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토론내용

사도 바울은 침례를 부정했는가? 고린도전서 1장을 기본으로...

모로나이 2014. 8. 13. 00:00





침례란 단순히 물속에 풍덩 빠지는 불필요한 의식이 아니라 복음의 한 부분입니다. 침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수없이 반복하였지만 어떤 영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고후 4:4)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다시금 인용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 3:5)

 

거듭남과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도 이르기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리라”(마가 1:8)고 하여 물의 침례와 성령의 침례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침례 요한을 통해 물의 침례를 받았으며 예수님에 의해서는 성령의 침례를 받게 되는 것이죠.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도 소홀이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 예수의 제자들은 물과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어떠했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마태 28:19)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 16:16)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믿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침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적에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된다고 하셨죠.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믿는 이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항상 침례를 강조했으며 실제로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들어오면 오순절날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찔림을 입은 이들이 어찌할꼬라고 물었을 때 그가 했던 말은 예수께서 승천하실 적에 명하신 것과 그대로 일치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도 2:38,39)

 

회개해서 침례를 받아 죄사함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모든 이들은 곧 침례를 받습니다. (41절 참조) 사도행전을 쭉 읽어 보세요. 그들이 복음을 듣고 처음으로 했던 일은 침례였습니다.

 

님은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쭉 외운다고 여러번에 걸쳐 자랑을 하셨고, 특히나 고린도전서 1장에 나온 몇 구절을 근거로 하여 마치 사도 바울이 침례 의식은 불필요한 것처럼 가르쳤다는 식으로 성경을 왜곡하고 계시지만 실제 사도 바울이 개심하여 처음으로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눈이 멀어 있는 당시 사울이었던 바울에게 아나니아가 처음 한 말도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사도 22:16)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의 눈이 밝아진 다음 행한 것도 침례였습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사도 9:18)

 

그런데 님은 침례가 필요없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모범으로 침례 요한을 통해 침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거듭남을 묻는 이들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으며, 물의 침례를 받은 자들에게 성령으로 침례 베푸셨는데,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풀라 하셨고 믿고 침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실제 복음을 전할 때 침례를 베풀었고, 바울 역시 눈이 밝아진 다음에 했던 것도 침례였는데... 님은 침례가 불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님이 성령을 통해 성경을 통달했다고 자부한다 한들, 저는 그것이 다른 예수요, 다른 영이며 다른 복음이라 보는 것입니다.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이 가르치고 전하며 행했던 것들을 불필요한 것이라 단정하는 것 자체가 예수께서 전하신 것과 다른 복음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은 정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침례 준 적이 없고(그리스보와 가이오와 스데바나 제외) 침례를 주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면서 침례 의식 자체를 부정한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그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 되며 구원의 길을 가로막은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전에 설명드렸죠)

 

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와 스데바나에게만 세례를 주었고 교린도교회의 성도 중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님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다음 성구를 보시죠.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사도행전 18:8)

 

여기에 익숙한 이름이 나오죠. 바울이 침례를 준 사람인 그리스보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죠?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과 주를 믿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믿고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고작 3명 밖에 침례를 주지 않았다고 님이 주장하는 바울은 알고 보니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안 식구들, 그리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을 침례 주었다고 했습니다. 침례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바울이 이건 무슨 이중적인 행위죠? 물론 그 수많은 사람들을 바울이 직접 침례를 주지 않을지도 모르죠. 다른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침례를 줄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한 뒤에 침례를 주었고, 그 중에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 고린도전서 1장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일단 고린도전서 1장은 고린도 교회에 속해 있던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와 사도의 가르침대로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은 이였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 성경 전반적인 주제와 견주어 보면 별로 논쟁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침례를 끝까지 부정하려고 눈을 붉힌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야기겠지만요...그런데 이들 사이에 논쟁이 생깁니다. 이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 1:12)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이 분쟁의 원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전 댓글에서 자신에게 침례를 준 사람을 따라 분파를 만들 것이라고 추측한 것에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다음 바울의 말씀을 근거로 인한 것이였죠.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우려가 무엇이었죠? 내가 소수에게만 직접 침례를 준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말입니다. 만약 많은 이들이 바울에게 침례를 받았다면 나는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외쳤을 것이라는 우려였던 것이죠. 즉 사도 바울은 분쟁의 기로에서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고 파를 만든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에게 침례를 준 이들을 따라 나는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추측일테지만 고린도 성도들의 분쟁과 관련하여 침례를 누구에게 받았는가에 대하여 바울이 언급한 것에는 뭔가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분쟁에 쌓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일컬으면서 생뚱맞게 나는 소수에게 침례를 주었다...고 말한 것은 아무런 인과관계나 연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제 추측이니 근거 없다고 부정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파는 누구에게, 그리스도파는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는지는 더 이상 추론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님의 주장처럼 사도 바울이 침례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거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침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그릇되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16,17)

 

아까 사도행전 188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스데바나 집 사람들 외에도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간접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윗 문장에서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에는 (침례가 중요하지 않아 무관심했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침례주어 누구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거나, 아니면 다른 제자들을 통해 침례를 주었기에 자신은 잘 모른다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심은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는 말씀도 문자 그대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적에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침례를 베풀라고 하셨는데 바울에게는 침례를 베풀지 말라고 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 안에서는 믿고 침례를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을 굳이 분리해서 표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하고자 했던 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정말 그는 침례를 불필요한 것이라고 봤습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 친히 명하신 것을 그가 송두리채 부정할 리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다음 구절에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 6:2-4)

 

열두 사도들에게는 말씀을 전하는 일이 우선이었고 접대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은 사람 일곱을 불러 접대하는 일을 맡기고 그들은 오로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 접대하는 일이 불필요한 일이구나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파에 주력하고 그 외에 것들은 전부 일곱 제자들에게 위임했다는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을 하고 침례를 주는 일은 제자들에게 위임했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2:41을 보면 침례를 받은 사람이 수천인데 그걸 한 두 사람이 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권했고 실제 침례를 주는 일들은 베드로 혼자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나누어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신은 직접 침례를 주라고 보내심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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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례는 누구의 말마따나 행함으로 인한 구원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직접 지시하시고 사도들이 따른 복음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예수께서 명하신 것을 거슬러 침례는 불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성령으로 성경을 통달했다는 분이 말이죠.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을 주는 영은 성령일까요? 아니면 사도 바울이 경고한 다른 영(고후 11:4)일까요? 저는 분명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