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후기성도와 흑인, 인종차별

왜 후기성도교는 과거의 교리를 부인하는가? (흑인 신권과 관련하여...)

모로나이 2012. 3. 31. 02:52

 

 

(사도와 선지자로 지지하는 총관리 역원들- )

 

몇몇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이나 관습들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두고서 교회가 과거의 교리를 부인하고, 심지어는 과거 지도자들의 가르침마저 부정한다고 비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변화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듣고 순종할 의지가 있을 때 뜻을 전하고자 하신다는 일종의 상징적인 것들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의 그의 자녀들을 향한 구원의 계획과 같이 기본 원칙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나 이러한 원리를 다양한 환경과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그분의 시간표에 따라 적용할 경우에는 충분히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후기성도들은 아직 우리에게 밝혀지지 않은 중요하고도 위대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믿습니다. (신앙개조 9)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과거나 현재의 이해가 불완전하며 때로는 조정이 필요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뜻을 한꺼번에 그의 자녀들에게 알려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이 처한 환경과 선택 의지를 존중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조금씩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바로 이러한 원리에 대해서 가르친 바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이사야 28:9,10)

 

이러한 원리들은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루었을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선교사업 하도록 보내실 적에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 10:5,6)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뒤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시를 주시면서 변화할 시가가 왔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복음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들에게 전해져야 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주어진 계시와 하나님의 권세를 통해 베드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

 

이러한 변화는 현재에도 일어납니다. 후기성도들은 이러한 변화가 살아 있는 교회의 필수 요소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살아 계신 선지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게 합니다.

 

이에 대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또 어떤 때에는 너희는 모조리 진멸시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통치하는 원리입니다. 왕국의 자녀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계시로 적절하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비록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 일이 왜 정당한지 까닭을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을 먼저 구한다면 모든 훌륭한 것들이 더해질 것입니다. 솔로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주셨고 더불어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소망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혹 그 소망이 하나님 왕국의 질서를 일부분만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라 해도 실제로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로 내리셨고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조셉 스미스, History of the Church, 5:135)

 

만약 그러한 변화들이 단순히 불완전한 인간들의 변덕에 의한 것이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그의 권세있는 종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옳은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모름지기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중에는 일부다처나 흑인들에게 신권이 주어지는 것이 포함됩니다.

 

1978년이 될 때까지 아프리카계 회원들은 신권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금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신권 금지에 대한 동시대의, 그리고 1차적 기록이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 금지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겨진 계시도 없습니다. 1949년 조지 엘버트 스미스 회장에 의해서 제일회장단 발표가 있었는데 흑인들에 대한 신권 금지는 주님으로부터 온 직접적인 계명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정책의 발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 직접적인 계명이었으며 그 시기부터 조직에 이르기까지 교회 교리를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으나 현재에는 신권을 부여받지 않습니다.”

(제일회장단 발표, 1949817)

 

제일회장단은 전세에서 영의 행위는 필멸의 몸이 되었을 때의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주며, 이 원리의 세부점들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멸의 몸은 첫째 지체를 지킨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임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신권 금지의 이유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당시 다른 개신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절대로 흑인들이 다른 인종보다 열등하거나 영혼이 없다고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흑인들이 받는 고통들은 선천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당시 그들이 백인들과 같은 교육과 기회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으며 상당수 교회 회원들은 노예폐지론자였고 심지어 반 노예제 성향으로 인해 박해받고 쫒겨 나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예배당을 양분하여 흑인과 백인을 나누지도 않았으며 1978년 계시가 주어지기 수년 전부터 피부색과 상관 없이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신권의 문제는 단순한 시민의 권리 문제나 인종 문제의 차원이 아니라 계시에 대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초기의 많은 회원들이나 지도자들은 이 신권 거부와 관련하여 정당화하고 적절한 설명을 위해 다양한 이론(가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한 교리적 전승은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아니었지만 회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몇몇 회원들은 당시 개신교회에서 흑인들에 대해 취하고 있던 입장들을 도입하여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반복적으로 그러한 설명들은 잘못이해된 것이며 교회의 공식 교리를 대표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일례로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몇몇 지도자들과 회원들이 신권 금지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릇된 시도를 해왔음을 지적했습니다.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계명에 이해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했을 때는 그저 우리의 방식을 따른 것 뿐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신권 금지)에 대하여 이유를 제시했지만 곧 깜짝 놀랄만한 잘못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를 통해 제가 이끌어 내 교훈은 오래 전부터 나는 주님의 계명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그 이유에 대한신앙을 갖고 있지 않기로 결정해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총관리 역원들에 의해 주어진 이유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고안된 이유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이유들은 제가 보기에 불필요한 위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이나 다른 곳에서, 과거에 행해졌던 그러한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러한 이유들은 곧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판명이 됩니다. 우리가 지지하는 계시들은 주님의 뜻이며 우리가 안전히 거할 곳입니다.” (Dallin H. Oaks, Interview with Associated Press, in Daily Herald, Provo, Utah, 5 June 1988.)

 

 

 

  PBS와의 인터뷰에서 제프리 알 홀란드 장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입장은 전승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초기 동료들에 대해 패배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제가 확신하기로는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에 따라 그들이 (흑인 신권과 관련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대로 행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들 모두는 알든 알지 못하든 간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많은 종교적 문제와 관련하여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더 유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몇몇 설명들이 주어졌으며 수 년동안 반복되어 왔습니다...최소 당시에는 왜 교리들이 존재해야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영속화할 노력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그러한 관습들, 정책들, 교리들이 주어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Jeffrey R. Holland, Interview, 4 March 2006)

 

실제 흑인의 신권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설명을 시도한 바 있는 브르스 알 맥콩키 장로도

 

"제가 말한 것과 혹은 브리검 영이나 그 누가 말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대의 계시와 일치하지 않으면 전부 잊어 버리십시오. 우리는 단지 제한된 이해와 현재 이 세상에 밝혀진 빛과 지식 없이 말했을 분입니다." (Bruce R. McConki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Priesthood (Salt Lake City: Deseret Book, 1981), 126-137. )

라고 고백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후기성도들은 살아 있는 교회에서 앞으로도 더 중요한 교리가 밝혀질 것이라는 신앙개조 9조에 의해 살아 있는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신권이 거부된 것은 분명한 계시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이유나 원인을 설명하려는 어떤 지도자들의 발언도 실제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가 아닌 그들이 살던 시기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에 근거한 의견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 옥스 장로님은 계명에 이유를 제시하려는 잘못이라 지적했으며 홀란드 장로님 역시 과거 지도자들의 발언에 대해 잘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맥콩키 장로님도 현대에 밝혀진 계시와 일치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의 말도 전부 잊어 버리라고 했죠.

 

이러한 변화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나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복음의 원리와 경전에서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방법들에 대해 이해한다면 이러한 변화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오히려 왜 이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라고 불리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