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교회 교리

지혜의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모로나이 2021. 8. 25. 00:39

우리가 지혜의 말씀으로 금하는 커피나 녹차, 술, 담배는 단순히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의 여부나 카페인이 있니 없니 이런 지엽적인 부분으로 따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그런 의미라면 코코아나 박카스도 마시면 안 되겠지요.

 

또한 교회 회원이 아닌 사람이 커피나 녹차를 마신다고 해서 회개가 필요한 죄인마냥 바라볼 이유도 없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후기성도로서 침례 받고 성약을 맺은 이들 사이에서나 구속력이 있는 것이지 성약 안에 있지 않은 이들까지 구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성약의 백성들이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음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인류의 첫 조상이었던 아담과 이브의 경우는 선악과라는 과일을 주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실 선악과가 어떤 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음직, 보암직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맛있고 아름답게 생긴 과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선악과라는 과일 자체가 몸에 안좋아서, 독성이 있어서 금한 것은 아니리라 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일을 주고서 먹지 말라고 명함으로서 아담과 이브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 시대에는 어떻습니까? 돼지고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음식들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1:1-23) 정말 건강에 안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채식에 배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 “부정하고 가증한 식물”들로 분류되었던 그 고기들은 정말 더럽고 건강에 좋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거룩하고 성결해야 할 성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부정하고 가증한 것으로 선포한 것을 먹지 않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거룩한 그분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신약 시대에는 어떤가요? “먹고 마시는 것는 그림자” (골2:16-17)라고 해서 모세 율법에서 금한 모든 것들이 변경되었다고 해서 음식에 대한 규제가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물론 모세 율법처럼 다양한 형태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해서는 가능한 먹지 말 것이 권유되었습니다. (사도 15:29, 21:25)

 

고린도 전서 8장을 보면 처음에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인 말로 시작은 하지만 끝에 가서는 자기 자신은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 고기조차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고린도전서 10장에 가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자체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0:20).

 

따라서 신약 시대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 곧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 것을 권유 받았던 것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아직도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먹지 않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이 음식들이 몸에 좋지 않아서 금지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만 숭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순종의 자세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후기에 복음이 회복된 이후에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나 구약 시대의 여러 음식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한 금지는 없어졌지만 새로운 음식 규정이 생겼으니 그것은 곧 지혜의 말씀이라 알려진 술, 담배, 커피,녹차에 대한 금지사항입니다. 술, 담배에 워낙 믿지 않은 사람들 역시 좋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고는 있지만 커피나 녹차가 몸에 좋지 않은지의 여부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건강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부수적인 혜택(축복)일 뿐 지혜의 말씀의 근본 원리가 아닙니다.

 

“성도로서 또는 성도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자로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약한 자와 가장 약한 자의 능력으로도 감당해 낼 수 있는, 약속이 따르는 원리” (교리와 성약 89:3)가 지혜의 말씀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혜의 말씀은 <성도로 일컬은 받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순종의 여부로 순종을 요구한 계명입니다. 믿지 않은 자들이 지혜의 말씀이라 금한 것을 취한다고 하여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지요. 침례를 통해 성약의 백성이 된 자들에에게 요구하는 것일 뿐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윤리 사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악마의 음료 운운할 이유도 없는 것이구요.

 

따라서 커피가 몸에 좋니 안 좋니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설령 커피가 몸에 좋다는 의학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하여도 우리로서는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몸에 안 좋기 때문에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먹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안 먹는 것뿐입니다. 왜 먹지 말라고 하시냐, 먹는 것 까지고 쪼잔하게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면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모세 율법 시대에 돼지고기를 비롯한 여러 음식들을 먹기 말라고 하셨을까, 왜 초기 기독교인들은 제사장에 바쳐진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하고 말입니다. 그 음식들이 정말 몸에 안좋아서? 아니죠. 음식이 건강에 좋니 안좋니를 떠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태도를 보고자 하심이 아니었을까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 16:10)

 

단순히 먹지 말아야 하는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그 “작은 것”에 불의한 자가 큰 것에도 불의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그 작은 것에 충성하는지의 여부를 보시고 그 사람의 순종과 자원하는 마음을 보고자 하셨음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