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의 안티 몰몬들에게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고, 하늘에서 주어진 양심의 빛과 선택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해 정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떤 계기와 의도에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한 때 교회에 충실한 자였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한 자들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 엑스모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 특히 성전 의식과 관련된 “폭로”글들을 보면 그 위험 수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들 생각에 성전 의식들이 아무 의미 없고, 불필요하며, 사이비 의식 같아 보인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성스럽게 간직하는 것들을 공개적으로 들추어 모독하고 조롱하는 모습은 보기조차 역겨운 일입니다. 그토록 관용을 부르짖으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상대방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그토록 모독할 수가 있을까요? 후기성도들의 경우는 그나마 쓰린 가슴을 움켜쥐고 참아낸다고 할지라도 모하메드나 코란을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이들에 대한 이슬람 신도들의 과격한 대응은 바로 이러한 관용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비극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후기성도들이 성전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치 그러한 비공개가 “구린 일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이라는 식으로 자극적 반응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밀로 유지하면 무조건 구린 것과 연관 짓는 것은 경전의 관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태 13:10,11)
예수의 가르침은 공개적인 것이긴 하였으나 비유를 사용하셔서 천국의 ‘비밀’들이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바가 되었습니다. 왜 그러한 방식을 사용했을까요? 누구의 말대로 예수의 가르침 속에 구린 것이 있어서 그러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제자들에게 “특정한 비밀을 전수받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주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저는 성전 의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를 하는 보면서 왜 예수께서는 중요한 가르침들을 상징이나 비밀스러운 방식을 사용하셔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 7:6)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성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개나 돼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의 요점은 특정인을 개나 돼지로 비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동을 적절하게 묘사한 것이라 봅니다. 개나 돼지의 눈에는 거룩하고 값진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발로 밟고 상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성전에 대해 “왜 공개하지 않느냐?”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비즈니스니 뭐니 마구잡이 방식으로 비난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왜 이 성전 의식이 소중하게 간직되어야 하고 비밀스럽게 유지되어야 할 만큼 성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태 27:39-42)
모두를 위해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향하여 지나가는 이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 서기간과 장로들도 비웃으면서 모독한 일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단순히 사회를 전복해 보려다 실패한 젊은이의 비참한 죽음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원얻을 자들에게 있어서 그 사건은 영광스러운 구속의 사건이었으며 모든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이처럼 성전 내의 성스러운 의식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단순히 프리 메이슨 의식의 표절 작품이나 무의미한 일들의 반복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받고 성약을 맺는 귀중한 장소입니다.
고대 바벨론 왕이었던 벨사살과 그의 하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온 거룩한 기명들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손이 나타나 “메데메데 데겔우바르심”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일들이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엑스모들의 성전 모독 행위들이 이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성전의 중요한 의식들과 성약들이 철저하게 공개적 모독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 가치와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들 눈에는 쓸모 없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나, 분명 몇몇 이들에게는 소중하고 성스러운 일들을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일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자행하는 이들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관용”의 의미와 고대 바벨론 왕이었던 벨사살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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