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일부다처

지나 헌팅턴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들...(2)

모로나이 2013. 10. 3. 01:46

 

 

 

 

3. 브리검 영은 헨리와 지나가 헤어지도록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는가?

 

앞선 글에서 우리는 조셉이 죽은 지 2년 뒤에 지나가 브리검 영에 의해 인봉되었다는 사실을 보았다, 이 일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어떤 분이 자꾸만 조셉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브리검 영이 지나를 가로챘다는 식으로 언급을 해서이다. 분명 시기적으로 2년이란 차이가 있으며 브리검 영과의 인봉 역시 지나의 아버지와 남편이 증인으로 있는 곳에서 진행되었음을 밝혔다. 그럼 과연 브리검 영은 지나와 인봉된 이후 지나와 신혼살림(?)을 차렸던 것일까? 역사적인 증거에 따르면 이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 이후에도 헨리와 지나는 남편과 부부로서 살았음을 알려준다. 성도들이 나부에서 강제로 추방된 이후 헨리와 지나는 다른 수천명의 성도들과 함께 아이오와 평원을 지나면서 극심한 고통을 인내해 나갔다. 그런 이주 기간이었던 1846322일 헨리와 지나는 채리톤 강가에서 둘째인 핸리 제이콥스를 출생한다. 그들이 현재 미국 인디애나주 라그란지카운티에 있는 마운트 피스가 [Mount Pisgah]에도착할 당시 이 지역은 아직도 개척지였으며 거친 서부 지역으로 조직화된 정부가 존재하지 않던 곳이었다. 1846521일 지나의 아버지인 윌리엄 헌팅턴은 이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세속적, 영적인 업무를 보살피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데 몇몇 이들은 헨리와 지나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을 때 브리검 영의 명령(?)에 의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브리검 영이 헨리를 선교사로 보내버리고 그 사이를 노려 지나를 강탈했다는 식의 엽기 소설을 쓰는 이들도 있다. 이 이야기를 주장한 Fawn Brodie는 이 사실에 대한 증거로 윌리엄 홀(William Hall)과 스텐하우스(Stenhous)의 인용문을 들고 있다. 그러나 주어진 증거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며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던 내용이 후에 여러 작가에 의해 반복되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왜곡되어 버린 경우다.

 

윌리엄 홀은 브리검 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몰몬들에 의해 피스가라 부르는 지역에서 브리검 영은 현명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곳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다름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 이가 이제 그것을 벗어날 시간이 왔습니다. ”제이콥 형제님그가 말했다. 형제님께서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인(지나)은 형제님께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조셉 형제의 영적인 아내며 그에게 인봉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대리자로서 이 자리에 서서 그녀의 아이들을 나의 소유물로 주장합니다. 형제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서 다른 아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십시오. 형제님의 영적인 자매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William Hall, The Abominations of Mormonism Exposed (Cincinnati, Ohio: I. Hart and Company, 1852), 43-44.)

 

그렇게 말을 하면서 헨리를 선교사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브리검 영의 이 말은 헨리와 지나가 피스가에 도착한 518일에서 그가 선교사로 떠난 61일 경에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여러 가지 허점들이 보이며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무하다. 예를 들어 브리검 영이 이 말을 수백명이 듣는 곳에서 했다고 하지만 동시대의 그 어느 기록(일기나, 편지 등)에서도 이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브리검 영이 헨리에게 한 말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꼼꼼하게 일지를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페티 세션(Patty Sessions)이라는 사람은 헨리가 속한 대대와 함께 피스가에 도착했으며 184662일 그곳을 떠났는데 브리검 영이 그 말을 할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고 알려진 수백 명 중에 한명이었다. 하지만 세션은 그의 일기에서 지나를 헨리의 성을 딴 지나 제이콥스제이콥스 자매라고 계속 호칭함으로서 당시 헨리와 지나는 부부사이라는 것을 드러내었다. (diary entry for June 3, 1847, in Mormon Midwife: The 1846-1888 Diaries of Patty Bartlett Sessions) 만약 그가 브리검 영의 말대로 헨리가 지나를 떠나 선교사로 가고 브리검 영이 그녀와 그녀의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선지자에게 충실한 이 사람에게 있어 이런 표현들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가 없다.

 

또한 지나의 아버지이며 피스가를 감리하고 있던 윌리엄 헌팅턴의 기록에 의하면 518일에서 6월 초에 브리검 영 회장과의 공식적인 모임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 모임은 특정한 개인들을 위한 기도 모임과 헌팅턴 집 근처 숲에서 열린 모임이었는데 그 어느 기록에서도 브리검 영이 수백명 앞에서 헨리에 대해 했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다. (Diary of William Huntington, June 1, 1846 (BYU Special Collections, Vault MSS 272), 37) 충실하게 모임을 기록한 자였으며, 어떻게 보면 브리검 영이 사위였기에 이를 기록으로 남을 법한데도 윌리엄은 이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한 바가 없다. 이처럼 동시대 어느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또한 이 이야기를 뒷받침 해준다고 알려진 스텐하우스의 글을 보면 브리검 영이 남편들을 불러 모아 그 아내들을 자신의 소유로 선포하고 그 남편들은 선교사로 보냈다는 기록을 남겼다. (T.B.H. Stenhouse, The Rocky Mountain Saints (Salt Lake City: Shepard Book Company, 1904)) 하지만 이 역시 역사적인 사실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스텐하우스는 영국에서 1845714일에 침례를 받고 1855년까지 미국에 온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와 아내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3년 반동안 봉사했으며 유타로 온 것은 1859년이었다. 브리검 영이 남편들에게 아내와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선포하고 남편들은 선교사로 보냈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시기가 1846년경인데 1859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에 온 이 스텐하우스가 어떻게 이 사실을 들어 글을 썼다는 것인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스텐하우스가 쓴 이 책은 그가 교회를 등진 이후 3년 뒤에 출판한 것이다.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 이가, 그것도 자신이 들어본 적도 없는 내용을 책을 쓴 것을 가지고 우리가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자료로 여길 수가 있을까? (이들이 쓴 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은 후대 몇몇 저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살을 붙여가면서 마치 그것이 감추어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인 것처럼 부풀려졌다.)

 

4. 헨리가 선교 사업을 떠난 이후 지나는 브리검 영과 부부로 함께 살았는가?

 

만약 브리검 영의 말이라고 알려진 것이 사실이라면 헨리가 선교사로 떠난 직후 지나는 그녀의 아이들과 브리검 영 집에 들어가 부부로서 살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지나는 남편이 선교사로 떠난 이후 브리검 영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인 윌리엄 헌팅턴 집으로 이주해서 자녀들과 살았다. 그녀는 이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남편이 떠난 이후 나는 윈터 쿼터스로 가야만 할 때까지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홀로 살아야 했다.” (Autobiography of Zina D. Young, no date, p. 15, part of the Zina Card Brown Family Collection (1806-1972))

 

즉 그녀는 남편이 선교 사업을 하는 동안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아버지와 머물면서 힘든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 이후 그 지역에 질병이 돌기 시작해서 정착한 지 6개월 안에 약 150명이 생명을 잃었다. 지나의 아버지인 윌리엄 역시 184689일에 이 질병에 걸려서 10일 뒤인 19일에 사망하고 만다. 지나는 5살이 안 된 두 아이들을 거니는 어머니가 되어야 했으며 그 어떤 도움이나 보조 역시 받을 수가 없었다. 당시 그녀의 모든 가족들은 다 떠난 상태이며 남편인 헨리는 남동생 올리버와 선교사업을 하고 있고, 아버지인 윌리엄 마저 병으로 사망하고 말자 그녀는 그 지역에 남아 다른 이들과 함께 거주해야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지나가 브리검 영 회장과 부부 사이였다면 이렇게 아무런 도움 없이 따로 떨어진 지역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나중에 그녀의 사정이 알려지자 브리검 영 회장은 그의 사위인 찰스 데커를 보내 지나와 두 자녀를 윈터 쿼터스로 이주시킨다. (Maureen Ursenbach Beecher, “Each in Her Own Time: Four Zinas,” Dialogue: A Journal of Mormon Thought 26, no. 2 (Summer 1993), 129.) 이것은 남편을 선교사로 보내고 아버지를 잃은 상태에서 어린 두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지나의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한 뒤에 나온 결정이지 애초부터 헨리를 보내고 지나를 차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라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지나의 남편인 헨리 역시 이 어려운 시기에 지나와 두 자녀가 브리검 영이 있는 윈터 쿼터스로 가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선교사업 나가있는 동안 아내 지나에게 쓴 편지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의 고백과 함께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는데 마지막 구절에서 다시 한 번 브리검 형제와 그 가족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보낸다는 말을 포함했다. 이것은 아마도 홀로 남겨진 아내와 자녀들을 돌봐주는 브리검 형제와 그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보인다. (Letter from Henry B. Jacobs to Mrs. Zina D. Jacobs, Brooklyn, L.I. NY, to Camp of Isreael, Grand Isleand, August 19, 1846, LDS Archives (MS 3248).)

 

 

5. 헨리와 지나가 이혼한 이유.

 

당시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개척지이고 조직화된 정부가 없기 때문에 역시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지나와 헨리의 그 어떤 기록에서도 왜 이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헨리가 선교 사업을 마치고 윈터 퀴터스로 이주해 왔을 때 그에게 이미 다른 아내들이 있었다는 점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헨리의 새로운 아내는 아세네스 벱쿡으로 22살 된 과부였으며 다섯 살된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Oa J. Cannon, History of Henry Bailey Jacobs (Typescript, n.d.), p. 29) 1847년 헨리가 그의 새로운 아내와 아들과 함께 윈터 쿼터스로 돌아왔을 때 지나가 18485월 솔트레이크 계곡으로 떠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잘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런 다소 어색한 상황 속에서 1848년 지나가 동생인 올리버와 솔트레이크 계곡으로 이주했을 때 헨리와 그의 새로운 아내 역시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지나가 1848920일 경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헨리와 그의 아내가 그곳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어서 아마 이동하다가 다른 지역,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로 도중에 길을 바꾸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뿐이다. 이 시기가 추정적으로 헨리와 지나가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보일 뿐이지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870년대와 1880년대 상호부조회를 이끌던 몇몇 여성들에 대한 기록들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 지나에 대한 언급이 있다. 어거스타 조이스 크로체론이라는 자가 글을 썼는데 이렇게 되어 있다.

    

지나 자매는 나부에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지만 행복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녀는 점차적으로 그녀의 남편과 헤어졌다” (Augusta Joyce Crocheron, Representative Women of Deseret: A Book of Biographical Sketches to Accompany the Picture Bearing the Same Title (Salt Lake City: J.C. Graham & Company, 1884), 12.)

 

당시 저자의 관점들이 들어간 표현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정을 추측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결혼 관계가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남편이 선교사로 떠난 사이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힘든 상황에 처해 내적으로 많은 갈등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갑작스레 남편이 선교지역에서 다른 아내를 만나 윈터쿼터스로 이주해 왔다..이런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들이 지나와 헨리를 멀어지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녀가 만나 이혼하게 될 때는 피치 못할 사정과 말로 표현 못할 아픈 사정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왜 후대 몇몇 이들은 종교적인 광기에 의해, 브리검 영이 사주해서 이혼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일까?? 그 어느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그 이후 지나는 솔트레이크로 이주하여 브리검 영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공식적으로 브리검 영의 아내로서 살게 되며 딸을 출산하게 된다.

 

6. 헨리가 파문된 이유.

 

누군가는 헨리가 지나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자 그것을 참지 못한 브리검 영이 그를 파문한 것처럼 그리고 있으나 이 역시 근거 없는 추측과 상상에 의한 것일 뿐이다.

 

헨리는 아세네스라는 여인과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1850년대 아리조나에서 사라 테일러와 결혼한다. 그런데 이 결혼은 합당한 권세에 의해 집행된 것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851년 그는 교회에서 징계처분을 받는다. (Journal History, 26 January 1851, LDS Church Archives) 그 이후에 자신들과 결혼한 여인들과 관계가 깨지고 지속적으로 불법적인 결혼 관계를 이루어 나가자 결국 185849일 교회 대회에서 파문조치 된다. (Caroline Barnes Crosby, No Place to Call Home: The 1807-1857 Life Writings of Caroline Barnes Crosby, Chronicler of Outlying Mormon Communities, edited by Edward Leo Lyman, Susan Ward Payne, and S. George Ellsworth (Logan, Utah: Utah State University Press, 2005), 186.)

 

물론 그 이후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로 인해 방황을 하고 과거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나에게 몇 번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후에 헨리와 지나 사이에서 나온 두 아들이 아버지인 헨리를 설득하여 다시금 유타로 이주하게 했고 다시금 활동적인 회원으로 여생을 마무리 하게 된다. (Joseph Smith Jacobs, The Life of Henry Chariton Jacobs, 1846-1915, (Salt Lake City: typescript, Utah State Historical Society, 1960), 4.)

 

즉 파문의 이유는 지속적으로 불법적인 방식으로 여인들을 만나 관계를 맺다가 실패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것일 뿐 단순히 지나에게 연모의 편지를 보냈다고 브리검 영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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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사적으로 명백하게 지나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동시대 증언자들의 증언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인 의도를 지닌 이들은 몇몇 자료들을 편집해서 그들이 만들고 싶은 형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신앙을 부정하고 싶은가요...아마도 이 글을 보고 나서도 몇몇 분들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반복되는 레파토리, 즉 선지자들이 임신한 남편 있는 여인과 어떻게 결혼하느냐, 조셉이 죽자 마자 브리검 영이 지나를 채가고 다른 지도자들도 아내들을 나누어 가졌다는 식의 의견을 반복할 것입니다. 닥치고 반대만을 할 것이라는 점이죠

 

그렇기에 그런 부질없는 비판에는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관련 글들을 삭제할 예정입니다. 비판을 하실 적에는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참된 것인지 조목조목 자료를 살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경우에는 정말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서 답변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앵무새 인증만 반복할 경우, 엑스모에서 자주 쓰는 것처럼 저 역시 통보없이 삭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