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성전과 프리 메이슨

성전 가먼트의 목적

모로나이 2011. 2. 18. 01:35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동영상이나 관련 사진을 통해 보면) 매년 연차대회나 성전 헌납과 같이 교회의 큰 행사가 있으면, 몇몇 보수적 개신교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면서 교회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합니다. 정말 보기조차 민망한 그림들과 문구들을 사용해서 후기성도들을 비난하는 시위를 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후기성도들의 성전 가먼트를 드러내어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불결한 제스처까지 해가면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신사적이라고 자처하는 몇몇 분들은 성전 가먼트는 비기독교적이고 비성서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서 늘어놓기도 하지요.

 

 

(다음 사진은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후기성도들의 모임 장소에 모여 반대 피켓 시위를 하면서 가먼트를 공개적으로 모독하며 비난하는 장면입니다.)

 

 

 

 

 

성스러운 의식과 관련된 것들을 그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모독하는 행위는 진실한 후기성도들에게 심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으며, 무시할 수 있는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가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은 몰상식한 행위이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들이 비난하는 가먼트는 성전 의식을 받은 후기성도들이 밤낮으로 입는 옷으로 여러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나 이를 통해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보호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에 대해 킴볼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먼트를 통해) 보호받는 것은 정신적, 영적, 도덕적인 것이긴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신앙을 통해 실제 육체적인 보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가능성을 폄하해서는 안됩니다.”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39)

 

가먼트가 주는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성도들을 영적, 정신적으로 보호하는 것이긴 하나 신앙을 행사했을 경우 육체적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도 있다는 것이 킴볼 회장님의 신념이었습니다.

실제로 단순한 루머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가먼트를 입고 여러 사건과 사고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먼트에 대해 오해하는 몇몇 사람들은 가먼트를 통한 영적인 보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육체적인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며 마치 가먼트를 입으면 모든 사고로부터 보호받는다고 후기성도들이 믿는 것처럼 왜곡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몇몇 이들은 후기성도들의 가먼트를 마법의 속옷이라면서 비아냥 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보시기 바랍니다. 킴볼 회장님은 가먼트가 우리에게 주는 보호의 핵심을 보통 영적인 것으로 초점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를 육체적으로도 보호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분의 방법대로 성도들을 보호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전 가먼트를 입었다고 하여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유아기적인 신앙이며 가먼트의 본질을 오해하여 생긴 것이라 봅니다.

 

제일회장단의 설명에 따르면 성전 가먼트는 성도들을 유혹과 악으로부터의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가지고 다니면 그저 운이 따라다니는 행운의 부적과는 달리 보호의 약속은 성도들의 충실함과 의로움에 달려 있습니다. (제일회장단 편지, 19881010- 엔샤인 1997년도 8월판)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도 많은 교회 회원들에게 성전 가먼트는 유혹에 직면했을 경우 보호의 장벽이 됩니다.” 라고 가르친 바가 있습니다. (Boyd K. Packer, The Holy Temple (Salt Lake City: Bookcraft, 1980))

 

럿셀 엠 넬슨 장로도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갑옷으로 충실하게 성전 가먼트를 입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엔샤인 2001 531) 영적인 갑옷은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보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럼 과연 가먼트는 비성경적인 것일까요? 그 역사적 기원은 무엇이며, 성도들이 가먼트를 입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먼트의 첫 역사는 초기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범범할 당시에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아담과 이브가 범법했을 때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아 부랴부랴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렸으나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인 무화가 나무 잎이 아닌 가죽옷을 지어서 입히셨습니다. 신학적으로 해석을 할 경우 무화가 나무는 금방 없어질 인간의 행위나 노력을 의미하며, 가죽옷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우리의 범법을 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당시 아담과 이브가 입은 가죽옷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실제 옷이었지만 평상시에도 계속 입으면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성약을 지속으로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현대의 가먼트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우리가 의롭게 되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28장을 보면 주님께서는 당시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에게 거룩한 것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얀색 가먼트를 입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이게 만들어주신 가먼트처럼 이스라엘 성전 가먼트는 그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 (출애굽기 28:42,43)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이들만이 성스러운 가먼트를 입도록 허락되었는데 이는 후기성도들 중에 성전 의식을 받고 그곳에서 봉사한 자들만이 가먼트를 입는 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하얀색 가먼트는 거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에 합당해질 필요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오직 레위지파들만이 성전 의식을 행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했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 모두에게 동일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시록 1:5,6)

 

따라서 현대의 제사장인 성도들이 입는 가먼트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왕과 제사장이 되어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8)

 

하얀색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밤낮으로 입는 가먼트는 복음 안에서 충실하게 생활하며 옳은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임을 상징합니다.

 

또한 충실한 후기성도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과 맺은 성약과 약속을 항상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가먼트를 입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에서 하나님과 맺은 성약을 항상 기억하기 위하여 가먼트를 밤낮으로 착용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로부터 주어지는 축복과 보호는 성약을 충실히 지키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지 그것을 입는다 하여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 약속된 축복은 영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가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재앙으로부터 보호받는 그러한 육체적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그 축복은 그 옷 자체에 기원한 것이 아니라 옷이 내포하고 있는 것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을 비난하고, 모독하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무례한 행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행하기에는 지나치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먼트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우리를 온갖 재앙으로부터 구해주는 부적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범법을 사해주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며, 성도들의 옳은 행실과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하나님과 맺은 성스러운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후기성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몇몇 이들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1세기 당시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한 뜻을 행하기 위한 열심은 강하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라 아니라 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로마 10:2)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요한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