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배웠다는 사람은, 책을 조금 읽었다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고 자신이 읽은 책에 담긴 내용이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틀이요,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전부 배척하는 사고방식을 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정작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의 “의견” 을 다양성 차원에서 존중하기 보다는 배척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여 비난하기를 즐겨합니다. 왜 그들은 이처럼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해 과감하게 사용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함에 있어서 주저하는 것일까요? 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 7:2)는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상대방이 책도 안 읽고 분별력도 없어서 몰몬 같은 사이비에 빠져 있다고 단정하기에 앞서서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는( 마태 16:3) 그 영적인 어두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며 죽었다 깨어나도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4)는 구절처럼 우리의 육적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나는 뭐 매일 성경이나 몰몬경만 읽고, 교회 지도자들의 말씀이나 들으며 나만의 세상에서 만족해 하는 사람인 줄 압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등비평학자들의 책은 물론이거니와 안티 기독교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성경 비판 자료들은 이미 예전에 섭렵했으며 몰몬경에 대한 비판 자료들은 국내 자료는 거의 대부분 읽었고 영어로 된 다양한 인터넷 자료들과 책들을 주문해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무신론을 대중화한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저서들도 흥미있게 읽었죠. 따라서 괜히 성경이 앗수르 문명에서 표절한 것이라든지, 예수의 생애가 오시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마치 아무도 알지 못한 비밀이라도 폭로하듯이 올린다 한들 제게는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주장에 반하는 자료들 역시 읽고 공정한 시각에서 분별하려 했고, 또 나름대로의 주관과 판단 기준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물론 내가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왔기에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판단함에 있어 편견이 작용했다고 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신앙에 반발해 왔고, 한 때는 성경을 비난하는 무신론자의 상태에 처해 본 적도 있기에 어린 시절의 환경이 판단 기준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내가 왜....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그것도 몰몬교라는 단체에 속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의 친인척 중에 한 분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알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냐고 말입니다. 물론 저는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말로로 표현할 수 없고, 그것을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나 그 어떤 사상에도 영향을 받지 못할 정도로 명확하고 굳건하게 확신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표절론을 들먹이기에 성경과 몰몬경에서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실존하심은 감히 인간으로서 만들어 낼 수 없는 깊이와 신비함이 담겨져 있더라는 겁니다. 성경과 몰몬경과 같은 소위 경전이라는 책들은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 4) 이해가 되기에 그저 몇 번 읽었다고 하여 그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아닌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신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골로새 1:26)으로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야고보 1:5)할 때만이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아무리 성경 비판 서적들을 읽고 무신론자들의 논리 정연한 글들을 읽었어도 “그렇게 이해할 수는 있겠다”는 수긍 수준에만 머물 뿐, 하나님의 실존과 그분의 사랑을 벗어날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 경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부모님을 보지 못하고 기억할 수 없고, 부모와 나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인 관계로 설명할 순 없어도 나와 늘 함께 해주셨고, 아플 때면 함께 아파해주신 부모님의 실존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고요?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시절을 기억할 수는 없으나 태어난 순간부터 쭉 함께 해오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부모님의 모습과 닮았다는 사실에서 그분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를 유전자 검식을 통해서 증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변함이 없는 것처럼 나와 하나님의 관계 역시 그러합니다. 그분은 늘 함께 해오셨습니다..인간의 논리적인 언어와 과학적인 증거로 그분을 증명할 수는 없어도 그분은 그분만의 방법으로 그분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켜 주셨고 천연계와 경전, 선지자, 성신의 인도함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방법을 시험해 볼 생각도 없고, 시도해 보지도 않으면서 그저 몇몇 학자들의 궤변적인 주장에만 의존하면서, 그것이 유일한 이성과 과학의 방법인양 착각하면서도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지은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실 겁니다. (시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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