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하나님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

모로나이 2013. 4. 10. 01:38

 

 

 

성경에는 신약의 예수님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증거는 많다. 이는 단순히 몇 개의 호칭이 동시에 사용되었다고 해서 쉽사리 내린 결론이 아니다. 전능자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호칭이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에게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욱 쉽게 예를 들어보자. 세상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많다. 오바마도 대통령이고 박근혜도 대통령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사실 말고도 여성이라는 조건이 붙을 경우 그 범위는 훨씬 줄어든다. 거기에 한국이라는 조건까지 붙으면 지칭하고자 하는 대상은 명확해 진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시피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에게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칭호가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여호와와 예수는 세상의 창조자였다. (이사야 45:11,12),(요한복음 1:1,3)

2.여호와와 예수는 세상의 구세주이다. (호세아 13:4)(누가복음 2:11)

3.여호와와 예수는 인간을 사망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호세아 13:14)(고전 15:20-22)

4.유대인들은 창에 찔린 여호와(예수)를 바라볼 것이다. (스가랴 12:10)(요한 19:34,36,37)

5.여호와와 예수는 출애굽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출애굽기 13:21,22)(고전 10:1-4)

6.여호와와 예수는 성도들의 남편이며 신랑이다. (이사야 54:5)(계시록 19:7,8)

7.여호와와 예수는 처음이요 마지막(알파와 오메가)이다. (이사야 44:6)(계시록 1:8)

 

여기서 살펴본 몇 가지 예만 살펴봐도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가 동일한 분임을 알 수가 있다. 앞서 든 예에서 3가지 조건이 일치할 경우에도 특정 인물로 좁혀지는데 하물며 이렇게 다양한 조건이 일치하는 분을 어찌 같은 분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만약 여호와와 예수가 다른 분이라면 우리에게 예수 외에는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사도 4:12)고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는데 구약에서 어찌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엘서 2:32) 게다가 이 구절을 들어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예수)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13)고 선언하여 여호와와 예수가 바로 우리에게 구원을 줄 유일한 이름임을 강조할 수 있을까? 다른 이름을 준 적은 없다면서 과거에는 여호와라는 분을 구원자로 주고 오늘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주었다는 것이 말이 될까?

물론 성경을 보면 여호와와 예수가 다른 분처럼 보이는 몇몇 구절들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러한 차이점을 근거로 여호와와 예수는 다른 분으로 결론을 내리며 오히려 공통적인 부분은 단순한 호칭이 두 분에게 사용된 경우로 희석해서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들은 계시가 주어지는 기본적인 원리 몇가지만 알게 되면 쉽사리 해결된다.

 

계시가 주어지는 기본적인 통로에 대해 요한계시록 1:1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 1:1)

 

즉 요한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주어졌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그의 종

 

, 요한이 받은 계시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였지만 그 계시를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심지어 그 계시조차 천사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종을 통해 주어진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지만 그 천사를 통해 주어진 계시는 천사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1:8절에서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는 했지만 그 말씀은 직접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천사를 통해 들은 것이었다.

 

이러한 계시의 통로는 출애굽기 3장에서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모습 속에서도 발견된다.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등장한 이는 여호와 아닌 여호와의 사자로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3:2)

 

하지만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라고 되어 있어 마치 여호와가 직접 나타나 본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6절에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임을 소개한다. 그러면 이 말은 누가 한 것인가? 여호와의 사자인가 아니면 여호와께서 직접 하신 말씀인가? 모세는 분명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셔서 말씀한 것으로 기록한다. 다만 그 사자의 입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전달된 것이다. 그러면 묻자.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한 분은 여호와인가 여호와의 사자인가?? 정답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된다. 그분의 사자는 다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경전에서는 이러한 것을 신성한 서임이라고 부른다. (서임이란 사전적 의미로 권리나 특권, 직위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모든 권세와 권위를 그분의 아들(여호와=예수)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그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사용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성역을 베푸시는 것이다. (실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증거하시기 위해 등장하신 경우(마태 3:16,17, 17:5, 요한복음 12:28)를 제외 하고는 인간들에게 나타나시지 않는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여호와와 예수가 다른 분인 것처럼 보이는 몇몇 구절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가 있다. 오해하지 말자. 구약의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다.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위임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 1장과 아들을 증거 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신 적이 없으시다. 구약에서 타락한 아담과 이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셨던 분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그분에게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아들 여호와(예수)이시다.

 

이 기본 열쇠를 가지고 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풀이해 보자.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적에 대응하기 위해 인용하신 구절이 여호와께서 주신 것인데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모순이라고 한다.(마태 4) 하지만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이 결국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안다면 예수님이 여호와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표현했다고 해서 모순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이는 할렐루야에서 말하는 가 여호와를 줄인 표현인데 요한계시록 19:4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할렐루야라고 했다하여 그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던 하나님은 아버지에게서 모든 권세를 부여받은 여호와셨다. 그 여호와께 돌린 찬송은 결국 그분에게 권세를 부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임을 감안해 보면 신약 시대 24장로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동일한 찬송의 표현을 사용한다 한들 그것이 큰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계시록을 기록한 필자가 하나님을 찬양하다라는 말이 구약 시대 히브리어인 할렐루야임을 알았기에 그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로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그리도 큰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다고 하셨다. (요한 14:13) 즉 아들이신 예수(여호와)께 돌리는 찬송과 영예는 결국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할렐루야가 말 그대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라서그 표현을 아버지께 사용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마치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전언을 전달했다고 하여 그 대변인을 대통령과 동일인물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