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사도 2:34-36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몇몇 분들은 윗 두 구절을 증거로 제시하여 여호와와 예수는 같은 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맞습니다. 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성구의 표면만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지요. 저도 한 동안 이 구절을 가지고 고민해 왔습니다. 교회 몇몇 분들에게 물어봤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았고, 너무나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해 오면서 답을 발견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저 개인의 연구에 따른 해석일 뿐이며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다시 말해 이는 저 개인의 해석이기 때문에 더 나은 해석이 있으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예수께서 금식을 마치신 다음 회당에 들어가서 다음 이사야 구절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누가 4:18)
그런 다음 해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윗 구절에서 나오는 “나”라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런데....예수님이 인용한 구절을 구약에서 찾아봤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61:1)
똑같은 구절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이 구절을 당신에게 적용하셨으니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차적 의미는 그렇지요. 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나”는 이사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계시를 주시고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이사야서 전체의 기본 틀입니다. 그럼 이사야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 찾아보지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6:8-10)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사도 2:25-28)
시편에 있는 구절은 다윗의 시입니다. 물론 시편에 나오는 “나”는 다윗을 지칭하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면 시편에 나오는 “나”가 예수님이라 합니다. 그럼 다윗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시편 2:1-3)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사도행전 4:25-27)
시편에 나오는 “기름부음 받은 자”는 당시 유대 왕(다윗)을 의미하는 것(시편 28:8, 132:10)으로 당시 주변 정세의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왕국을 승리로 이끄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또 사도 행전으로 넘어오면 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예수님이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왜 저는 위에서 세 구절을 인용했을까요?
만약 성경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성구를 퍼즐 맞추기 식으로 연결한다면 이사야와 다윗은 예수님과 동일한 분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다윗과 이사야라는 인물로 내려왔고, 그 당시 썼던 기록을 다시금 내려와 자신에게 응한 것이라 주장한다는 이상한 교리가 되어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성경에서는 구약 시대의 인물을 지칭한 구절을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대표 원리가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의 인물이 어느 정도 앞으로 오게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인류인 아담은, 모든 인류의 영생을 허락하실 예수님에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고전 15:45)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을 의미했으며 요셉의 이야기는 돈으로 팔려가 결국에는 승리자가 되어 모든 이들을 구원할 예수님을 의미했습니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은 모든 인류를 속죄 희생으로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님으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을 약속의 땅, 즉 영생으로 이끌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름부음 받은 자인 다윗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회개를 외친 이사야 역시 예수님을 상징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예언한 구약의 구절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선지자의 성역이나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 성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그 이후 사도들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기록을 인용하여 바로 예수를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시편 110편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시편 110편에 나오는 “내 주”라는 인물도 원래는 예수님이 아니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구약 시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각자가 다른 사람들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자들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에 더하는 다른 구원자를 언급할 수가 없었으며, 굳이 구원자를 언급할 경우도 자신들을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서 구출해 줄 특정 왕을 지칭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자들이나 실제로 구약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위에서 성구들을 통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시편 110편을 근거로 해서 “봐라 여호와가 예수님에게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봐라 예수님이 이사야를 일러 당신이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는 것과 같은 해석입니다.
'교회의 역사와 교리 > 예수 그리스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의 탄생일은 언제인가?? (0) | 2012.12.03 |
---|---|
예수의 성역은 고대 신화의 표절인가?? (0) | 2011.12.23 |
예수님과 성령님은 동일한 분인가? (0) | 2011.02.08 |
예수는 여호와인가 (2) (0) | 2010.10.15 |
예수님은 욕설과 저주를 반복하신 분인가?? (0) | 2010.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