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안티 기독교인과 대화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린 글모음(1)

모로나이 2010. 10. 26. 02:09

지금 올리는 글들은 2004년 어떤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린 글들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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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예수라는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온라인 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그 중에서 디오니소스 신화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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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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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를 비교하여 공통점들을 추론한 뒤에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언급합니다. 그럼 과연 그럴까요? 두가지 신화를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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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폴로니안Apollonian'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시안Dionysian,(질탕하게 마시고 떠드는)'이라는 말은 니체가 새롭게 정의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니체는, 그리스의 술의 신이며 신비한 예언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감정과 직관, 관능과 무제한의 예술적 표현과 결부시켰다. 그러나 이 형용사(소문자 'd'로 시작되는Dionysian)는 오늘날 예술에 대하여 적용되기보다는, 아폴로적인 합리성의 반대인 대취나 난교 파티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위에 더욱 빈번히 쓰여지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항상 문화적인 엘리트보다는 대중을 위한 신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여성들은 고대 세계에서는 제 2급의 시민이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여성들은(디오니소스를 추총하던 여자들은 그리스 어의 '미친'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메나드스manads'라고 불리우고 있었다)신에 의해서 흥분이 되었을 때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 다음에는 산짐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들이 가장 얌전한 때의 행동이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이러한 축제와 제전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Dionusia'혹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쿠스 축제Bacchanalia'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신은 고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딸라 공식적인 디오니소스 - 비교적 뒤늦게 판테온에 추가되었다 - 는 실제로 여러 고장의 다양한 신들의 혼합물이 되었다. 그 신들 대부분은 식물과 출산의 신이었고, 디오니소스에 후에 특히 나무 열매나 포도나무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장차 디오니소스는 수맣은 그리스의 식민지에 포도나무를 전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설립하게 한 공로로 숭배를 받게 된다. 민중의 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는 위압적인 동료 아폴로보다는 덜 강력하고 유명도가 좀 떨어지지만, 그의 전설은 훨씬 더 흥미 진진하다. 그것은 기묘한 출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며 그의 나머지 인생과 같이 시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신화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제우스는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요정인 세멜레Semele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른 때보다는 당당한 태도로 그녀를 유혹했다. 속임수를 쓰지 않고 그냥 그녀 앞에 나타나서 자신이 제우스임을 밝혔던 것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당연히 남편의 바람기를 알아차리고 매우 잔인한 복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유모로 변장을 하고 세멜레앞에 나타나서, 그녀의 연인이 진짜 제우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세멜레가 머뭇거리자 헤라는 그녀에게, 제우스더러 아내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신성한 광채에 싸인 채 나타나도록 요구하라고 충동질했다.

바보 같은 요정은 그 계획에 동의를 하고 제우스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제우스는 서약을 후회했으나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가 천둥과 번개를 수반하고 영관의 광채 속에 휩싸여 등장하자, 세멜레는 그 강한 불길을 견디지 못해 새카맣게 타 버렸다. 제우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녀의 아들 -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가진 -을 출산할 때까지 자신의 넙적다리에 꿰매 넣음으로써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탄생이 기구한 것처럼 디오니소스의 인생도 결코 순탄치가 못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리스의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않은면 안 되었다. 보통은 포도주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만하면 되었지만, 이따금 디오니소스는 따로 기적을 실현하거나 몇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 유리피데스의 《바쿠스》에 나오는 것처럼 - 테베의 왕이며 바쿠스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한 펜테우스 Pentheus와의 싸움일 것이다. 펜테우스는 자기 친척의 새로운 종교가 불러 일으키는 기괴한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않았으며, 디오니소스가 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펜테우스가 바쿠스를 살해하려고 시도하자 디오니소스는, 여자로 가장을 하고 바쿠스 축제에 잠입해 들어가 염탐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왕의 머리 속에 넣어 줌으로써,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펜테우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메나드스, 즉 신에 의해서 눈이 먼 여성들은 그를 멧돼지라 생각하고, 펜테우스의 친어머니가 앞장서서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러한 광적인 디오니소스 축제로부터 우리들은 '바카날(술취해 떠드는)'과 '바카날리아(바쿠스 축제)'와 같은 많은 표현을 만들었는데, 현재 그것은 정신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의한 영감을 의미하고 있다. 16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바카날'은 '술에 만취한 난교 파티'같은 것에 적용되었다 - 메나드스들이 떠들고 노는 데 술 같은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조차도 《한 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속에서, '술취한 바카날들의 소동'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한편 그와 동시에대의 선배격인 존 스토우John Stow는 '수치심도 없이 술에 만취한 바쿠스 축제의 여인들'이라고 조소하고 있다. 마치 육체는 술 없이는 조금도 즐길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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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 신화도 한 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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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제신의 싸움을 다룬 '오시리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플루타르코스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 몇몇을 그리스의 신들로 바꿔서 쓰고 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당초에는 1년이 360일이었으나, 그것으로는 1년을 다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 이집트인들은 여기에 5일을 더 보탰다. 이집트인들은 그 5일을 축제일로 정하여 후세에 와서도 그 5일 동안을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보냈다. 그런데 그 5일의 첫날에 처음으로 태어난 신이 오시리스였다. 둘째날에는 하로에리스라는 신이 태어났으나, 이 신은 '대 호루스, 또는 노 호루스'라고 하여 나중에 등장하는 호루스(오시리스의 아들)와 구별했다. 셋째날에는 오시리스 신화의 제 2주인공인 세트가 태어났는데, 그리스인들은 그 신을 뱀의 모습을 한 티폰으로 여겼다. 넷째날에는 여신 이시스가 태어났고, 다섯째날에는 네프티스가 태어났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지배자가되어 이집트인에게 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법과 신들을 경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여동생인 이시스와 결혼하여 아들 호루스가 태어났다. 이렇게 오빠와 여동생이 결혼하는 풍습은 고대 이집트의 왕가에서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아내 이시스도 여로 모로 남편을 도와 이집트에는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되었다.
그런데 동생 세트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형 오시리스를 처치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많은 동료를 불러 모아 은밀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당시 이집트인은 죽은 후에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훌륭한 관을 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한 세트는 형 오시리스의 체격을 잘 재어 그 크기에 맞는 훌륭한 관을 만들어 궁전으로 가져갔다. 세트의 동료나 부하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이 훌륭한 관을 보고 저마다 칭찬을 했다. 그러자 세트가 말했다. '이관이 몸에 꼭 맞는 사람에게 이것을 주겠다.' 그래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관 속에 들어가 누워보았으나 모두 크기가 맞지 않았다. 그 때 오시리스가 나타나서 말했다. '어디 내가 해보자.' 그리하여 오시리스가 그 관속에 들어가 눕자, 크기가 꼭 맞았다. 그러자 세트의 동료들은 무거운 관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을 했다. 그들은 그 관을 나일강으로 가져가 강물에 던져 버렸다. 관은 나일강 하구에서 지중해로 흘러들고, 다시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 사건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곧 널리 퍼졌다. 백성들을 잘 다스린 오시리스의 죽음과 사악한 세트의 지배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머리칼의 일부를 잘라서 슬픔을 표시하고 곧 상복을 입었다. 그녀는 남편 오시리스가 갇힌 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밖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다. 그때 그 관이 나일강에 던져진 것을 목격한 아이들이 이시스에게 관이 바다쪽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일러주었다.

이시스는 관을 찾아 레바논의 뷔블로스까지 가서, 오시리스가 갇힌 관이 버드나무에 에워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버드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그 줄기로 관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뷔블로스의 왕은 궁전을 짓는데 쓰일 목재를 찾다가 이 큰 버드나무를 발견하고 곧 베게하여 궁전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이시스는 그 사실을 신들의 가르침에 의해 알고서, 이 궁전을 찾아왔다. 그녀는 몸에서 향취를 뿜었으므로 시녀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는데, 이어서 왕비와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왕비는 이시스를 어린 왕자의 유모로 삼았다. 이시스는 낮에는 어린 왕자를 돌보고 밤이 되면 왕자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 불에 굽고, 자기는 제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런데 왕자를 불에 굽는 것을 우연히 본 왕비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왕자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이 될 수 없었다. 이시스는 왕비에게 자기는 이집트의 여신이며, 남편 오시리스의 관이 궁전 기둥에 에워싸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그 기둥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왕비는 그 기둥이 궁전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여신 이시스는 쉽사리 기둥의 일부를 떼어서 관을 꺼냈다. 그리고 버드나무의 기둥은 왕과 왕비에게 되돌려 주었으므로, 뷔블로스 사람들은 지금도 이시스 신전에 보관되어 있는 그 나무를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여신 이시스는 애통한 마음으로 그 관을 배에 싣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가 있는 부토에 가서, 남편 오시리스가 들어있는 관을 그 근처의 길가에 숨겨 놓았다. 그런데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가 이것을 알고-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관을 열어서 형 오시리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여기저기에 묻어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죽은 자의 신으로서의 오시리스를 숭배하기 위해, 곳곳에서 그 시체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신 이시스는 또다시 슬픔에 잠겨, 갈대로 만든 조각배를 타고 늪지대를 돌아 다니면서 토막난 남편의 시체를 찾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하나만 빼고 모두 찾아냈다고 하며 토막난 시체를 찾을 때마다 장례를 치렀으므로,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의 무덤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에 대한 숭배가 성행된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시스가 찾아내지 못한 시신 가운데 일부는 나일강에서 물고기들이 먹어 버렸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집트인은 그 후 나일강의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세트에게 살해당한 오시리스의 혼령이 그 후 오시리스의 모습을 하고 아들 호루스에게 나타나 이렇게 물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호루스가 오시리스의 혼령에게 대답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악한 짓을 한 자에게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시리스의 혼령은 호루스의 몸을 단련시켜 전쟁준비를 시켰다. 오시리스는 호루스에게 물었다. '전쟁에서 사자와 말은 어느쪽이 더 쓸모가 있느냐?' 그러자 호루스가 대답했다. '말입니다.' 오시리스가 호루스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러냐?' 호루스가 대답했다. '말은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적이 도망치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시리스는 호루스의 대답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으며 세트와 싸울 준비가 된 것을 깨달았다. 호루스의 주위에는 많은 동료들이 모여 들었다. 세트의 아내 네프티스도 호루스가 옳다고 생각하여 세트를 저 버리고 호루스 편에 가담했다. 세트는 뱀을 시켜 그녀를 뒤쫓게 했으나 호루스의 부하들은 그 뱀을 잡아 칼로 토막내 버렸다.

호루스는 세트를 찾아 도전했다. 싸움은 며칠을 두고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의 혼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세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혔으므로 세트는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호루스는 세트를 사슬에 묶어 어머니 이시스에게 끌고갔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이시스는 남편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슬을 풀어 세트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호루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머니가 머리에 얹고 있는 신의 표지를 없애 버렸으나, 나중에 토트신이 그녀에게 암소의 모습을 한 모자를 씌워주었다고 한다.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은 그 후에도 두 차례나 있었는데, 세트는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세트는 신들에게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신들에 의해 정통적인 아들로 인정받아 오시리스의 정당한 후계자가 되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혼령에 의해 임신하여 하르포클라테스라는 소년신을 낳았는데 그 신은 몸이 너무 약해 제대로 자라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손가락을 빠는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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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시기 바랍니다...기독교의 핵심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아주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가 고대의 신화를 표절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과도한 단순화(oversimplification)의 오류를 전형적으로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디오니소스의 탄생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우스가 세멜레와 연애를 하고 나서 낳은 아들이 이 디오니소스라는 말입니다. 제우스가 신이니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신의 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단순히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 하여 예수의 탄생을 만들어낸 원본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세멜레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디오니소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볼까요? 하나님이 마리아와 사랑에 빠져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었고 예수가 태어난 것입니까?? 마리아는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잉태된 것 뿐입니다. 이렇게 차이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데 단순히 신의 아들이라 하여 예수와 공통적이라 하는 것은 정말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디오니소스의 탄생은 제우스를 본 세멜레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는데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그녀 뱃속에 있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궁전 기둥에 덩쿨이 자라게 하였고 그것을 본 제우스가 그 태아를 꺼내서 자신의 넓적 다리에 넣습니다. 산달이 되어서야 아이는 아버지의 넓적 다리를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탄생에 대한 기록에 이렇게 복잡한 내용이라도 있습니까?? 신화라고 하는 것은 극적인 면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예수 탄생에 관한 기록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닌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지요...

 

2. 디오니소스가 만든 포도주

제우스의 아내로 알려진 헤라는 디오니소스를 미치게 만들어 이집트나 시리아 지방을 유리하지요. 그 때 제우스하고 헤라의 어머니 디오니소스가 그가 다시금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면서 특별한 능력을 줍니다. 그 능력을 가진 그는 포도주를 재배하거나 포도주를 양조하는 법을 가르치고, 표범을 타고 다니면서 많은 요정들을 뒤따르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디오니소스와 예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 찾아낸 것이 고작 이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요. 디오니소스는 포도주를 즐겼으며 제자들이 술에 취하게 한다음 광기를 부리도록 했지요. 그런데 예수가 그랬습니까? 예수는 포도를 재배하거나 포도주를 양조하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3. 부활 사건

 

디오니소스 신화에는 부활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오시리스 신화에서 그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예수와 공통점이라 한다면 단순하게 부활했다는 것 뿐입니다. 오시리스는 죽은 뒤에 14조각으로 절단되었지요. 또한 그의 아내인 이시스가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찾아가 생명의 의식을 행하고 그 의식 이후에 영이 다시 들어가 살게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가 언제 14조각으로 절단되었고 그의 아내가 의식을 통해 부활했습니까? 게다가 오시리스가 다시 세상에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의 재림과도 별 관계가 없으며 단순히 세트(오시리스의 동생)로 인한 악한 상황을 끝내는 차원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읽어 보아도 위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밀접한 공통점은 없었습니다. 고작 두 신화에서 뽑아낸 것, 신과 인간 사이의 아들, 포도주, 부활 사건 등이 예수 신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고 표절이라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이 아닌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도레미'라 흥얼거렸는데 베토벤 음악 중에 '도레미'가 있다고 하여 '베토벤은 그 어린 아이의 음조를 표절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월등하게 많고 공통점이라 하는 것도 유사한게 거의 없는데 이것을 근거로 예수 신화를 주장하다니...정말 할 말을 잊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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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금이라도 비슷하면 그것은 표절이 된다고 보는 것은 정당한 주장일까요? 그러면 이 세상에 표절 아닌 순수 창작물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아니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하여 그 어느 기록과 비교하여 유사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예를 들어보시는 것을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개인 일기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과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과거 어느 순간에는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실제 경험하여 기록한 일기도 누군가가 기록한 글을 표절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성경 표절설을 다루는 비판 글들의 대부분이 이런 논거로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그것을 표절이라 합니다. 디오니소스와 오시리스의 신화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사한 점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단편적인 유사점만을 근거로 하여 표절설을 만들어 놓고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이론을 만들어 내놓고 근거없는 단정을 내리는 것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방법이라 보십니까?? 어느 문헌 어느 구절에 예수 신화가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신화를 표절하였으며 그것을 로마 교회가 은폐하기 위해 안간임을 썼다고 나와 있습니까?? 성경을 뒷받침하는 세속적인 문헌이 없다고 그렇게 비판을 하면서 정작 그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는 일방적인 단언이나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해석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요.

 

우스개 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바보와 천재는 같다. 왜냐하면 바보가 아는 것은 천재도 알고, 천재가 모르는 것은 바보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는 것은 천재도 알고, 천재가 모르는 것은 바보도 모르기 때문에 천재와 바보는 같다는 식의 말장난은 몇가지 유사점을 근거로 하여 같은 것이라 단정하는 식의 논거와 다를 것이 하나 없습니다.

 

또한 정중한 글에 대해서만 답변을 하겠다는 말은 보다 건전하고 생산성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함이지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닙니다. 여기 올려져 있는 감정적인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토론의 진행은 개인의 지나친 감정으로 인하여 흐려지거나 그 설득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단순하게 기독교를 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보이지만) 무엇이 그러한지 냉철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신다면 서로의 감정을 내려두고서 토론을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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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비판하는 분들의 또다른 전형적 비판 방식은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이 저지르는 온갖 비리들을 기사화한 것들 올리면서 "봐라...역시 개독이다..."라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역시 전형적인 과잉 일반화의 오류(Reductionism)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오류의 전형적인 예를 들면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이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훗날 귀국해서 말하기를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매치기의 천국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일본 극우단체와 같은 곳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 행위나 추태들을 집대성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놓고 "역시 한국이다...한국은 구조적으로 이런 범죄와 추태들이 양산되게 되어 있다."라고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안티 사이들의 경우 이런 과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장로라는 사람이, 목사라는 사람이 무슨 범죄를 저질러 그것이 언론화되면 그것을 퍼다 나르면서 "봐라...역시 개독이다.."라고하거나 "개독들의 모습이 이러하다."면서 일반화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몇몇 한국인의 추태를 들어 "역시 한국이다...한국은 범죄의 천국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그러한 기사를 올려서 개독을 비판함으로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가슴 속에 맺혀 있는 것이 있다면 가끔씩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내지를 때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역시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에 의해 피해를 본 분들이거나 돈만 요구하고 맹신만을 강조하는 엉터리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기독이라고 하면 울화가 치밀겠지요. 그런 와중에 기독교를 욕하고 비판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나 울화를 약간이나마 일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구 말이지요. 그럼 점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그렇다고 하여 한 종교를 비판함에 있어서 논리가 아닌 오류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 게시판을 보는 기독인들의 결속력만을 다질 뿐입니다. 정말 개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분들을 올바른 사고관으로 돌이키고 싶다면 올리는 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무턱데고 욕설이나 반말로 일관하진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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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에 관한 교리는 비단 고대 이집트의 종교에서 기원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발생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나 자연신교의 경우 영혼 불멸이라는 동일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동양 종교로 알려진 힌두교나 불교는 범신론적 윤회사상을 기본으로 한 영혼 불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 역시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조로아스터의 경우에 한해서만 윤회가 아닌 몸과 영혼의 이원론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님이 언급하시는 것처럼 이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은 자가 플라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육체를 하나의 속박으로 생각했으며 영혼만이 절대선을 누릴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상은 과연 그러할까요? 기독교에서의 가장 핵심이 되는 교리는 부활 사상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혼만 구원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영과 육의 완전한 결합을 의미하지요. 만약 영지주의나 플라톤 철학에 근거를 두었다 한다면 육은 천한 것으로 영만이 하늘에 올라가는 불멸성을 받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불멸의 영이 다시금 육체와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형태입니다. 영혼 불멸이라는 사상은 단순히 오르페우스교에서만 근거된 것이 아니라 별로 교류가 없었던 동양에서도 범신론적 윤회사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믿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인간을 분류할 때 종교적 동물(Homo Religious)이라 하는 것처럼 영혼 불멸에 대한 사상 역시 인간의 기본적 욕구나 본능 중에 포함이 됩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유사(類似)에 의한 동일 논증입니다.

이런 논리로 한다면 기독교에서 환생을 주장할 경우 "기독교는 동양의 윤회신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것이며 부활을 주장할 경우 "기독교는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할 것이 뻔합니다. 님이 인용하신 럿셀의 글과 그 중에 인용된 일부 학자들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명확한 자료 제시가 아니라 "~~한 것 같다"라는 추측성 발언을 하거나 하나의 공통점을 근거로 하여 무조건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유사에 의한 동일 논증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약간의 유사성이 어느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거나 표절, 짜집기한 것의 증거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 짜집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100% 자유로울 수 있는 이론이나 학설, 이야기가 있다면 한 번 제시해 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설이나 표절, 짜집기 이론은 오래전부터 신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을 해봤자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나 통하겠지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전체 신학자들과 비교하여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들의 의견이 마치 전 신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설인양 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시리스가 몸이 14조각이 난 것도 문제지만 그 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그의 아내가 죽음의 신에게 부탁하여 주술 의식을 행한 것도 전혀 성경의 기록과 유사하지가 않습니다. 그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 그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부활의 형식도 다르고 방법도 다릅니다. 약간의 공통점도 표절이나 짜집기로 보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님의 글 가운데 "무시하시는 것 같군요"라는 문장이 발견되었고 그와 동일한 문장을 어느 소설가의 책에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님의 글은 그 소설가의 것을 표절했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럿셀의 주장이 마치 기성 사실이나 일반적 신학계의 학풍이라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권위에의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시골쥐가 서울에 올라와서 시궁창만을 전전하다가 내려와서 "서울과 시골은 차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럿셀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 올라왔으면 시골에도 있는 시궁창이 아니라 높은 빌딩과 거리들을 봤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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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독창적인 종교나 사상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 역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기록한 이들이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 하여도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당시의 문화나 사상, 종교의 영향을 100%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양과 염소, 목자의 비유를 들어 진리를 설파하셨다 하면 양을 치는 목자가 많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1세기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포도주가 기본적인 음료수였기에 포도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예는 낯선 세계에서 나올 법한 신선하고 100%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에 사용되던 언어, 문화, 사상, 생활 습관들을 소재로 한 것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기독교가 다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동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가 있으며 생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생겨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동의하신 것처럼 기독교는 단순한 신화의 짜집기나 표절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의 공통점이라 하여 짐승화, 지팡이, 담쟁이덩쿨, 턱수염난 남자를 찾아냈는데 이 역시 당시 시대적인 생활 방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진리를 표현하거나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동물을 비유로 사용합니다. 또한 당시의 남자들은 턱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예수님도 턱수염을 길렀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이런 시대적 상황의 요소들 역시 신화에 등장했다 하여 표절이라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 아닌 것이 없으며 짜집기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환생이나 윤회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세와 영생에 관한 교리는 구약을 기록한 유대인들 사고 방식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 12:7)

이 구절은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에 나온 구절인데 우리의 육신이 땅으로 돌아가고 그 신, 즉 영혼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활에 대한 소망도 가지고 있지요.(이사야 26:19, 에스겔 37:5,6) 그러한 사상은 신약 시대에도 동일하게 담겨 있습니다. 예수를 비롯한 사도 바울은 부활 소망을 명확하게 가르쳤으며 그와 동일하게 영혼 불멸 사상도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사후와 관련된 사상은 이처럼 구약이나 신약에 걸쳐 동일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서 그런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님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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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당시 지역 종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어난 신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신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그리스/로마의 신화 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다고 쳐도 그 신이 죽어서 부활했다는 경우는 그렇게 공통적으로 보이진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고작 해봤자 예수 신화의 원형라고 불리우는 디오니소스/오시리스 경우에 죽었다가 살아는 신이 그려질 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많은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식의 부활을 경험한 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그리스인들이 해마다 지하세계에서 돌아오는 페르세포네를 맞는 의식을 함으로 죽은 자들의 부활을 경험했다고는 하나 이 역시 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 성경에도 여럿 등장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격화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볼까 합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도 종교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기적이나 신격화를 언급하면서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정의를 내리긴 했지만 일반 기적과 성경에 기록된 기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1. 만약에 그 기적이 거짓이었다면 당시 존재하던 증인들에 의해 참과 거짓이 밝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하면 없앨까 고민중에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 세력들을 저지하고자 했다면 여러 증인들을 내세워 예수의 기적이 거짓임을 밝히는 작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전달하고 있는 다른 문헌들에서는 고작 "예수라는 사람이 마법을 행했다"고 기록할 뿐입니다. 반면에 석가모니의 경우는 그가 사망한 뒤에 수세기가 흐른 뒤에 기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2.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기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석가모니는 영원한 신의 존재나 초월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 자체에 초자연적인 기적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수세기가 지난 뒤에 석가모니를 기본으로 한 기적 이야기가 첨가되었습니다. 이슬람의 모하메드 역시 "기적이란 알라 신에게만 허용된다. 나는 단지 선지자이다."라고 말함으로 자신이 기적을 행할 수 없음을 말했지만 현재 많은 무슬림들은 마호메드가 기적을 행했다고 믿습니다.

3. 예수를 신격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님이 언급하신 김일성의 경우는 주제사상과 그들의 당을 위하여 신격화하였습니다. 반대자들을 숙청하고 억압했지요.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압적인 방법과 신격화는 필요했습니다. 예수는 어떠합니까? 그를 믿으면 박해를 받아야 했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왜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았는줄 아십니까? 그저 창으로 찌르거나 사자굴에 던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나무에 사람을 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영원한 저주를 받았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13)다시 말해 예수를 나무에 메달리게 해서 그가 저주를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임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그래서 실상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후 많은 이들이 좌절하여 그들의 생계터러 다시금 돌아갔던 것이지요. 단순히 당시 로마의 압제로부터 힘을 얻기 위한 지도자로서 예수를 신격화했다고도 볼 수가 없습니다. 굳이 지도자가 필요했다면 유대인들 사이에 카리스마가 있는 마카비 형제들을 신격화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아무런 힘도 없고...나무에 메달려 저주를 받았던 볼품없는 예수를 신격화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가 죽은지 15년 정도가 지나서 말입니다. (그 시간이면 예수를 목격한 자들의 대부분 살아있을 때죠.) 그것은 실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많은 기적들과 신격화가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여 모든 기적과 신격화를 믿을 수 없다는 논리. 위조지폐가 많다고 하여 실제 지폐의 존재 여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후반부가 가필되었다는 주장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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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다른 신화들도 비슷하긴 하지만 다 일치

 

하지 않는다. 예수 신화도 마찬가지다. 고로 예수 신화도 고대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거나 짜

 

집기 한 것에 불과하다...이것이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안티분들의 주장입니다. 여러가

 

지 요인들을 분석해서 성경을 표절이라 결론내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 표절을 전제로 하여 공

 

통점들을 인용하는 듯한 인상이 듭니다. 음악이나 문학이나, 일반 문서의 경우 표절을 논하

 

고자 할 때 표절임을 전제하고 나서 증거를 찾는 일들은 거의 없습니다. 음악의 경우 표절을

 

가릴 때에 주요 동기가 비슷하거나 유사한 경우를 근거로 하는데 이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입니다. 문학의 경우도 서술 기법이 유사하거나 그 핵심 내용이나 패턴이 유사한 경우에 '표

 

절'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과거의 신화와 예수의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더욱이 신화의 경우는 조잡할 정도로 분

 

석적으로 묘사를 하는데 성경은 잡다한 설명이 아닌 선포식으로 기록합니다. 그런데도 표절

 

이라고요? 이는 '모든 신화는 동일하다'는 전제를 깔아두고서 신화와 예수 이야기를 비교해

 

서 공통점만 추려낸 뒤에 표절이라 단정하는 논지입니다. 이런 특정한 전제를 깔아두고서 동

 

일 선상에서 풀이를 한다면 이 세상 어느 음악도 표절 아닌 것이 없으며 어떤 문학이나 미술

 

작품도 표절 아닌 것이 없어집니다. 근거가 없는 단순한 추측성 발언이라면 쉽게 주장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가능성 차원에서 제시하거나 모른다고 하는 것이 솔직하고 정직한

 

발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오시리스님....저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봤습니다. 님

 

이 그렇게 인용하는 오르페우스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 흐름상 무

 

엇과 일치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신들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 예수와 비슷한 점이 있

 

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야기들이 황당한 만큼 예수에 관한 이야기도 황당하다는 것인지 묻

 

고 싶네요.. 그리고 성경에는 원문이 없다는 말 맞습니다. 초기 기록한 원본은 분실되었겠구

 

그것을 필사한 사본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원문이 존재했다는 전

 

제를 할 것이고 그 원문을 기록한 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까? 그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 의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후 1100년경

 

의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적 사람입니까? 그 사본의 연대인 기원후 1100

 

년보다 1400년전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저작의 진위여부를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기원 4세기 경의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저술은 현재 남아 있는 사본과 그

 

의 연대가 1300년의 차이가 납니다. 역사의 그 어느 문헌을 보더라도 1세기 전후의 저자의

 

글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일반 안티들의 논리대로 '원본이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2000년 전 이상의 글들은 전부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

 

어 버립니다. 성경을 부정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모든 문서들을 부정하시겠습니

 

까?? 물론 님이 알고 계신 것처럼 사본이라 내려오는 것들도 하나같이 불완전한 것이 많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게 내려오는 사본들을 종합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요. 님께서 지적하신 마가복음의 경우 가장 오래된 것에 16장이 없다고 하셨는데 다른 문헌

 

에서는 그 16장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의 경우 학자들마나 논

 

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 전해져 오고 있는 문헌들을 전부 종합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

 

는 것입니다. 시나이 책자본이나 바티칸 책자본, 시리아어 시나이 책자본에는 16장이 없지만

 

알렉산드리아 책자본, 에브라힘 책자본, 베자 책자본과 같은 사본들이나 라틴어 불가타 역,

 

시리아어 큐레토니아 역본, 시리아어 페시타의 경우는 분명 16장이 현존하여 전해지고 있습

 

니다. 가자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사본에 16장이 없다고 하는데 다른 사본에 16장이 포함되

 

어 있다는 것은 오래된 사본에서 16장이 분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다

 

른 사본들 역시 그것을 옮긴 원문이 있을 터인데 16장이 그대로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님들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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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예수와 정확히 1:1 매치되는 이야기는 당연히 없습니다... / 마찬가지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도 1:1 매치되지 않습니다.. 아도니스, 탐무즈, 아티스도.... 그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11:32:06]

칼리 예수신화는 앞서 이야기된 모든 신화들 보다 휠씬 나중에 생성된 것이고... 앞서 이야기한 신화들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최초의 원형이 뭔지 알 수 없게 다채롭게 변화됩니다... [11:33:29]

오시리스 니파이님 그리스신화 읽어봤어요? 오르페우스나, 아마존 여왕이랑 띵까띵까한 테세우스 몽둥이들고 설치던 헤라클레스나 트로이전쟁때의 프로테실라우스 말이오. 당신도 알겠지만, 성경에 원본은 없는걸 알겠지요? 수많은 마가복음사본중 가장 오래된 것들에서 마지막부분인 16장이 없는 것도 있으며 더 짧은 것도 있죠 [11:35:56]

오시리스 아~ 그러고보니 테세우스랑 헤라클레스 사이에 참 아이러니한 일도 있군요... 히폴리타를 두고~~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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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님의 글이고 파란색은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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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이라는 모티프의 유행
당시에는 시몬마구스, 아폴로니우스 등 많은 교주들이 활동을 했는데, 그들이 하는 이적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처녀나 과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음식의 양도 마음대로 늘리고 병도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물론 죽었다 살아나죠. 예수도 그런 유행의 대열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 시몬마구스의 경우 과거 문헌이나 성경의 기록으로 보면 후대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비록 최초의 영지주의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도 베드로에게 책망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교로 귀의한 경우로 볼 수가 있습니다. 2세기의 신학자이며 순교자인 유스티누스는 시몬이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 재위) 때 로마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그의 놀라운 기적에 매료된 추종자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았다고 전하고 있지요.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에 받은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여 신도들을 모았고 자신을 신으로 여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드로의 경우 그를 신으로 섬기려는 자 앞에서 거절한 기사가 나옵니다.) 이 역시 성경과 다르게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상으로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전설상에 따르면 그는 네로 황제(54~68 재위) 앞에서 사도 베드로에게 도전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신의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려고 로마 광장 꼭대기에서 날려고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부활하였습니까?? 단순한 기적 행위라 하면 비단 그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시몬 마구스는 예수가 돌아가신 뒤에 활동하던 사람인데 그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예수를 꾸몄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리고 음식의 양을 줄이고 병을 고치는 기사들은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도 베푼 기적들입니다.

 

2. 데이비 흄의 회의주의

데이비 흄은 기적이 없다고 정의내린게 아니라 논증한 겁니다.

'기적이란 것은 자연 법칙을 위반한다. 즉, 고정불변의 경험이 이러한 자연 법칙을 확립하듯이, 기적에 대한 반대증거는 이러한 fact의 성질로 볼때, 경험에 의해 가능한 어떤 논증 못지 않게 완벽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기적을 인정하는 순간 과학의 이론들은 모두 부정됩니다. 단지 몇 사람이 기적에 대해 확인 불가능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입증된 자연의 법칙을 뒤집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흄의 논증입니다. 데이비 흄의 논증은 간결하고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죠.


--> 님께서 인정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중에 자연 법칙을 어긋나는 것도 많이 일어 납니다. 대부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은 하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여 밝히지 않는 신비나 미스테리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또한 우리가 자연 법칙이라 말하는 현상들 역시 우리의 사고와 논리로서는 도무지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남녀가 만나 아기가 탄생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자연법칙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정자 하나와 난자가 만나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과학자들은 우주 밖 여러 아춴이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불랙홀, 즉 별의 밀도가 실질적으로 무한대에 달할 때까지 자체 내부로 함몰하는 겨대한 별들의 존재에 대한 이론을 세우지요. 그 근처에는 시간 자체도 정지한다고 합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요??  과학자들은 흄이나 님의 말처럼 어떤 일이 정상적 자연 법칙과 상충된다고 하여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인정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이례적인 조건 하에서 이례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흄은 이론을 세우는 철학자일지는 몰라도 과학적 경험을 하는 과학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기적이 거짓이었다면 증인들에 의해 참거짓이 밝혀질거라고요? 니파이님은 증인이라면 아무나 믿으시나봐요? 증거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느슨하시군요^^ 요즘엔 사기꾼으로 알려져 있는 유리겔라도 초능력이 없다고 입증된 적은 없습니다.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불리는 제임스 랜디가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은, 랜디가 보고 있을 때는 유리겔라가 별로 내키지 않거나 초능력을 부릴 컨디션이 안 되거나 했다는 것이죠.

 

--> 증인이라 하여 무턱데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증언으로 인하여 목숨까지 바친 경우를 역사를 통해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집단 환각이나 집단 기만이라 하여도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그 증언을 유지하고 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하고 전하면서 그것을 피로 인봉한 경우라면 최소한 믿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유리겔라가 아무리 놀라운 일을 행했다 하여도 그것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까지 바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는 기적을 행했다고 씌어있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기록은 없으므로 믿을 만하다는 말씀이신데, 호교론적인 변증에는 아주 관대하시군요. 안티들의 주장에도 그런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이군요..기록에 남겨있지 않다고 하여 무조건 거짓이나 조작으로 몰거나 조금이라도 유사점이 있다면 표절이라 보는 경우를 제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겠습니까??


예수에 대한 역사가의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긴 하나, 그것마저 조작의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죠.

 

--> 과연 그런지 나중에 논해 보도록 하지요...

 

 왜 신격화할 이유가 없죠?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해서? 볼품 없어서? 제가 볼땐 오히려 그런 요소가 대중에게 더 어필했다고 봅니다만? 예수가 곱게 늙어서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하느니, 신이 친히 누추한 인간의 몸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핍박을 당하시고 십자가형까지 당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봐도 후자가 훨씬 더 매력적인데..

 

--> 님이 유대인적 사고관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무에 달렸다는 것 자체는 이미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증거가 되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당시에 메시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나약한 예수보다는 독립 운동가 마카비 형제가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으시면 예수만 기적을 행했다고 믿으시면 그만입니다. 기적이 뭐 대순가요? 기적에 대해 목매는 것은 보수쪽 신학이라고 들었는데, 진보쪽은 아니신 것 같군요. 그런데 아쉬운 점은, 다른 교주들은 가짜였다고 믿으실 만한 이유는 님에게는 없어 보이는군요.

 

-->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믿지 않는 자들도 기적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잠재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힘을 넘어선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요. 또한 사탄이란 존재에게도 능력을 행할 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기적이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했고 패역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했으니 말입니다. 다만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성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요? 그건 신약학의 정설인데.. 정설이라고 해서 100% 사실이냐 하는 반박은 저에게 하지 마시길.. 그보다는 님이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께 여쭤보시는 것이 좋겠군요.

 

--> 정설이요? 그것 역시 학자들 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겁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설명했으니 생략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