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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업체를 운영하면 안되는가??

모로나이 2016. 5. 22. 01:22





교회의 지도자가 쇼핑몰 개막식에서 쇼핑하러 갑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를 이상하게 봐야 할까요? 언뜻 보면 어울려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진리를 선포한다는 선지자가 쇼핑몰에 와서 왜 쇼핑하러 가라는 식의 구호를 외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다소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이를 근거로 교회가 상업주의에 빠졌다거나 심지어 교회는 거짓되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결론으로 빠지는 것은 심각한 오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쇼핑이라고 하면 뭔가 과소비의 이미지를 풍기는 것 같고 종교라는 신성한 영역과는 분리되고 구분되는 세속적인 영역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 바울을 비롯하여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칼뱅과 같은 이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상업과 종교 자체를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종과 상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처럼 하라는 권유(에베소 6:5, 디도 2:9)를 주었습니다. 이는 누구의 오해처럼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된 사람이 고용인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권고로 볼 수 있습니다. 칼뱅의 경우 직업 소명설이라고 하여 세속적 직업은 칼뱅 교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제를 받았다는 확신의 표지로 이해하였기에 근면하게 직업 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러한 결과로 재화의 축적이 적극적으로 긍정되어 자본을 형성하고 생산력의 확대를 초래하지 않았던가요? 경전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해로운 일의 뿌리라 그것을 사랑하느라 그릇된 길로 빠진 이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디모데전서 6:10)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돈을 청지기 직분으로 받아들여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훌륭한 권고도 있습니다. (누가 16:1-9)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는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을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부양하지 않은 것에 대해도 강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11,12)는 말씀처럼 일의 중요성과 그 일을 통하여 궁핍에서 벗어나는 경제적 자립의 원리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이처럼 종교의 영역에서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돈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직업에 대해 소명의식을 가지라는 식의 여러 권유들도 발견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교회가 쇼핑몰을 운영하고 쇼핑하러 갑시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무턱대고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닙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쇼핑몰 운영은 지역 주민들에게 더욱 많은 일자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 경제가 활발해 지는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이는 많은 사람들을 솔트 레이크시에 모이도록 이끕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솔트 레이크시가 점차 침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게는 문을 닫고 도심은 점차 그 매력을 상실해가고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템플 스퀘어와 다른 교회 건물들이 사람들이 찾지 않는 썰렁한 곳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뭔가 아름답고 생산적인 곳을 짓는데 투자를 함으로서 여러 사업체와 식당과 같은 곳들로 북적여 사람들이 모여들고 경제가 활성화되며, 궁극적으로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소개하는 기회가 되는 면에서 노력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 측에서도 실제 이러한 쇼핑몰의 건립으로 인해 1700개의 직업이 생겼다고 발표하며 실제로 이러한 투자는 어떤 면에서 그 지역 내에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나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쇼핑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물론 교회 지도자들은 항상 빚을 짓지 말고 수입 안에서 검소하게 살라는 권고를 여러해 동안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돈이 돌아야 경제가 활성화됩니다. 돈이 돌고 돌아야 소비가 늘고 내수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쇼핑몰의 목적 자체가 그 지역 내에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라 적극적인 의미의, 그리고 적절한 수준에서의 쇼핑은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면 충분히 교회 지도자들도 쇼핑하러 갑시다라고 말한다 해서 이상하게 볼 것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자립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자립 역시 중요시하여 여러 차례 강조하고 이에 대해 교육해 왔습니다. 이러한 여러 원리들을 종합해서 이해해야지 어떻게 교회가 쇼핑몰을 비롯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쇼핑하러가자는 말을 하느냐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봐서는 안됩니다.

 

또한 제기된 문제를 보면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쇼핑몰에서 표준과 어긋나는 사진이 담긴 광고가 나온다거나 술을 판매하고 일요일에도 영업하는 문제를 거론하며 이것은 교회의 위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 사업체를 교회가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오해할 때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쇼핑몰의 투자에 참여한 파트너들은 교회와 제휴을 맺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쇼핑몰은 교회 소유의 부동산과 교회와 관련이 없는 단체의 투자로 진행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몇몇 장소에서 술을 팔거나 일요일에 영업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이는 오직 그 사업체를 소유한 투자자들이 교회 회원이 아닌 경우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소유한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교회가 갑이고 다른 투자자가 을이니 교회가 그들의 표준을 강압해야 한다는 식으로 풀이하기에는 그 상황들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교회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고 투자를 했을 뿐이지 그 사업체에 들어와 자신의 방식으로 영업하는 자들에 대해 이래래 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의 부채를 벗어난 것은 로렌조 스노우 회장이 십일조를 강조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1906년의 경우이며 그 이후 더 이상 빚을 짓지 않으려는 의도로서 교회의 여러 사업체들을 운영하면서 이윤을 창출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보다 현재는 십일조를 충실히 내는 회원들의 수가 (비율적으로) 적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성전을 비롯한 교회 건물을 건축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부채에 허덕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교회가 소유한 사업체로 인한 이윤 때문인 것이지요.

 

그리고 교회는 누군가를 도울 때 먼저 그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두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정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족들의 도움이 가능한지, 아니며 친인척들의 도움이 가능한지, 그러한 도움조차 어려울 때 교회가 돕도록 되어 있습니다. 무턱대고 기부의 양을 늘여야 하는 것은 교회의 원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교회가 돕는 일차 대상은 교회의 충실한 회원들입니다. 경전을 보시면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도 6:1-6, 11:28-30 고후 8:1-4, 9:1, 11-13) 자기 식구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남들을 돕겠다는 것은 위선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실시하는 구제의 상당수는 교회 회원들에게 돌아가고 그 이후 다른 이웃들을 향하는 것인데 그나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 6:3,4)는 말씀처럼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상당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계자료로 보면 교회가 기부하는 퍼센트가 낮아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교회 이름을 크게 사용하여 이런 저런 단체에 기부하고 그것을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주님의 구제법과 관련이 없는 위선이라는 것이죠. 기부와 봉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모 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국가나 특정 단체에서 무슨 무슨 상을 받았다는 식의 이야기라 주를 이루던데 공식적인 통계로 보면 높은 기부 비율을 보이겠지만 그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일까요? 이런 것을 다른 단체와 비교하여 초라하니 마니 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