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하나님

삼위일체의 정체는?

모로나이 2012. 8. 15. 02:55

 

 

 

(삼위일체를 묘사한 그림)

 

 

 

몇몇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원들을 기독교인이 아니라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 중에 대표적인 것은 바로 그들이 삼위일체에 관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부분은, 오직 성경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들이 성경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으면서도 그저 신비라는 이름으로 막연하게 받아들이는 삼위일체를 참된 기독교인을 구분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심지어 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단정 짓는 그 이중적인 잣대입니다.

    

 

(니케아 공의희 장면)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특정 교리들을 정통이란 이름으로 확립하기 이전에 예수의 부활을 따르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와 바울 역시 기독교인이었고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기 이전에 살면서 삼위일체라는 교리에 대해 가르친 적도 없고, 그에 대해 알고 믿었다는 근거도 전혀 없는데 왜 현대의 자칭 정통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를 믿어야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는 잣대를 만들어 상대방을 이단이니 뭐니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몇몇 이들은 니케아 공의회가 성경의 원리를 단순히 확립한 것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볼 지도 모르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 내에서 예수님의 신성 문제를 둘러쌓고 논쟁이 벌어지자 이것이 국가 분열로 조장될 것을 우려하여 황제 자신의 주선으로 확립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즉 그에게는 진리를 수호하고 옹호할 의도가 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의 분열을 막고자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특정 교리를 확립하고 그것을 강제로 반포하여 그에 반하는 세력들을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로 탄압해서 없애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사실 니케아 공의회 이전 기독교의 정통 믿음에는 오늘날 말하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성자(聖子) 종속설(Subordinationism)이란 개념이 기본이었습니다.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rev. ed. (New York: Harper, 1978), 247248.) 이 이론은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지배되어 있거나 (하위로)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개념이 성립하려면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분리된 존재일 수밖에 없지요. 이는 성경에서도 뒷받침되는 내용이며 (요한 14:28) 실제 공의회 이전 기독교인들의 정통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정통 믿음이 공의회 이후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새로운 교리로 탈바꿈되었지만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순종했고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은 분임을 알려줍니다. (요한 8:42, 12:49) 심지어 그분은 아들로서 이 지상에 오셨을 때도 순종했고 아버지가 더 크시다는 고백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요한 14:28, 5:19, 히브리 5:8) 심지어 승천하셔서 높임을 받으셨지만 그곳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아버지께 복종하고 계십니다. (빌립보 2:9, 고전 15:28) 예수님의 침례 장면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께 간절히 탄원하시던 모습을 봐도 오늘날 이야기하는 삼위일체 교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성경을 아무런 편견 없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해서인가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인간의 전통을 더 강조하여 공의회를 통해 전해 내려온 삼위일체라는 전통을 기독교의 기본으로 가르치며 그것을 하나님을 이해하는 유일한 도구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마태 7:7,8)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보다는 인간의 오랜 전통으로 만들어진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더 고수하는 일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며 그분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몇몇 이들이 삼위일체를 지지한다고 근거로 제시하는 성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에 대해선 어떻에 이해해야 할까요?

 

1.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이 구절은 초기 삼위일체 논쟁에서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가 진리다...뭐 이런 식의 단순 논리였죠. 그것에 반대되는 수많은 구절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이 구절만을 들어 하나님과 예수님은 사실 동급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남성 명사가 아니라 중성 명사입니다. 그리스어에서 남성 명사는 사람이나 특정 존재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중성의 의미에서는 목적에 있어서 하나를 지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편견없이, 그저 문자 그대로 이 구절을 읽으면 예수님과 하나님은 목적이나 뜻에서 하나가 되신다는 의미로 읽혀집니다. 오직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만이 이 구절을 삼위일체라는 특정 교리를 증거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hen)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숫자상으로 하나(heis)오히려 우리는 목적에서 있어서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어 hen38절에서 다시금 반복됩니다.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은 개인의 차이점과 개성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상호 연합과 사랑을 통해서 그분들은 한분이 되십니다.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Volume 5)

 

,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씀에서 하나는 분리되지 않은 유일한 한 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적이나 의지에 있어서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하나가 되셨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께서는 다음의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 17:21-23)

      

2. 요한 15:7-8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한글판)

 

흠정역 성경: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오,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 일치하느니라.“

 

개역 개정판에는 없는 내용이고 흠정역 성경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말씀보전학회와 같은 극단적 흠정역 주의자들은 이 성경 구절이 유일하게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후대에 성경에 추가된 것으로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약 4700개의 사본이 존재하며 초대 교부들이 인용한 구절로 최소 10만 개의 인용구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개역 한글판에 나온 것처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라는 구절로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니케아 공의를 통해 삼위일체가 확립되던) 4세기가 흐른 다음에서야 흠정역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오,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 일치하느니라.”는 식으로 등장합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La Habra, CA: The Lockman Foundation), 1 John 5:78.)

 

그렇기에 에라스무스는 이 구절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기에 1500년대 그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 추가 개정판에서 이 부분을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1516년 에라스무스의 번역에 기초한 루터의 독일어판 신약 성경에도 이 구절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요. 그런데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이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서 빠진 것을 알고 격노했고 에라스무스에게 항의하였습니다. 그 때 에라스무스는 자기에게 단 한 구절이라도 좋으니 그리스어 사본에서 그 부분을이 포함된 사본 보여준다면 다시금 추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그 때 어떤 이들이 위조된 사본을 만들어서 에라스무스에게 주었고 그 이후 다음 개정판에는 다시금 삼위일체 부분을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보다는 그들의 교리와 신조, 공의회의 가르침을 더 우선시한 몇몇 이들의 극단적인 모습을 이 사건을 통해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성경 번역본에서는 이 구절이 후대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삭제한 채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를 주장하기 위한 성경적인 근거는 너무나 희박하고 그 교리를 위해 성경의 몇몇 주된 가르침들을 왜곡하고 인간의 전통만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데살로니가 후서 2:3)라는 바울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 왔는지를 또한 명확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 17:3)

 

영생의 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는데 너무나 많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삼위일체라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어 그분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