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개인적 생각들

예수 그리스도 부활에 대한 성찬식 말씀...

모로나이 2012. 4. 22. 00:20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그 사건을 믿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필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믿을 수 없는, 너무나 믿을 수 없어서 신화나 후대에 미화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금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저는 오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참으로 많지만 시간상 몇 가지 증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1세기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낙담과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로 간주되었고, 그들이 배운 바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의 메시야를 죽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스러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각기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머지않아 그들은 다시금 그들의 직업을 버리고 뭉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남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굶주리면서 조롱당하고 감옥에 갖히기도 하면서, 그리고 심지어는 대다수의 제자들이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처형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거하게 됩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정황을 살펴봐도 저주 받은 자로 간주된 사람을 부활했다고 미화하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증거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설명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을 믿지 않던 회의론자들은 예수가 돌아가신 이후에 완전히 바뀌어서 부활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는 생전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맞서기까지 했는데 나중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돌에 맞아 죽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유대인의 전통을 깨뜨리는 것이라면 모두 증오했던 자로서 기회만 되면 기독교인들을 잡아서 죽음에 이루게 하고 스데반의 죽음에 결정적으로 동참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완전히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로서 그 외 모든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왜 자신이 그러한 변화를 했는지에 대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택하신다는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라 갈라디아서에 기록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목격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회의론자들의 개종이 가능했을까요?

 

2. 몰몬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성경이나 1세기 당시 제자들의 모습을 연구해 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후기성도로서 우리에게는 예수의 부활이 실제적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서 몰몬경이라는 경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몰몬경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고대 미대륙 주민들을 방문하시고 성역을 베푸신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정말 진리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몰몬경을 읽었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서였습니다. 특히 몰몬경이 번역되어 나온 19세기 초는 무신론적 사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몇몇 유럽 국가에서 무신론적 사상이 논의되었으며 19세기의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을 타고 본격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서 왜 그 시기에 몰몬경이 번역되어 나와서 무신론적 사상은 잘못된 것이며 성경에서 말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증거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몰몬경은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분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3. 현대의 선지자들의 간증이 있습니다.

 

1세기 당시 사도들의 주된 사명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자들로서 현대에도 선지자, 사도들을 부르셨습니다. 바로 그 영광스러운 사건은 현대의 첫 번째 선지자인 조셉 스미스가 성스러운 숲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첫 번째 시현이었습니다.

 

조셉은 그가 보고 경험했으며, 친히 음성을 들었던 부활의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많은 박해와 어려움, 오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간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간증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으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하여 드린 많은 간증 다음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드리는 간증은 이러하니, 곧 그는 살아 계시다는 것이니라.” (교성 76:22)

 

또한 우리 교회의 근본 원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 종교의 근본 원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 곧 그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간증이며, 우리 종교에 대한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이 원리에 부수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주된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에도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하도록 부름 받고 성임 받은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교회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여러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혹자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속죄를 믿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 위해 십자가가 없다는 것을 지목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보다는 바로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매주 일요일에 취하는 성찬은 어떻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특정 인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법은 생전에 했던 여러 업적들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후기성도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의 속죄에 대한 것도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분, 그리고 그분의 죽음을 통해 모든 이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나 현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기념하는 것도 예수님의 부활이 교회의 핵심이며 근본 원리임을 알려줍니다. 침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란 점도 잘 알려져 있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실제적임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삶의 변화를 누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저는 예수님이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분이라는 믿음에 있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확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몰몬경과 현대 선지자들의 간증들, 그리고 성신을 통해 주어진 명확하고 분명한 음성은 저의 경험과 느낌들이 사실임을 더욱 분명하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오늘날에도 살아계시고 이 교회를 인도하고 계심을 압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해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