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왕에게 담대하게 회개를 외치는 아빈아다이)
지난 주에 있었던 한국성도를 위한 스테이크 대회 말씀과 관련하여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의 말씀에 대해 실망했다는 한마디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하여 몇몇 회원들이 우려의 글을 올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 개인에 대한 관심과 우려 때문에 그런 글을 올려주신 몇몇 친구들의 글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나치게 획일화되어 있는 생각 방식을 보게 되어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선지자들의 말씀이라 해도 개인적인 기대와 간절함의 정도에 따라 실망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는 것을, 마치 그 한 마디가 감히 선지자에 대해 도전한 것인 양, 그래서 심지어는 배도의 증후가 보이는 것으로 과대 해석하거나, 실망이란 단 한 단어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릇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은 정말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선지자들이 주시는 말씀에 관심도 없고 무슨 말을 하던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라면 실망이라는 감정조차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실망이란 정말 간절히 바라고 기대해 온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 스타일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으로 제 3자가의 신앙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지나친 기우에 불과합니다.
물론 내가 느끼고 바라는 방식이랑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하시는 방법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고, 그런 차이에 대해 불평하면서 선지자의 직분을 부정하는 일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전 그럴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몬슨 회장님의 말씀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유머감각도 많고 감동적인 일화도 많이 제시하고,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이신지 시나 저명 인사의 말도 많이 인용하시죠. 이건 그분의 말씀 스타일이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침례 받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전을 통해 기대해온 선지자의 스타일은 (유머감각이나 풍부한 상식보다는) 주변 상황에 상관하지 않고, 심지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그러면서 성도들이 회개하고 행동하게끔 만드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굳이 선지자들이 무엇을 하라고 계속적으로 권유하지 않아도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찔려 어떻게 해야 할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1세기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진실로 그리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사도행전 2:37)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터는 어찌나 담대해졌던지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거침없고 담대하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이처럼 성령은 베드로를 통해 담대하게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했던 겁니다. 실제로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베드로의 권고대로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자들이 삼천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주께서 구원받는 자들의 수를 더 증가하게 하셨다고 하지요. (사도행전 2:41-47)
몰몬경에 나오는 아빈아다이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같이 주께서 말씀하시며 이같이 그가 나를 명하셨느니라 이르시되, 나아가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같이 주께서 말씀하신다 하라 - 이 백성에게 화 있을진저, 이는 내가 그들의 가증함과 그들의 간악함과 그들의 음행을 보았음이니,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내 분노 중에 그들을 벌하리라” (모사이야 11:20)
그는 사람들에게 나아와 너무나도 담대하게 회개를 외쳤으면 그렇지 않을 때 주님께서 벌하실 것임을 강력하게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노아왕을 비롯한 당시 정치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했으며 아빈아다이를 잡아 들여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크게 작용했을텐데 아반아다이는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그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경전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사이야서 12장 참조)
이 외에도 경전 상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주변 상황에 상관하지 않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죄를 지적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말씀을 통해 마음에 찔림을 얻어 주님께로 돌아온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경전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모습을 현대 선지자들의 모습 속에서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특히 침례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다, 매년 성전에 어디어디에 세워진다는 발표를 하면서도 정작 전체적으로 교회의 활동회원 수가 줄어들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회개와 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순간에 전 선지자들의 단호한 말씀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특히나 한국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스테이크대회인 만큼 오늘 한국 성도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답변 주시기를 누구나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을 터인데 주어지는 말씀은 여러 편의 시 인용과 일화들, 그리고 예전에 했던 말씀의 일부를 반복하거나 심지어 링컨 대통령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말씀에 본질을 흐리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실망했던 것입니다. “구조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슨 내용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 말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말씀의 핵심과는 무관한 이야기들을 너무 길게 늘어놓았다는 것도 개인적 실망의 이유입니다.
제가 이렇게 구차하게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고 한국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좋게좋게 생각하자, 좋은 점도 있으니 그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라는 지적도 맞는 말이지만 때로는 담대하고 명확하게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공론화하여 고칠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엄격한 명령으로 말미암아, 불가불 너희의 범죄를 따라 너희를 훈계하여, 이미 상처를 입은 이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대신, 그들의 상처를 더 크게 하며, 상처를 입지 아니한 이들은, 하나님의 기쁜 말씀을 흡족히 취하며 즐거워하는 대신, 단검을 맞아 그들의 영혼이 찔림을 받고 그들의 섬세한 마음이 상처를 입게 하여야 함이,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도다 그러나 과제의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엄격하신 명대로 행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들과 상한 마음을 지닌 자들의 면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꿰뚫어 보시는 눈길 아래서, 너희의 간악함과 가증함에 관하여 너희에게 고해야만 하느니라.” (야곱 2:9,10)
야곱의 경우도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고 영혼에 찔림을 주는 일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힘들게 살다가 좋은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자 교회에 오는 성도들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보다는 격려와 활기찬 미래의 모습만을 제시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더 기뻤을까요?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생각보다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처럼 성도들이 회개해야 할 점들에 명확하게 분명하게, 그렇게 해서 몇몇의 섬세한 마음이 상처를 입는다 하여도 바르게 지적해 주는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도다, 참으로 시온은 번성하나니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도다 할 것이라 - 이같이 악마가 그들의 영혼을 속여, 조심스럽게 그들을 인도하여 지옥으로 내려가느니라.” (니후 28:21)
긍정적인 말과 사고를 가지는 것은 좋으나 때로는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번성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만족해 하는 것은 바로 사탄이 영혼을 속이는 방법임을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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