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안티 기독교인과 대화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린 글모음(2)

모로나이 2010. 10. 26. 02:21

녹색은 님의 글 파란색은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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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이레니우스나 기타 영지주의를 반박하려고 애쓴 기독교인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시몬마구스의 경우도 그가 외경에 나타나는 그 '시몬'인지는 분명하지 않고요.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말씀은 볼테르가 죽을 때 회개했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연상케 하는군요. 좋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폴로니우스도 혹시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합니까?

 

--> 님이 이레니우스나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말을 믿건 안믿건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했다든 기적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아폴로니우스의 경우는 엄연히 예수와 다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문명에 끼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서 황비 율리아 돔나가 작가 필로스트라투스에게 아폴로니우스의 전기를 쓰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예수를 직접 목격하고 쓴 4권의 복음서와는 달리 아폴로니우스와 친분관계도 전혀 없던 필로스트라투스가 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자연스레 그의 저서들은 이교도들 가슴에 종교적 감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를 기념하는 성전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전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뒤에 기록된 저술이며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막기 위해 쓴 전기인데 그것이 예수 신화와 동일한 패턴이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이 비논리적일 이유는 어디 있나요? 그리고 기적이란 말을 그런식으로 쓰시겠다면, '기적'이란 말이 참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군요.

 

--> 인간이 태어난 것이 비논리적일 이유가 없다고요? 그럼 인간들이 지상에 등장하여 의식을 부여받고 지혜, 상상력, 이성, 양심의 기능을 부여받게 되는 상황들을 오늘날 작용하는 자연법칙을 근거로 하여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흔히 아기의 탄생을 두고서 생명의 신비니 기적이라 말을 합니다. 제가 만들어 내거나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요.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오랜 세월동안 반복되어 왔기에 전혀 신비스럽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자연 법칙으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시간이 끊임 없이 흐른다는 관념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님의 부족한 상상력입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시간개념 자체가 사실 인위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죠. 자연법칙이 직관적인 이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상대론에 대해서 좀더 지식을 쌓으시고 하셔도 늦지 않을듯..

 

-->자연 법칙을 어긋난 것이라 판단하면 그것은 상상력의 부족이 되는 것인지요...님의 지적처럼 자연법칙이 인간의 직관적 이해와 항상 일치하진 않습니다. 그것을 상대성 이론이니 상대론으로 설명한다 하여도 그것은 분명하겠지요. 그러나 흄은 분명 자연법칙과 어긋나기 때문에 기적을 인정할 수가 없다 합니다. 흄이 지적한 자연법칙은 인간의 직관적 이해를 벗어난 개념입니까?? 그것을 기적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분으로 봐야 하겠는지요..

 

 흄은 철학자입니다. 과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죠. 심지어는 과학마저 의심을 하죠. 그러나 그의 기적에 대한 논증은 그가 과학자건 아니건 간에 훌륭한 것이죠. 그리고 과학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지만 부정은 못합니다. 과학 이론은 항상 개선이나 반박의 여지를 남겨두거든요. 그러나 기적을 열성적으로 믿는 분들은 그런 여지를 별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들이 확신하게 만드는 기준은 아주 느슨함에도 불구하고 반박에 대한 방어적 기준은 아주 정교합니다.

 

--> 철학이라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한 인간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면서 해석한 개념을 철학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그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적을 믿는 분들은 개선이나 반박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일부 몰지각한 분들의 관념이 될진 몰라도 모든 이들의 공통된 특성은 아닙니다.


목숨 바쳐 지킨 신념은 믿을 만 한가요?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를 꽂은 아랍인들의 신념도 참 믿을만 하군요^^ 믿을려면 뭔들 증거가 안 되겠습니까? 증산도인들은 우주의 가을이 왔다는 증거는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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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신념과 목격한 것들에 대한 증언은 차이가 있습니다. 9.11사태를 일으킨 이들이나 증산도들인의 사회에 대한 해석들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특정 논리, 이론에 대한 신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나 예수 부활의 경우는 어떤 이념에 대한 맹목적 확신과 행위가 아닌 보고 확증한 것들에 대한 신념의 행위들이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약간의 유사성만 있다고 표절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적 기록과 상황을 고려해봤을때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쪽이 더 설득력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군요...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생활 습관에 따른 영향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겠죠? 예수를 인정해주고 신격화시켜준 것은 이방인들, 헬라화된 유대인들(자기네 전통도 잘 모르죠)입니다.

 

--> 예수의 12제자들은 모두 철저한 유태인들이었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한 바울 역시 철저한 유태인 학자였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기 제자들 역시 이스라엘이 로마 압제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랬으며 심지어 예수가 죽기 전까지 그 날을 확신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지도자를 신격화하고자 했다면 독립 운동가인 마카비 형제를 비롯한 다양한 혁명가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과 아무런 관련없는 예수를 신격화했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 안되면 결론을 유보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확신은 충분한 증거가 나왔을 때 하셔도 늦지 않을듯..

 

-->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성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결론을 유보하고 모르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티들의 주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증거가 부족하거나 유사한 점이 발견되면 무조건 표절이나 영향을 받은 것, 후대의 조작이라 단정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성만을 확고하게 인정하면서 증거주의를 외치는 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단순한 이성만이 아니라 인간 지각 부분의 한 부분인 영성, 즉 영적인 것들에 대한 성품을 발전시킨 믿음 역시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 족보에 한 조상의 이름이 나왔다면 그 조상이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조차 후대에 왜곡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 마태 12:39-40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게 아니하시리라.' - 마가 8:12

부활이 마태에게는 유일한 표적으로 여겨진 반면 마가는 표적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복음서간의 이러한 불일치는 이외에도 너무 많아서 일일히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만 기독교인들 중에선 별로 대수롭게 보는 분은 없더군요. 마태는 '인자는 사흘 낮 사흘 밤을 땅 속에 있으리라'라고 기록했으나 예수가 무덤속에서 있었던 시간은 이틀 밤 사흘 낮으로 나옵니다. 님에게는 이런 실수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겠죠? 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저같은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서가 별로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가복음을 보고 마태가 표절한 것이라 한다면 그렇게 불일치한 부분이 등장하지 않았겠지요.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다만 부활만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마가는 그 앞부분만을 들어서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만 기록했을 것이며 마가는 전부 듣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까지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 기록 역시 인간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염두에 둔다면 굳이 모순이나 표절과 같은 음모설을 동원하지 않는다 하여도 설명이 가능해 집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영감을 받았다는 축자 영감설을 신봉하는 분들에게 그러한 문제점들은 타격이 될지 모르겠지만 성경 기록 역시 기록한 자의 관점이 작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서간의 불일치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모든 부분이 설명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오시리스님께서 복음서의 계보역시 불일치하다고 하시는데 유대인들의 족보 특성에 대해 조금만 고려하신다면 그러한 불일치를 모순이거나 조작, 표절과 같은 모함으로 보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성경 상 불일치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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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잉..님께....

 

님들 보시기에 제가 가치판단에 있어 고무줄과 같은 잣대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아직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20대의 치기어린 열정이 이곳에서 글을 올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의견이 있다면 저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안티분들의 글과 해석에 대하여 무턱데고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시대에 '또 다른 해석'이란 부분이나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어느정도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단이니 삼단이니 상대를 비판하기를 즐겨하면서 안티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오늘날 교계에 대해 많은 실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글을 올리니 제가 올리는 글을 그저 하나의 의견 정도로만 보셨으면 합니다.

 

기적이라는 말을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되더군요.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두고 이르

는 말.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일반적 사고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자연법칙이라는 융의 발언을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즉 상식선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기본적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설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저 역시  기적이라 부르는 것들도 언젠가 설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습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 역시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하겠지만 분명한 과학적인 토대를 근거로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기적이라 부르는 것을 허구나 사기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분명히 현재의 사고를 가지고서는 풀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간의 흐름을 자연법칙의 하나로 보았던 것도 우리의 기본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기본 상식이 하나의 관념으로만 취급될 수가 있을까요? 기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란 사전적 의미로 본다 해도 저의 말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긴 이 역시 개인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긴 하겠지요. 무엇 하나 절대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에 대한 것이 증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생애를 함께 했던 12사도들이 직접 목격하고 들은 것들을 기록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보고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당시 유대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했다는 데 있습니다. 12사도 중에 가롯 유다는 자살을 했고 밧모섬으로 유배된 요한을 제외한 10명의 제자들 전부 그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바에 따른 신념의 행위들이었으며 그것들을 죽음으로 인봉했습니다. 모세의 법이나 오늘날 세상 법정에 따르면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있다면 설령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다 하여도 그것은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활한 예수가 직접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도 그 분을 목격한 증인들이 증언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죽음까지 바쳐가면서 주장했다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리가 100% 독창적이라는 말에는 저 역시 동의한 바가 없습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 철학, 예술 작품이라 하여도 당시 시대적 배경과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언어로, 인간적 배경 하에서 기록을 했다 하면 자연스레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 등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미워잉~~님께..

 

제가 무엇을 우기고 있는지 다른 분들처럼 조목조목 비판해 주시면 수정을 할 것입니다. 무턱데고 우기고 계시다, 감정에의 호소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하신다면 제 잘못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기세등등해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면 지적해 주십시오...제가 착각하거나 오해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겠습니다.

 

순수이성님...

 

전 이 세상이나 우주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라야 그런 의식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주어진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한 것 뿐입니다. 우리가 외계인도 아니고 짐승들의 생각이나 감정도 모르기 때문에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그것을 너무 비약해서 확대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묻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본적 상식 선에서 말씀드린 것 분이지요.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로 단정하거나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식의 일반 철학자들의 의견이 우리의 기본 상식이 된 것임은 님도 인정하시겠지요?? 순수이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제가 의도한 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오해를 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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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자면...이곳에서의 토론은 실제 의미가 없을 듯 싶습니다. 초기에는 나름대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는 듯 싶었으나 제가 올리는 글에 대해서 무엇이 그러한지 반박을 하지는 아니하시고 "애들 장난이다....조잡하다....조작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눈물겹다.."는 식으로만 일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고대의 기록이고 그것이 기록된 시대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 이해하기 어렵고 조잡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다고 하여 부턱데고 부정부터 하고 조작설을 들이미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태도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예수 족보와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마지막에 덧붙혔지요? 제가 한 주장들을 100% 정확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작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만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현대의 논문과는 달리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불완전하고 그것을 기록한 저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낼 재간도 없습니다. 실제 우리가 몇몇 구절들에 메달려 강조를 하기 보다는 성경 전체에서 흐르고 있는 사상에 주의를 기울여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성경도 인간의 기록이고 필사되어 내려오는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탈자와 첨삭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최소한의 가능성도 인정하지 못하시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안티들이 제기하는 학설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90% 이상 신봉하는 것 역시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 아닐까 되묻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객관적, 이성적, 논리적이라 여기시는지 모르겠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일 뿐입니다.

님들도 성경 표절이나 왜곡설, 모순설 등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근거로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가능성 있는 답변을 하는 저의 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정말 말이 안되고 억지라면 무엇이 그러한지 밝혀주면 될 일입니다. 무턱데고 억지니, 거짓이니, 조잡하다느니...라는 말은 사실 토론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사이버 상이나 실제 토론을 할 경우 막혀버릴 때에 무턱데고 "말도 안돼!! 집어 쳐!"라고 소리 치면서 토론을 방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무엇이 말이 안되고..무엇이 집어 칠 만한 것인지 증거를 제시하면 토론은 진행됩니다. 그러나 무턱데고 소리치면 그것은 토론의 흐름을 방해하는 역할 만 할 뿐입니다.

또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라고 욕설을 하셔도 이제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글에 대해서는 더이상 답변을 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여도 그것을 나름대로 소화해서 풀어준다면 모를까 무턱데고 반말이나 욕설, 비아냥 거린다면 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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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잉...님이 올려주신 다양한 논증들과 가설들 잘 읽어 보았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담보로 한 분석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길고 복잡한 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모두 분석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과 시간도 없기 때문에 그 요점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증언 (in the Skeptic's Dictionary)

 

이 글에 따르면 초자연적인 것들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인데 그 이유를 '이러한 사항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확립하기 위한 경험적 가치는 거의 없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이유의 하나는, 위의 사례들 같은 이야기에는 본질적으로 신뢰성이 거의 없고, 게다가 선입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신뢰성이 없고 인간의 선입관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기적이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증언에 대한 부분은 기존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의 지적처럼 제가 진화론에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이론 역시 그것을 합리적으로 확립하려는 경험적 가치가 없고(아메바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중간 고리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 역시 신과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관념(선입관)을 전제로 한 학설이라는 것입니다. 신이라는 존재를 아에 제외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이 진화론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다양한 학설만이 존재하며 그 어떤 이론도 명확하게 규명된 사항이 없습니다. 이 점은 인정하시겠는지요?? 신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불가지론자가 이 점에서 더욱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성한 오류(불신에 의한 논증) (in the Skeptic's Dictionary)

 

우리의 힘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신성한 오류, 즉 불신에 의한 논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쉽게 빠지는 오류 중에 무지에의 호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거나 알 수 없음을 들어 거짓이라고 추론하는 오류이지요. 증명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신이라는 존재를 유추한다는 신성한 오류가 종교인들에게 있다면 증명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전부 거짓이라 추론하는 무지에의 호소는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collective hallucinations, 집단환각

 

집단환각이란 이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도에 의한 환각,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특정 카리스마스를 지난 자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집단 환각은 종교단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독일의 나치집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만행들을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습니다. 히틀러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의해 당시 민중들은 감정이 고조되었으며 유도에 의한 게르만족 우선주의 환각에 빠졌던 것이지요.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볼까요> 집단 환각은 특정한 유도, 감정의 고조 상태, 어떤 것들에 대한 열망하는 마음이 이루어져 발생한다 합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나무에 메달려 저주를 받은 예수에 대한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자 그의 제자들은 전부 실망하여 그들의 생계수단을 위해 돌아갔습니다. 부활한다고 그토록 말씀했지만 어떤 제자도 그 부활 사건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분이 나타나셨던 것이지요. 그 뿐입니까? 바울로 알려진 사울은 기독교인들을 죽이려는 자였습니다. 다메셋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들은 것이 과연 집단 환각일까요? 그가 예수에 대하여 열망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집단 환각으로 설명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보지도 못한 예수를 저주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던 바울이 본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이 곳도 하나의 집단 환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곳 분들은 어떤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신념에 열중하여 성경에 관한 그 어떤 것들도 모순과 조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버 상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부분도 쉽게 무시합니다. 이런 모습이 집단 환각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일까요??

 

selective thinking, 선택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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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를 '어떤 사람이 기억하거나 관심을 갖는 것에 유리한 증거를 선호하는 한편, 자신의 생각에 불리한 증거는 무시하려는 과정이다'라고 풀이합니다. 안티분들께 그러한 사고가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님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기적을 인정못하고 신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유리한 증거들만을 선호하며 그렇지 않는 것들은 전부 무시하거나 거짓, 왜곡, 거만한 행위 들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서로간에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어쩔 수가 없이 자신의 신념과 시각을 객관적으로 보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용이 되지만 안티 분들께도 적용이 됩니다.

 

이 외에도 맹신 증후군이 있지만 맹신에 대한 부분은 비단 종교적인 맹신만이 아니라 특정 신념에 대한 맹신도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 것은 신앙인들에 대한 비판이 그대로 안티분들께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이러한 저의 의도를 왜곡하는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시지 마셨으면 합니다.

 

 

듣기 싫어하시겠지만 성경 한 구절을 나눔으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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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올려주신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턱데고 무식하니 거짓말이나 맹신적 행위니 비판하는 분들보다는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시며 그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님의 글은 많은 것들을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님께서 올려주신 주장들은 누구의 학설인지 밝혀주시면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인터넷 상에서 갈데아와 관련된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기독교인들의 설교 자료라 생각되는 것들은 전부 제하여 보고 수메르에 관한 역사나 그것을 한국민과 연결시키려는 한밝회와 같은 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갈데아 우르 역시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도시 국가 중 하나로 설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에 따라도 '갈데아'(아카드어는 kaldu; 히브리어는 '카스딤')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의 늪지대나 호수 지역에 거주하였던 유목민들을 지칭하는데, 그들은 아람족에 속하는 한 분파이었다고 합니다. 앗수르의 역대기에서도 이 지역을 '칼두'라고 언급합니다. 물론 그들은 세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역사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민족들에 대한 자료의 부족을 몇몇 학자들은 (다른 경우와 동일하게) 후대 조작설로 인정하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지요.

그러던 갈데아 인들이 그 지역에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기원전 9세기 경 이후의 일입니다. (님은 갈데아의 우르는 기원전 800년대에 시작된 도시이며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서 약 천년이나 뒤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설명을 하셨지요.) 즉 갈데아인 출신이었던 므로닥 발라단(Merodach Baladan)이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가 죽자 바벨론에 입성하여 신흥 바벨론제국을 선포함으로 갈데아인들의 지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갈데아인들이 신바벨론 제국 시기에 권력을 행사하였다 하여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요?

또한 아람어에 대해 설명하시며 갈데아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스딤이 원래는 게셋지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님에 주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경 창세기가 기록된 언어는 히브리어가 아닌 고대 바벨론의 북서 지방인 아카드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카디언이라 불리는 단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약 이천 년 전부터 셈족의 바벨론 필체가 아카디언을 대체했는데 일반 학자들은 이것이 나중에 나타난 아람어의 기원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러한 종류의 필체가 주전 약 600년 전, 바벨론을 통치했던 느부갓네살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게스딤은 갈데아라는 이름을 서부 셈어로 바꾼 형태인것이며 셈계의 아람어로 그 지역을 가르키는 단어입니다."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하여도 아람어의 기원으로 알려진 바벨론 필체가 아브라함 시절에 사용되었음을 가늠해 본다면 역사적인 사실과 그리 어긋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역시 저의 개인적 의견이고 다른 학설들이 충분히 제시될 수가 있으리라 봅니다. 고대의 문헌이나 모든 역사가 그러하겠지만 중근동의 고대사 역시 완벽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몇몇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역사가들이 추측할 경우도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역사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추신: 이 분처럼 훌륭한 자료를 가지고 반박하시는 분께는 답변할 것이나 (만약 제가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무턱데고 욕부터 하거나 무식하니, 맹신이니 하시는 분들께는 침묵으로 일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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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 올리신 글 봤습니다...메뚜기 다리에 대하여 답변을 했다는 분의 글을 읽고는 한참을 당황해 했습니다. 몰라서 그런거라고 관용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후 상황을 무시하고 무턱데고 믿어버리는 맹신의 모습도 보이는군요. 과연 그분의 설명처럼 레위기 당시에는 다리 넷 달린 곤충이 살았는데 언젠가 멸종했다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네이버 지식검색을 이용해 보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님이 지적하신 구절을 살펴볼까요??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레위기 11:20-22)

 

이 구절을 흠정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Yet these may ye eat of every flying creeping thing that goeth upon all four,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 to leap withal upon the earth;'

 

영어 성경을 보시면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라고 하여, 즉 '그 발 위로 다리가 있다' 고 설명해 주며 NIV에서는 'have jointed legs for hopping on the ground.'라고 하여 땅을 뛰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4개의 다리는 기어다니는 다리이고 그 다리 위로 땅을 뛰기 위한 다리가 또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에서 그와 같은 곤총을 베짱이, 메뚜기, 귀뚜라미를 들고 있죠. 이러한 곤충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어다닐 때는 거의  짧은 4다리로만 움직입니다. 그런데 펄쩍펄쩍 뛸 때는 그 4다리 위에 있는 긴 다리로 뛰어 다닙니다. 수컷의 경우는 60배 이상을 그 다리로 뛸 수 있다고 하죠??

 

그 구절을 기록한 자의 눈으로 보면 메뚜기와 같은 곤충들은 4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뛸 때는 긴 다리로 뛰어 다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에서 곤충이 네 발로 기어다닌다고 표현을 했으며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다'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저에게 태클을 거시는 것은 자유입니다...그러나 별다른 근거 없이 상상과 추측에 의한, 감정적인 태클이라면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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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간단히 답변드립니다.

 

잡신장기내한공연님께...

 

님은 종교와 아편을 비유를 하셨습니다. 과거 사회주의자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아편은 피울 때의 그 황홀감이 있긴 하지만 그 약효가 떨어질 때의 황폐함과 절망감, 고통이 가중되지요. 종교는 황홀감 뒤에 찾아오는 고통이 없습니다. 물론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치면서 헌금 강요,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강조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다면야 모르겠지만 진정한 종교는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고 (신의 소성을 물려받은 존재로 보니까요...) 도덕적 인간을 만들어 주니까요...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덕적인 이념은 종교적 감정에서 생겨난다. 논리는 결코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윤리적인 것, 도덕적인 이념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종교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란 작가의 말은 참으로 이치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하겠지만요.....개인적으로 저는 신앙을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보단 훨씬 더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행하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아무런 신념없이 되는대로 사는 사람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하시는데....일방적인 안티보다는 불가지론자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 있던 것처럼 금판을 본 여러 목격자가 존재합니다. 금판을 직접 보고 만져본 이들의 증언이 몰몬경에 실려 있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그 증언을 철회한 적이 없었죠. 개중에 교회를 떠나 대적하는 행위를 한 자가 있었어도 말년에 다시금 교회에 들어오거나 그가 했던 증언을 끝까지 고수하였지요...

 

순수이성님께...

 

원래 안티분들이 변화하리라고는 생각치도 않았습니다. 처음의 의도가 진행되지 않자 이런식(?)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유럽에 기독교가 판을 치던 시기의 암울성을 지적하시는데....그것은 종교라는 단체가 정치와 연합하여 생긴 끔찍한 부작용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와 연합하는 순간의 패악성은 역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각있는 종교들은 정교연합을 꿈구지 않지요. 또한 무신론을 표방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벌어졌던 살육과 만행들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종교를 표방해서 살육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무신론적인 사상 조차도 살육이 벌어집니다...중세시대의 암흑기를 종교 자체에서 원인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역사를 무시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달님...

 

님이 언급하신 것은 아브라함서입니다. 모세의 이야기가 아니지요..그리고 그 기록을 번역한 파피루스는 1871년 대화재 때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남겨 있는 것은 그 기록이 아니지요. 님이 언급한 것은 이집트의 장례문서였습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서의 원본이라 주장한 사람이 잘못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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