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개인적 생각들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

모로나이 2015. 1. 20. 23:26

 

 

 

 

 

 

최근 프랑스에서 두 명의 테러분자들이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 본사를 급습하여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고로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두 테러리스트는 예언자 무하마드의 복수를 했다고 소리치고 도주를 하다가 결국 프랑스 경찰 특공대의 진압으로 사살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SNS를 통해 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다)를 외치면서 언론의 자유를 옹호함과 동시에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들린다. 어떠한 경우에도 신의 이름을 내세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종교는 자체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종교는 삶과 인간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나의 어머니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타인을 자극하거나, 그의 신앙을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안된다고 지적했다.

 

나 역시 분명 신의 이름으로는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셨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누가 6:27-29)

 

오히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했다. 또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히브리 10:30)고 하였다. 즉 우리를 적대시하는 이들에 대한 복수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에 그저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절히 바랄 일이다. 굳이 검을 들어 그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라도 그러한 검은 말씀과 진리의 검이라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브리 4:12)

 

즉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에 대하여 증오와 무력이라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가지고 상대방의 거짓을 폭로하여 그들의 생각과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법과 원칙마저 어겨가면서 무력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은 거짓 선지자며 육의 열매를 나타내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우리를 대적하는 이들에 대하여 무력이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한다.

 

 

 

 

                                                        뮤지컬 "북 오브 몰몬"의 한 장면

                                              

 

한 때 미국에서 북 오브 몰몬이라는 뮤지컬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교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충격적이고 분노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부분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확대하는 것은 기본이며 우리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도 조롱거리와 웃음거리로 삼아 대중들에게 재미를 주려는 시도는 참으로 씁쓸했다. 하지만 교회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며 법적 대응이니 뭐니 이런 지저분한 일들도 행하지 않았다. 난 이런 교회의 대처 방식에 참으로 감동을 받았다. 비판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비록 우리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대중들로부터 돈을 쓸어 담았겠지만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 아니겠는가? 헤롯이 예수님을 조롱하며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누가 23:9)말이다.

 

 

 

 

 

물론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유연한 태도에 대해 마음 놓고 그 수위를 점차 높여가면서 비판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교황의 솔직한 표현처럼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나의 어머니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나 가족들을 그 어느 누구라도 비난하거나 모욕하면 아무리 양과 같은 사람이라 해도 분노하는 법이다. 아멜리카인들이 많은 백성의 마음을 이끌어 내어 악을 행하게 하고,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앨마 46:10)려고 했을 때 모로나이 장군은 그가 자기의 겉옷을 찢고, 그 한 조각을 취하여, 그 위에 -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종교와 자유와 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아내와 우리의 자녀를 기억하여 - 라고 쓰고 ”(앨마 46:12) 행동을 취하였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분이 회복하여 주신 교회와 복음, 그리고 그 복음 안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하면서, 그것을 마치 의로운 일인 양 왜곡하는 일을 지속할 경우는 모로나이처럼 자유의 기치를 들어 그 거짓을 폭로하고 진리를 수호해야 한다. (물론 이를 문자 그대로 왜곡하여 물리적 행동을 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싸우기 위해 드는 무기는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