확신한다.
그럼 어떻게 하란 소리인가?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많고, 그것도 상당수가 지도자의 위치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나같이 보잘것 없고 나약한 이들은 이 교회에서 남아 있을 수가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자주 들은 말이긴 하겠지만 우리는 교회의 시스템이나 사람들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바로 우리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행함에 있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적으로 잘나지 못해도, 주님에게서 한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더 놀라운 것들은 교회의 운영체계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돌아간다 한들, 생각 외로 많은 수의 회원들은 그러한 세상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회원은 세상적으로 명예를 누리는 그러한 분들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 모임에서 그러한 직함을 내밀어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시작한다. (물론 이는 나만의 생각이다.) 처한 환경이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충실하게 복음대로 생활하는 회원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잊지 않고 복음이 주는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분들을 정말...정말 존경하고 사랑한다. 난 그분들을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하고, 이 교회 안에서 희망이 있음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는 것은, 내게 또 다른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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