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토론내용

예정설과 삼위일체에 대한 토론

모로나이 2014. 9. 14. 22:41






예정설과 삼위일체에 대한 토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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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을 두고서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은 분명 성경을 곡해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경우라면 이런 저런 구절들을 들어 성경은 모순된 구절들이 많다. 그런 고로 성경은 거짓이다라고 말은 하겠지만 성경 자체가 단일 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차이가 나면서도 다양한 배경과 개성과 관점을 지닌 이에 의해 기록된 것임을 충분히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의 차이점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삼위일체의 경우도 그렇죠. 성경에서는 분명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예수는 아버지보다 낮은 존재시며 아버지께 철저하게 순종하신 분으로도 나옵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명 서열이 있고, 아버지는 아들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다만 아버지의 권능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며,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신 뜻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한 분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조화가 성경에 나온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 자체도 양태론이니 뭐니 해서 교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리 삼위일체 하나님 운운해도 그 부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사람 거의 못 봤습니다. 수 십년간 감리교회에 충성하고 큰 직분을 갖고 계신 저희 부모님도 당연히 하나님과 예수님은 능력 면에서나 지위 면에서 다른 분으로 알고 계십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라는 수많은 글들도 읽어 봤건만 도무지 이게 무슨 말인가 싶더군요.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는데, 그럼 과연 얼마나 많은 자칭 정통들께서는 삼위일체를 분명히 이해하고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해가 가능해아 한다고 보는데요...그것도 삼위일체 안믿는다고 이단이고 기독교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예정설과 인간의 책임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걸 누가 부정했나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책임과 선택에 있어서도 그 뜻을 존중해 주십니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어떤 결정을 내리실 것을 알고 계셨고, 그에 따르는 조치도 미리 마련해 주셨지만 분명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먹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심으로서 선택 의지에 따르는 결과를 분명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하나님이 마련하신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이 된다면 왜 그분께서는 수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지침을 주시고, 순종할 것을 명하셨을까요? 구원을 받기로 예정이 되어 있다면 왜 수많은 사도들을 비롯한 여러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까? 예정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에 대해 답변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저 창세전에 예비하셨다는 몇몇 구절들만을 반복적으로 인용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바로왕의 경우를 들어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팍하게 만드셨냐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로마 1:21)

 

 

충분히 하나님에 대해 알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영화롭게도 않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진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로마 1:24)

 

 

그렇게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셔서 서로를 욕되게 하셨다 했습니다. 26절에서는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라고 하고, 28절에서는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로마서 918절에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정한 자를 일부로 완악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욕심대로 내버려 둔 것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 보면 미혹되는 이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낸다는 구절을 근거로 구원과 멸망은 예정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 구절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은 죄를 방조하는 분으로 만들 뿐입니다. 잘 보세요. 210절을 보면 멸망하는 자들의 특정이 나와 있죠.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개인의 선택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이 멸망을 당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1절을 보면 이로 인하여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로마서 1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고 그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하실 적에 바로 큰 미혹이 그들에게 임하는데 그걸 마치 하나님이 강력한 미혹을 보내셨다고 표현한 것이죠. 하지만 그 원인 자체는 결국 하나님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라 특정한 개인이 복음을 듣고 순종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거부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1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통해 구원받을 자들을 부르셨으니 굳게 서서 사도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지키라고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하여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왜 전도를 통해 했을 것이며, 배운 바에 따라 굳게 서서 지키라는 권면을 내릴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분이 구원을 주실 수 없는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며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지요. 이건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까지 구원시키면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고전6:9,10, 5:21, 에베소 5:5를 보세요, 이런 이런 일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건 분명 인간의 선택과 의지에 대한 측면이 강한 것입니다.

 

로마서와 관련된 주석은 몇 권 읽었습니다만 예정설과 관련되어서도 의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만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몰몬교회는 다른 종교 서적은 못 읽게 한다고 하시는데 그런 일 없으니 알지도 못한 내용 가지고 비난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뭔데 이런 저런 서적 구입해서 읽고 있다는 건가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에 앞서서 저희 교회에서 나온 경전을 비롯한 몇몇 서적이나 제대로 읽어 보고 비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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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나쁘다?? BYU에 철학과가 있는게 모순인가??

 

저는 철학을 나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은 계속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철학과가 있으니 이건 모순이라고 합니다. 이걸 전후 문맥과 무관하게 쏙 빼내버리고 이해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왜곡이라고 하죠.

 

제가 언급한 철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모든 분야의 철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섞여서 그것을 왜곡하게 만드는 인간의 사상을 말한 것 뿐입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을 제시했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 2:8)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the philosopher:NIV) 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20)

 

 

골로새에서는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미혹하거든 조심하라고 하면서 이것이 바로 사람의 전통이요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이 세대의 변론가, 즉 철학가를 복음과 비교하여 이 세상의 지혜로 표현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복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그리고 복음의 핵심을 왜곡하는 존재로서의 철학을 언급한 것일 뿐이며 하나님의 속성과 구원의 계획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성경이 아니라 자꾸 무슨론 무슨론을 들먹이면서 인간의 사상을 자꾸만 제시하기에 그걸 복음을 왜곡하는 철학이라고 표현한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글의 의도 자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철학을 부정하면서 왜 브리검영 대학에는 철학과가 있냐?”는 식의 엉뚱한 식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마가 7:8)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태 15:6)고 비판을 하신 적이 있어서 인간의 전통으로 복음을 왜곡하지 말라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그럼 왜 너희 기독교인들은 전래 전통에 따라 추석에 가족을 방문하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느냐?”면서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논지입니다.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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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하나님의 모든 부분을 알지 못합니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어떤 분들이 표현하는 신적본질의 단일성이니 상호교류가 가능한 구별되는 인격적인 면운운하며 늘어놓는 난해한 표현들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한 14:28)는 분명한 말씀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보다 더 크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고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히브리 5:8)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모르지만 하나님만 알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마태 24:36) 이렇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이걸 이해 못하고 복잡한 이론으로 이해불가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 이들을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삼위일체를 믿지 않으면 이단이라 정죄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분들을 전부 하나님이라 지칭하면서 말이죠, 그럼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요? 제발 성경에도 없는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마세요. 요한10:30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했다 하여 이 두 분이 결국 한분이라는 식의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 의미를 예수께서 알려주셨지 않습니까?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 17:21,22)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각 성도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하나가 능력이나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뜻과 목적 면에서 온전한 일치를 말하는 것인가요? 전 하나님과 예수님이 비록 능력 면에서나, 서열 면에서는 다를지는 몰라도 목적과 뜻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한 분의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인용하신 요한복음 1장을 볼까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 1:1)

 

 

상식적으로 생각할 일입니다. 말씀으로 표현되신 하나님(예수님)이 하나님(하나님 아버지)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히려 이 구절에서는 두 분이 서로 개체적으로 존재하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1:2,3)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히브리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죠.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만유의 상속자로 임명하셨으며 그분을 통해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1장에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신 겁니다. 그 어떤 구절에서도 삼위일체를 주장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저도 동일하게 표현하지요...저도 이 모든 것을 체험적으로 압니다. 그리고 복잡한 이론 다 무시하고 성경에 기록된 것만 믿습니다. 님이 만나신 선교사들이 이런 복잡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말을 아무리 잘한다 한들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은 다른 분이며,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던 아들임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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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왜곡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스스로 순종만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께서 내 죄를 씻기셨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들에 대한 순종이 참됨 믿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실 수 없는 부류란 말 그대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말로만 주여주여 외치고는 있지만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마태 7:21,22)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실 수가 없습니다. 이건 그분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라는 불변의 원칙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로마서 3:10절에서는 의인은 없고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스스로의 힘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과 행위로만 구원받을 만한 의를 행한 자가 없단 말입니다. 그런 자가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신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사람이 스스로 순종할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만약 사람이 스스로 순종할 수가 없이, 그저 일방적인 선택과 예정에 의해 순종이 프로그램된 것이라면 순종을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성구들은 전부 엉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 (요한 3:36)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히브리 3:18)

 

 

여기서는 아들을 믿으면 영생,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그분의 안식에 이르지 못한다다 했습니다. 순종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한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는데 이걸 순전히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보시는 건가요?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사도 19:9)

 

 

이 구절에서도 나오죠. 어떤 이들은 마음이 굳어서 순종하지 않고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선택은 개개인의 자유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인 건가요?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내리는 성령의 경우도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주어지기 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사도 5:32)

 

 

그리고 순종에 대한 다음 구절도 보세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 6:16)

 

 

우리를 죄나 사망에 방치해 둘지, 아니면 순종을 통해 의에 이를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아브라함도 보세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 11:8)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았을 때 그의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잘 몰라도 순종해서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가 의인이라 불린 것은 바로 이렇게 믿음을 갖고 순종해서가 아닌가요?

 

 

물론 순종할 수 있는 마음과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과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 순종할지 안할지에 대한 여부는 각 개인에게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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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복잡하게 비비꼬면서 해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이해하면 됩니다.

 

 

1. 말씀과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2. 말씀이 "" 하나님이셨다.

 

 

잘 보세요. 말씀(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나옵니다. 즉 두 분의 하나님이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저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분처럼 보이시는가 본데 분명 두 분은 함께계셨다고 나오지요. 동일한 분이라면 함께계셨다고 하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다른 분임을 너무나 많은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구절 중에 극히 몇가지만 인용해 드렸는데 님은 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셨지 않나요? 그저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라는 구절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동일한 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구요. 요한 14:28에 나오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찌 이해하십니까?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한 20:17)이라고 하여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라고 분명하게 설명하셨는데 후대 몇몇 교부들의 발언을 가지고 예수님이 정해주신 명확한 원칙을 부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곧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요한이 아버지는 예수님보다 크시고, 아버지는 예수님의 아버지며 하나님이라고 기록한 것을 못보셨나요? 속사도들이나 교부들의 주장을 보면 그 모든 주장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교리를 정당화하려는 몇몇 이들은 수많은 교부들의 주장 중에서, 자신의 교리에 맞는 것만 골라 인용하며 봐라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초대 교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식으로 자기 변론하기에 급급하죠. 실제 예수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지에 대한 이해보다는 어떤 교부들이 이런 말들을 했다, 어떤 종교회의에서 정통으로 인정했다는 식으로 정당화할 뿐입니다. 이게 바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가 7:7)는 말씀의 정확한 성취인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에서 성도들의 일치를 위하여 간구하셨던 예수님의 기도조차 왜곡하여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구원받은 믿는 신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부라는 것입니다.”라는 기괴한 주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일하고, 동등한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지요? 후기성도들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교리를 믿고 있지만, 최소한 하나님 아버지나 예수님과 동등하고,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일이 없는데 님은 그에 대해 더욱 앞서 나가는군요. 게다가 예수께서 어떠한 의도로 그런 기도를 드렸는가에 대한 전후 문맥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고 또 그저 복잡한 표현들로 비비꽈서 설명을 할 뿐이며, 그에 대해 명확하게 뒷받침하는 성구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습니다. 그저 이런 논리의 반복입니다. 자칭 정통이라는 여러 교회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잘 믿고 있는데 왜 너희들은 이를 믿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단이며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다수가 믿어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이단이며 거짓 교리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태 7:13)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님이 쓰신 글을 보면, 하나같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그저 인간의 사상만 가득 들어가 있을 뿐인데 그걸 어찌 제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고,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구별된 분임을 여러차례 말씀하셨는데 많은 이들이 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성경으로 뒷받침하지 못하자 인간의 전통과 가르침(몇몇 교부들의 말이나 종교회의의 결정 등)에 호소하는 것을 보면 다음 구절이 참으로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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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요한1장을 풀이함에 있어 어떠한 복잡한 해석도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말씀이라 표현된 하나님(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있었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님은 말씀이 하나님이라 했다 하여 곧 예수님=하나님 아버지란 공식을 세웠던 것 같은데 전 요한1장을 기록한 그 요한이 남긴 다른 기록 즉, “아버지는 나(예수)보다 크심이라”(요한 14:28)는 구절을 증거로 예수님도 하나님이긴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보다는 낮으신분임을 지적한 겁니다. 이건 성경을 비비꼬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푸는 것도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분명한 말로 풀이한 것이죠. 요한 1장을 근거로 예수님=하나님 아버지라는 공식을 주장하고 싶으시면 제가 인용한 몇몇 구절들에 대해서 바르게 해명할 일이지 그에 대한 풀이는 전혀 없고, 그나마 풀이한다는 것이 알쏭달쏭하고 애매모호한 말만 잔뜩 늘어놓을 뿐이죠.

 

 

동일 본성(: 휘포시타시스)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 좀 해보시죠. 아니 성경에도 없는 말 가지고 복잡하게 철학적 설명하지 말고 성경 어느 구절구절들을 들어 이런지 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보란 말입니다. 하나밖에 모르고 둘은 모른다면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싸그리 이단 운운하지 마시구요. 저는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지 고대 몇몇 교부들의 주장을 근거로,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그런 복잡하고 애매하게 포장된 하나님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맞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보다 더 크시다. 이게 이해하기 어려운 가요?

 

 

하나님이 몇 분이냐고 질문하셨죠.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전 8:5,6)

 

 

하늘이나 땅에 신과 많은 주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신이라 부르는 것들이 하늘에나 땅에나 존재하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존재하지만 실제 우리를 낳아주신 분은 한 분 밖에 없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신으로 지칭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여기서도 두 분이 언급되어 있죠?) 그리고 이 두 분을 증거하시는 사명을 지니신 성령님(성신)이 계시구요.

 

 

그런데 성경 어느 구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걸 모순으로 봐야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이고, 예수님도 하나님인데 성경에는 분명 서로 다른 분이며, 아버지는 예수님보다 크신 분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삼위일체라는 이론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에 대한 이해는 분명해 집니다. 바로 비록 개체적으로 존재하시고, 서로 격이 다르시긴 하지만 목적과 사명에 있어서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에 한 분의 하나님이라 부른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게 이해가 안가시죠??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마태 19:5)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고전 12:13)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 10:17)

 

 

이 구절들을 보시면 남편과 아내가 합하여 한 몸이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고 알려줍니다. 님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남편과 아내가 정말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전부 하나로 합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립니까? 여기서 한 몸이 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동일한 본성을 지닌자가 되라가 아니라 목적과 뜻, 사명에 있어서 온전한 연합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를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라고 표현하지 않나요??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성신은 비록 개별적인 분이시긴 하지만 그 목적과 뜻, 사명에 있어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에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몰몬경에 나오는 세 증인의 증언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영광이 한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께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건 복잡한 개념도 아니고, 불필요하게 잡다한 이론들을 들먹여 가면서 하나님의 신비 운운할 그런 이론도 아닙니다. 전 이러한 개념들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신의 그 완벽한 연합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로 일치하여 일하시는 그분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