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로 평가되곤 합니다.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현실은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외적으로는 성장해 보일수도 있지요. 통계치로 보면 계속 성장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계속 침례는 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시겠지만 활동회원 8,9만이라고 자부하는 한국 교회의 평균 성찬식 참석자 수는 1만 명 안 팍이며 그 숫자는 수 십 년에 걸쳐 변함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봉사할 직책은 많은데 봉사할 분이 없어서 쩔쩔 맵니다. 종교교육원에 참석할 독신 성인들이 없어 종교교육원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회원이 없어서 몇몇 와드/지부는 통폐합되고 선교사가 없어 구도자가 없는 가운데 몇몇 가족만이 참석하는 곳도 많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들은 왜 그렇게 부정적인 면에 대해 언급하느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모든 것 잘되리”라고 찬송을 부르며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탄의 방법 중에는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도다”라면서 성도들을 유혹하는 경우도 있음을 잊진 말아야 합니다.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도다, 참으로 시온은 번성하나니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도다 할 것이라..이같이 악마가 그들의 영혼을 속여, 조심스럽게 그들을 인도하여 지옥으로 내려가느니라.” (니후 28:21)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혼을 속이는 가운데 시온에서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번성할 테니 그렇게 열심을 낼 필요도 없고 대충대충 신앙생활해도 좋다는 헛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근거없는 “긍정론”은 오히려 우리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갉아먹고 타성에 젖어 버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식의 형식적이며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저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주님이 주신 방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회원들 각자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에즈라 테프트 벤슨 회장님의 말씀에서 찾겠습니다.
“우리는 자주 스테이크 내에서 활동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찬식 참석률을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일합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젊은이들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합니다. 성전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왕국 성장에 중요하고도 크게 이비지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회원 개개인과 가족들이 정규적으로, 계속해서 경전 연구에 몰입한다면 이러한 기타 모든 활동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간증이 증가되고 기타 모든 활동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간증이 증가되고 헌신이 강화될 것입니다. 가족은 강화되고 개인적인 계시가 넘쳐 흐를 것입니다. ” (말씀의 힘, 성도의 법 1986년 7월호)
그렇습니다. 그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모임을 위한 모임을 해서 뭔가 만들어 내는 특별하고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성공 신화에서 빌려오는 그런 세상적인 처세술도 아닙니다. 바로 회원 개개인과 가족들이 정규적으로, 꾸준히 경전 연구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아 또 경전 읽으라는 소리구나...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뭐 열심히 하고 있는데....만족해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선지자들은 매 연차대회마다 경전을 읽으라고 강조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족으로 경전을 읽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요? 그렇게 해 왔는데 왜 벤슨 회장님이 약속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까라고 의문을 가질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경전 공부”는 단지 주어진 분량을 소리 내서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공과 시간에 인용되는 몇몇 구절들을 찾아서 읽어본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됩니다. 진실한 의미에서 경전 공부는 말 그대로 “연구”입니다. 교리와 성약에서도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내게 물어야 하나니” (교성 9:8)라고 해서 먼저 경전을 연구한 다음에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로서 그 올바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여쭈어 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 한 구절이라고 해도 그 구절에 담긴 복음의 원리를 찾아 묵상하고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열의입니다. 종교교육원과 세미나리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경전을 연구할 방법과 자료들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만 개인 스스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경전 연구는 그저 경전에 대한 지식 쌓기나 습관적, 의무적인 낭독에 불과할 뿐입니다.
해롤드 비 리 회장님 말씀.
"만일 어떤 사람이 경전과 일치하지 않은 어떤 것을 가르쳤을 경우 우리 모두는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경전을 읽지 않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그러한 현상이 현재 우리들에게 닥친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롤드 비 리 회장, 엔사인 1972년도 12월호 3페이지)
저는 이 경고가 단지 40년 전에 주어진 것으로 끝났다고 보지 않으며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읽지 않고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며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위험이라 했습니다.
교리와 성약 6편 2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라,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라. 나의 말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관절과 골수를 함께 쪼개기까지 하나니, 그러므로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할 적에 살아 있고 양날이 선 검보다 예리하다고 합니다. 말씀이란 검은 너무나 예리해서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육신적인 생각을 단 번에 제거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 권세를 가진 검을 힘을 다해 휘둘려야지 그저 폼만 잡고 흔들어 댄다면 아무 의미가 없고 자칫 다칠 뿐입니다.
실제 앨마의 경우는 그 말씀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또 이제 말씀의 전파가 백성을 인도하여 의로운 일을 하게 하는 큰 경향이 있으므로 - 참으로 그것은 칼이나 그들에게 일어났던 다른 어떠한 것보다, 백성들의 생각에 더 강력한 효과가 있었더라 - 그리하여 앨마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였더라.” (앨마 31:5)
백성들을 인도해서 의로운 일을 하게 하는 방법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바로 “말씀의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의로운 일을 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말씀의 힘입니다. 따라서 한참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는 세미나리를 통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과 회원들이 구도자를 단지 우정증진이란 방법으로, 이런 저런 활동 프로그램으로 교회로 인도했지 말씀의 힘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이들이 침례를 받고 저활동으로 돌아서게 되는 겁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진정한 의미에서의 거듭남은 침례와 성신의 은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가 먹어야 사는 음식으로 비유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 4:4)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이 복을 받게되는 의미인데 영적으로 굶주린 자야 경전에 담긴 말씀이 참으로 맛난 진미요 최상의 즐거운 일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니” (예레미야 15:16) 경전이 정말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임을 깨달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경전을 읽고 상고하며 기쁨을 발견합니다. 경전이 얼마나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고대에 기록된 어려운 책이나 의무감에 읽어야 하는 따분한 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개인이 경전을 연구하고 기쁨을 발견하고 있다는 식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와드 내에서 경전을 연구하고 상고하며 그 가치를 알고 누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만 경전 열심히 읽었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분위기 자체가 경전에 친숙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연단에서 선포되는 모든 말씀은 개인적 경험이나 신세타령이 아니라 경전과 살아 계신 선지자들의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아니라 경전이 들려 있어야 하며 우리가 전하는 간증은 경전을 읽고 그 속에서 발견된 진리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 주에 청소년 대회를 다녀온 청소년들이 간증을 전할 예정인데 그저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녀왔더니 재미있었더라는 식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배운 경전 구절을 근거로 해서 간증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을 위한 모임으로 안식일 시간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고 연구하는 시간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주일 학교 시간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성신이 교사님을 통해 전해주시는 그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사님이 과제로 주시는 경전을 읽지 않았으면 부끄러워해야 하고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읽고 연구하겠다는 열의로 가득차야만 합니다. 경전을 읽었는지 확인하는 일은 단지 교사님의 일이 아니라 성신이 우리 각자에게 확인하는 일입니다.
저는 회원 각자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개인적으로, 혹은 정원회 별로 노력을 한다면 벤슨 회장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부진하게 느꼈던 모든 활동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고 간증이 증가되며, 헌신이 강화되고 개인적인 계시가 넘쳐 흐를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안식일 지켜라, 선교사로 나가라, 성전 결혼해라, 가정 방문 해라 뭐 해라..는 식으로 해야할 목록을 쭉 읽고 강조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 각자가 경전을 읽고 그 속에 담긴 기쁨을 공유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이 모든 일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개인적인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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