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대문에서 밝힌 바처럼 이 블로그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공식적인 사이트가 아닙니다. 당연히 이 곳에서 다루고 있는 몇몇 교리나 정책, 역사적 해석 역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우리 구원에 필요한 핵심 교리가 아닌 이상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서 계시로 직접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계시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를 수가 있다는 사도 베드로의 경고에서도 주어진 바와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3:16)
실제로 조셉 스미스 역시 핵심적인 교리와 그렇지 않은 교리들을 분리하여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종교의 근본 원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 곧 그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간증이며, 우리 종교에 대한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이 원리에 부수되는 것입니다.”(교회 정사 3:30)
여기서 조셉은 “근본 원리”와 이 원리에 부수되는 것들로 언급된 “그 밖의 것들”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이런 근본 원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나 그렇지 않은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몇몇 분들이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을 마치 교회의 교리인것처럼 오해될 여지가 있게 설명한 경우도 있긴 합니다.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발표를 하지 않았어도 사도라는 입장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분명히 공신력 있는 발언을 받아들여질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13년 후반기 연차대회에서 우흐도르프 회장은 토요일 오전 모임에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약 200년에 걸친 교회 역사에서...사람들에게 의문을 일으킬 만한 말과 행위도 일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교회 회원들이나 지도자들이 말 그대로 실수를 했던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 원리, 교리와 맞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리아호나 2013년 1월호 22페이지)
우흐도르프 회장의 말에 의하면 과거 교회 지도자들의 우리의 가치관과 원리, 심지어 교리와 맞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였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도 몇몇 이들은 계시나 경전으로 밝혀진 바가 없는 “부수적인 것들”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해 왔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그에 따라 나름대로 해석을 내리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을 대중들에게 전달해서 마치 그것이 영감 받은 말씀인 양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그러한 과거의 아픈 경험들을 통해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연차 대회의 말씀에서도 “핵심적인 교리”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할 뿐, 그 외 부수적인 교리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교회의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로 전달되지 않은 이상 어떤 교리적인 해석도 개인적인 영감이나 해석일 뿐 교회 전체를 위한 공식적인 입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적인 사이트가 아닌 이상 모든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의 경우 “이 사이트는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다루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교리의 상당수도 몇몇 변증가들을 비롯한 저 개인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복음의 핵심 원리와 조화를 시키며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계시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지 추가적인 계시나 증거가 나올 경우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영감 받았다는 지도자들이 과거에 한 말을 어떻게 현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과거 지도자들의 실수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냐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영감 받은 기록들을 보면 과거 선지자들의 모습 속에서도 유사한 것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렛의 동생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야렛의 동생은 “사람이 일찍이 너와 같이 그처럼 큰 신앙으로 내 앞에 나아온 일이 결코 없었느니라” (이더서 3:9)는 말씀처럼 위대한 신앙을 가진 이라고 평가받은 선지자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지 “주께서는 야렛의 형제가 보는 데서 아무것도 감추실 수 없으셨나니, 그리하여 그가 저에게 모든 것을 보이셨음은 저를 더 이상 휘장 바깥에 머물게 할 수 없으셨음이라." (이더서 12:21)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앎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주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시기 전까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에 저가 주께 여짜오되, 내가 주의 손가락을 보고 주께서 나를 치실까 두려워하였사오니, 이는 주께서 살과 피를 가지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음이니이다.“ (이더 3:8) 그 이후 야렛의 동생은 주님께 몇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처럼 위대한 큰 신앙을 지녔던 선지자도 주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그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전에 알고 있던 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그것을 가족들이나 주변 이들에게 전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야렛의 동생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갖고 있던 신앙이나 영적 지식을 가지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나 ”거짓 선지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성경에도 그와 유사한 예가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람이었긴 해도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그분의 승인을 입어 교회를 이끌었던 초대 교회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동거동락을 함께 한 자였고 오순절에는 담대하게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외쳐 침례의 물가로 인도한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방인 개종자인 고넬료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비로소 그는 이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 10:34,35)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이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전도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 사업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가르치고 침례를 주라는 명령을 주신 이후(마태 28:20)까지도 한동안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뜻도 모른 체 그는 사도로 봉사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다 받으신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사건 이전 베드로가 갖고 있던 신앙관이나 가르침들이 지금 우리의 정서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그를 거짓 선지자로 봐야 하겠습니까??
이 두 가지 경전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갖고 있던 신앙관이나 그들이 전한 몇가지 부적절한 표현들에 대해 인간의 실수나 시대적인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지 그것이 마치 이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거짓 교리의 결정적인 증거인양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가 참된지 거짓된 지에 대한 여부를 과거 몇몇 지도자들의 발언이나 부수적인 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근거로 삼지 말고 조셉 스미스가 말한 “핵심 교리”를 가지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데 에덴 동산의 위치나 코롭의 존재 여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지식들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결단코 우리의 구원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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