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적대시하는 이들은 종종 그들의 소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만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서는 그들의 주장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서 관련 문헌들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그대로 노출되어 신앙적인 위기를 경험하는 이들도 생긴다. 사실 그렇다.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그것도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몇몇 이들은 의도적으로 자극적이고 민감한 사항을 부풀려서 표현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Fawn M. Brodie의 “No Man Knows My History: The Life of Joseph Smith Summary”(어느 누구도 내 역사를 알지 못한다. 조셉 스미스의 일생)라는 책이 있는데 겉으로는 객관적으로 조셉 스미스에 대해 그리는 것 같지만 실상 그 내면을 보면 작가의 은밀한 의도대로 자료가 편집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예로 지나 헌팅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당시 성도들에게 훌륭한 신앙의 여인으로 여겨졌으며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수많은 여인들의 삶 속에 봉사의 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 의해 편집된 그녀의 일생은 종교적 광기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헨리는 “몰몬교 예언자에 아내를 두 번이나 빼앗긴 비운의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지나 헌팅턴이 헨리와 결혼하고 임신할지 얼마 되지 않아 조셉 스미스가 천사가 자기를 죽인다면서 협박했다면서 그녀를 또 다른 아내로 삼고 결혼을 한다. 그런데 조셉이 얼마 뒤 사망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브리검 영이 헨리를 선교사로 보내고 그 틈을 타서 지나를 그의 복수 아내로 맞이하고 심지어 그 아이들조차 자기의 소유물로 선언하고 만다. 아내를 그리워 하는 헨리는 그녀에게 수많은 연모의 편지를 보내지만 그 사실을 안 브리검 영은 그를 파문 조치해 버리고 마는데...뭐 대략 이런 내용이다...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드라마가 없다. 그래서 실제 이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몇몇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교회를 떠나거나 자신이 알게 된 이 역사적(?) 사실을 회원들에게 알리는 것이 마치 자기가 받은 소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과연....그런가?? 수많은 역사적인 문헌이라고 언급하면서 증거라고 떠들어데는데...과연 이런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가?? 물론 아니다. 이에 대해 하나씩 반박해 보겠다.
1. 조셉 스미스는 헨리의 임신한 아내인 지나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여 성적 관계를 맺었나??
지나는 1840년에서 1841년 초반에 헨리에게 구애를 받아 3월 7일 결혼했다. 지나의 나이가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사이였으며 그녀의 남편 헨리는 그녀보다 4살이 많았다. 헨리는 열성적인 선교사인 동시에 지나 가족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 결혼은 당시 나부의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당시 교회 회장 보조이기도 한 존 C 베넷에 의해 집행되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지나는 1841년 10월 27일, 미시시피강 근처에서 그녀의 오빠인 디미크에 의해 조셉 스미스에게 인봉되었다고 한다. 인봉 당시 그녀에게는 뱃속에 첫째 아이를 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혹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곤 한다. 어떻게 조셉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을, 그것도 임신한 상태의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이 “인봉”은 실제적인 결혼이 아닌 당지 종교적인 의식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인봉 의식 자리에 그녀의 남편인 헨리는 그 자리에 참석해 있었고 실제로 그 의식에 대한 기록에 서명까지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헨리와 지나는 함께 부부로서 생활하면서 아이를 양육하였다. 이것이 조셉 스미스와의 인봉이 실제 결혼이 아닌 단지 종교적 의식의 하나였을 뿐임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그녀의 일생을 철저하게 왜곡한 Fawn M. Brodie는 그녀의 저서에서 헨리가 그의 아내 지나와 조셉이 인봉하는 것을 절대로 몰랐고 그 당시(1841년 10월) 존 디 리와 남부 일리노이에서 선교사로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기록은 (동시대 어느 기록에서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순전히 그 저자의 추측에 의존해 있을 뿐이다. 이 당시 헨리가 나부를 떠나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그 어떤 역사적인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이들은 헨리가 조셉 스미스와 친밀한 관계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나와 조셉의 인봉 의식 당시 증인으로서 섰다고 주장해왔다. (Richard Neitzel Holzapfel and Jeni Broberg Holzapfel, Women of Nauvoo (Salt Lake City: Bookcraft, 1992), 98.) 토드 콤튼 같은 학자들은 여러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지나를 포함한 여러 남편이 있는 여인들은 남편들이 조셉 스미스와의 인봉 의식을 알고 있었고 이를 승인해 주었다고 발표했다. (Todd Compton, “A Trajectory of Plurality: An Overview of Joseph Smith’s Thirty-Three Plural Wives,” Dialogue: A Journal of Mormon Thought 29, no. 2 (Summer 1996), 22-23.)
그뿐인가? 조셉 스미스와 다처 결혼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 여인 사이에서 출생했다고 알려진 자녀가 전혀 없었다는 점. 어떤 이들은 막무가내로 낙태를 했을 것이니 정관 수술을 했을 것이니 근거 없는 억측만을 쏟아낼 뿐이지만 실제 DNA조사를 통해서 봐도 조셉과 에머 스미스 사이 외에는 그 어떤 자녀도 없었다. (당시 몇몇 이들의 추측성 발언이 전부??) http://blog.daum.net/ldsbae/13738841
참조
이러한 자료들을 편견이 아닌 상식선에서 살펴보자. 지나에게는 남편이 있고, 또 그 남편이 증인으로 선 자리에서 조셉 스미스와 “인봉”이란 의식을 했다. 그런 의식을 한 이후에도 지나는 그녀와 남편인 헨리와 살면서 아이들을 낳았다. 그런데 여기 어느 부분에서 몇몇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조셉 스미스가 임신한 다른 남편의 아내를 취하여 부부 관계를 맺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릴 자료들을 찾을 수가 있는가?? 비비꼬인 생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뻔히 드러난 일을 가지고 그런 막장 드라마 식의 억측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지나에게 있어 조셉 스미스와의 인봉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 왔을까? 과연 누군가의 말마따나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조셉이 강제와 협박으로 지나에게 결혼할 것을 강요했던 것일까?? 어떤 이들은 조셉이 이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천사가 와서 자신의 위치와 교회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지나의 후손들이 전래 내려온 내용이라면서 언급한 것일 뿐 조셉이 실제로 지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는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 3자의 말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고백을 통해서 들어봐야 한다. 지나는 그녀의 자서전 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제가 하나님께서 앞으로 올 세상에서 가족 관계로 맺어지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해의 왕국의 율법에 관한 계시를 전해주시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경전을 살펴보았으며 겸손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렸습니다. 그 때 저는 스스로 나의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요구하시는 것이라는 간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Autobiography of Zina D. Young, no date, part of the Zina Card Brown Family Collection (1806-1972), LDS Church Archives, MS 4780, box 2, folder 17.)
또한 그녀는 노년에 RLDS에 속해 있는 존 더블류 와이트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기록에서도 자신이 조셉과 맺은 인봉 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성스럽기에 그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삶이나 죽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으며 수 년 동안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이 사실을 말해줄 것입니다. 저는 꿈을 꾸는 망상가는 아니지만 분명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꿈꿨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의 사업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린 저에게 이것은 계시로서 주어졌습니다. 제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제 마음 속으로 다가왔습니다.” (Interview of John Wight with Zina D.H. Young, October 1, 1898, “Evidence from Zina D. Huntington-Young,” Saints Herald, 52 (11 January 1905), 29.)
자 보자..지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인봉의식에 대한 그녀의 경험을 말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압력이 아니라 스스로 경전을 읽고 기도한 가운데 선택한 것이며 그녀의 삶이나 죽음보다도 더 중요한, 그렇기에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성한 종교 의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 의식의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어떤 설명도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그녀의 고백에 의하면 이런 인봉으로 인해 지나의 가족과 조셉 스미스의 가족이 앞으로 올 세상에서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는 있다.
2. 브리검 영 회장은 조셉이 죽자마자 지나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여 딸을 낳았는가?
정말 전후 문맥은 전혀 다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만 짜깁기 해서 만들어 놓은 주장일 뿐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1844년 조셉 스미스가 폭도들에게 암살당한 이후 나부에 있는 성도들은 성전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1846년 1월 3일 이른 아침 헨리와 지나는 성전에서 씻음과 기름부음, 그리고 엔다우먼트 의식을 받았다. (두 부부가 먼저 엔다우먼트 의식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들은 아직 충실한 부부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846년 2월 2일 그들은 다시금 성전에 돌아와 의식을 받는다. 하지만 남편 헨리는 의식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고 지나만 두 번째 기름 부음 의식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지나는 브리검 영과 인봉 의식을 진행하게 된다. 이 자리에는 지나의 아버지와 남편인 헨리, 그리고 헨리의 선교사 동반자인 존 디 리가 증인으로 참석한다. 인봉의식을 받은 이 시기는 나부를 떠나기 1주일 전이였으며 남편 헨리와의 사이에서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런 전후 문맥은 전부 삭제하고 조셉이 지나와 결혼하고 죽자 얼마 안 있어서 브리검 영이 그녀를 아내로 가로챈 것처럼 표현한다. 그것도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동일한 아이로 착각하고 마치 지나가 한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몇 개월을 두고 조셉과 브리검 영에 의해 아내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참으로 무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왜 브리검 영은 조셉이 죽은 뒤 2년 뒤에 왜 지나를 인봉했을까? 누구의 말마따나 조셉의 아내를 그냥 가로챈 것인가??
사실 조셉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안남은 것을 알고 나서 십이사도들에게 자신과 인봉한 영적 과부들을 잘 돌봐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는 성경 구약의 나오는 관습인 형사취수제의 형태라고 추측된다. (신명기 25:5-6, 창세기 38:8, 마태 22:24, 마가 12:19, 누가 20:28, 룻기 4:5, 10) 다시 말해 이 제도는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로서 유목민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나고 구약 시대에도 행해진 제도이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제도는 “형이 죽으면 재산이 형수가 물려받게 되고, 형수가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혼인하게 되면 원래 혈족의 것이었던 재산이 혈족의 바깥으로 유출하게 됨을 염려하여 나타난 제도이다. 또한 형수에게 상속권이 없을 경우에는 형수에게 생활능력이 없게 되므로 그 형수를 혈족이 부양해 준다는 의미도 있게 된다.”고 설명해 왔다. 영적인 의미에서 조셉 스미스가 형이라면 그 뒤를 이은 십이 사도 정원회는 동생의 개념이 된다. 지나의 손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십이사도들에게 그의 과부들과 결혼해서 잘 돌봐 줄 것을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경우 조셉의 복수 아내들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십이사도 중에 한 명을 선택했으며 십이사도들은 그들에게 영예와 보호를 약속했습니다.”(Martha Sonntag Bradley and Mary Brown Firmage Woodward, “Plurality, Patriarchy and the Priestess: Zina D.H. Young’s Nauvoo Marriages,” Journal of Mormon History 20)
이런 기록에 의하면 지나와 브리검 영의 인봉은 브리검 영에 의해 강압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 지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고, 실제 이 결혼 역시 영적인 의미에서의 진행된 것일 뿐 실제 결혼관계는 아니었다. 조셉과의 인봉 의식처럼 브리검 영과의 인봉 의식 때도 아버지와 남편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물론 훗날, 유타로 이주한 이후 지나는 남편과 헤어지게 되고 브리검 영의 실제 아내로 들어와 자녀를 낳게 된다.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조셉이 죽은 뒤에 브리검 영이 그녀를 아내를 취해 관계를 맺어 딸을 낳은 것처럼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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