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개인적 생각들

성찬식 말씀--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

모로나이 2012. 4. 24. 08:01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대략 다음 3가지 답변으로 요약 됩니다.

 

1. 하나님이 지키라고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순종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서 3:25절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이 이 지상에 내려온 이유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들이 다 행하는지를 보리라라고 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서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2. 구원 받기 위해서...

 

개신교회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여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야고보 2:26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여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실제 믿음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 의로운 행동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리와 성약 130:21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축복을 얻을 때에는 그것이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율법을 순종하였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3:10을 근거로 십일조를 내면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축복이 쏟아진다는 말은 듣죠. 지혜의 말씀을 지키면 교리와 성약 89편을 근거로 건강이나 지혜와 관련된 축복의 약속을 듣습니다. 이처럼 어떤 계명들에는 지혜의 말씀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약속과 같이 매우 구체적인 약속들이 주어져 있으며 기타 계명들의 약속은 구체적으로 명시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 세가지 답변은 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명을 지키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계명은 왜 지키는 겁니까....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5: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14:15)

 

그렇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다 하고 싶어 합니다. 누가 뭐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들은 기쁘고 힘이 넘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의무나 요구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에 따르는 축복들은 부수적인 선물로서 설령 주어지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들은 애초에 사랑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실제로 주님께서 구약 시대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의 본질은 바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요약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서기관 중에 한 명이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 마가 12:30,31)

 

1-4번째 계명(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5-10번째(부모를 공경하라부터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계명을 지키는 것을 단순히 축복을 위한 통로로, 마치 만병 통치약으로 강조할 경우 몇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정말 충실하게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사는 것이 힘들고 역경만 가득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계명을 지키면 축복을 받는다...십일조를 충실히 내면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복이 주어진다..고 말을 강조하곤 합니다. 힘들지만 참아라...주님께서 축복해 주실꺼다...

 

때로 어떤 분들은 어떤 특정한 계명을 지켜서 이런 저런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교회 모임도 충실하게 하고 세미나리도 열심히 참석했더니 학교에서 공부도 1등도 하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갔더라...복음 안에서 충실하게 여러 모임에 참석하다 보니까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물론 그러한 경험들은 복음에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여러 축복들에 대한 개인적 증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계명을 지키고 교회에 충실해야 할 이유로 확신하고 제시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심한 괴리감과 함께 배신감마저 느낄 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축복을 받지 않지? 뭔가 정성이 부족한 것인가?? 다른 사람들은 계명을 지킴으로 이런 저런 물질적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럴 때 느끼는 괴리감은 세상적인 방식대로 살면서 여유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더욱 커지게 됩니다.

 

 

또한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로움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만 여기거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로서 강조를 할 경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시편 19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합니다. 시편 필자의 고백처럼 주님의 말씀이나 계명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정말 달콤한 꿀과 같이 달고 기쁜 것인데도 그것을 의무로서만 제시하거나 사람의 의로움을 판단하는 근거로 강조될 경우 자칫 생활에 부담을 주고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만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무엇을 해라....이런건만 강조한다고하면 과연 그게 꿀처럼 달콤할가요? 교회의 청소년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잘 압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어떤 원리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며 그저 교회 지도자들이나 부모님들이 강요하는 것으로만 여겨지기에 교회 참석이나 경전 공부와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재미없는 것이나 강제로 행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교회와 거리를 두거나 예배 시간에 핸드폰에 빠져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거나 계명을 통해 축복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도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계명을 강조하기에 앞서서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지키면 축복을 받으니까...와 같은 개념도 어떻게 보면 맞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개념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그분은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지만 그분의 속성과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사랑의 방법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복음의 회복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 상대를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나타내신 일들에 대해 경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왜 우리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인가를 이해하면 계명에 대한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리라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경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러브레터요, 계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교회에 오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인 교회 회원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도 계명을 주시기 전에 그분을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구원의 계획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속의 계획을 알려 주신 후, 그들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나니” (앨마서 12:32)

 

잘 보십시오. 구속의 계획을 알려주신 다음에 계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선교사 토론을 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1토론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선지자를 보내주시고 교회를 회복 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토론에서는 구원의 계획을 통해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3토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처럼 불완전한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든 단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과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행복의 계획을 알려줌으로서 우리가 왜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4토론인 계명부분을 통해 우리가 그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성품과 능력에 반하면 반할수록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되며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처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분과 대화하는 시간에 감히 핸드폰 게임이 눈에 들어올 것이며 옆 사람과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마치면서 저는 하나님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하지만 바벨론에 끌려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세 명의 의로운 젊은이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고백을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다니엘서 3장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느부가넷살 왕에게 이 세 젊은이들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즉 하나님께서 구출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강한 간증을 전한 이 세 젊은이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우리가 바치는 헌신과 희생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축복으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 해도 그분을 원망하기는커녕 기꺼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고 담대하게 선언했던 이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강한 확신과 뜨거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회원들, 특히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 사랑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키는 계명들이나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강한 사랑의 표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